검은 흙의 아들들

2장. 흙을 먹는 사람

by 진동길

2장. 흙을 먹는 사람


최태국의 아버지 최덕삼(崔德三)은 해원에서도 손꼽히는 악인이었다.

일제 강점기, 면서기 노릇을 하며 동네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토지 대장을 조작하고, 세금 고지서를 위조하고, 문맹인 농부들을 속여 도장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들. 해방 후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친일파 청산의 바람이 불었으나, 최덕삼은 교묘히 빠져나갔다. 증거를 없애고, 증인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6.25 전쟁 때는 더 가관이었다.

인민군이 들어오자 최덕삼은 인공기를 흔들었다. 부역자가 되어 동네 사람들의 명단을 넘겼다. “저 집은 지주제”, “저 사람은 우익이제”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 손가락질 때문에 끌려간 사람이 셋이었고, 그 중 둘은 돌아오지 못했다.

국군이 수복하자 최덕삼은 태극기를 걸었다. 인민군에게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변명했다. 경찰에게는 술과 돈을 먹였다. 그렇게 또 살아남았다.

“저 인간은 목에 힘줄이 아홉 개라카더라. 안 죽어.”

해원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댔다. 하지만 누구도 최덕삼에게 대들지 못했다. 최덕삼은 이미 해원 읍내에 땅을 여러 필지 갖고 있었고, 면사무소 직원들과도 줄이 닿아 있었다.

그 최덕삼이 1945년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 바로 최태국이었다.




최태국은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해원 장터에서 떡장사를 하던 과부였다. 최덕삼이 어떻게 그 여자를 꼬드겼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쨌든 둘은 결혼했고, 이듬해 최태국이 태어났다.

최태국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닮았다. 눈빛이 사나웠고, 입이 험했고, 주먹이 빨랐다. 동네 아이들과 싸우면 늘 이겼다. 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저 자식, 아부지 똑 닮았네. 악질이 될 낀데.”

장터 아낙네들은 혀를 찼다. 하지만 최태국의 어머니는 아들을 감쌌다.

“우리 태국이가 뭘 잘못했노? 저 자식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제.”

최태국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교 대신 장터를 기웃거렸다. 장터에서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농부도 있고, 장사치도 있고, 건달도 있었다. 최태국은 그들을 지켜보며 배웠다.

‘세상은 힘과 돈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어린 최태국이 터득한 진리였다.

열다섯 살 되던 해, 최태국은 아버지를 따라 면사무소에 갔다. 아버지가 누군가와 토지 거래를 하는 걸 지켜보았다.

“이 땅, 내가 한 50만 원에 사줄랍니더.”

“50만 원? 이 땅이 시세로는 100만 원은 되는데예…”

“시세는 시세고, 현찰은 현찰 아입니까? 지금 당장 돈 필요하제? 내 지금 현찰로 드릴 수 있습니더.”

상대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최덕삼은 현금 뭉치를 꺼내 세어주었다. 그리고 토지 문서를 챙겨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최덕삼은 아들에게 말했다.

“봤제? 저게 장사다. 급한 사람의 급한 마음을 사는 게 장사제.”

“…예.”

“세상에 공짜는 없다. 뭔가를 얻으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되는 기라. 그 손해 보는 사람이 니가 되면 안 된다. 알았제?”

“…예.”

최태국은 그날 배웠다. 사람의 급한 마음, 절박함,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1960년, 최덕삼이 세상을 떠났다.

간경화였다. 평생 술을 입에 달고 살던 최덕삼은 결국 간이 망가져 죽었다. 임종 직전, 최덕삼은 아들을 불렀다.

“태국아…”

“예, 아부지.”

“내 니한테 물려줄 게 있다.”

최덕삼은 베갯잇 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토지 문서들이었다.

“이게… 이게 내 평생 모은 거다. 해원 읍내 땅 다섯 필지. 이거 잘 지켜라.”

“예, 아부지.”

“그리고 말이다…”

최덕삼은 피를 토하며 말을 이었다.

“세상은…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강한 놈이 이기고, 약한 놈은 진다. 니는… 니는 강한 놈이 되어라. 알았제?”

“…예.”

“그리고 땅… 땅은 절대 팔지 마라. 땅은… 땅은…”

최덕삼은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최태국은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베갯잇 속의 토지 문서를 꺼내 하나하나 확인했다.

‘해원읍 본정 12번지, 150평.’
‘해원읍 본정 23번지, 200평.’
‘해원읍 신정 5번지, 300평.’

최태국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이것들은 제 것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어머니가 최태국에게 물었다.

“태국아, 니 이제 뭐 할 거고?”

“장사 할랍니더.”

“무신 장사?”

“돈 장사요.”

최태국은 그해 스무 살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땅 중 가장 작은 한 필지를 팔았다. 그 돈으로 해원 읍내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간판을 걸었다.

‘태국 금융’

고리대금업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돈을 빌려주었다. 만 원, 이만 원.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병원비가 급한 사람, 자식 학비가 급한 사람, 빚보증으로 쫓기는 사람—이 찾아왔다.

“얼마나 필요합니까?”

“만 원만… 만 원만 빌려주이소.”

“만 원? 그 정도면 되겠네예. 허나 이자가 좀 있습니더.”

“이자가 얼마나 됩니까?”

“한 달에 3푼입니더.”

“3푼? 그기… 그기 너무 비싼 거 아입니까?”

“비싸면 은행 가이소. 은행에서 담보도 없는 사람한테 돈 빌려주나 봅니까?”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은행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농협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람들은 최태국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습니더. 빌릴랍니더.”

“그라이소. 여그 차용증에 도장 찍으이소.”

최태국은 그렇게 차용증을 받았다. 그리고 돈을 세어주었다.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만 원을 빌려간 사람은 한 달 뒤 만삼천 원을 갚아야 했다. 갚지 못하면 이자가 또 붙었다. 두 달이 지나면 만육천 원이 되었고, 석 달이 지나면 만구천 원이 되었다.

“아이고, 최 선생님. 이거 이자가 너무 많이 불었는데예…”

“그기 내 탓입니까? 약속한 날짜에 안 갚았잖습니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는 무신 그래도고. 차용증에 도장 찍었으면 갚아야제. 안 그럽니까?”

대부분은 결국 갚지 못했다. 그러면 최태국은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예. 땅으로 대신 하이소.”

“땅을… 땅을요?”

“논이 있다카던데? 그 논 몇 마지기 주이소. 그럼 빚은 없던 걸로 할랍니더.”

“허나 그 논이 시세로는…”

“시세는 시세고 빚은 빚 아입니까? 빚 안 갚으면 법대로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 더 복잡해집니더. 그냥 간단하게 넘기이소.”

사람들은 울면서 땅문서를 내밀었다. 최태국은 그 문서를 받아들고, 빙그레 웃었다.

“고맙습니더. 덕분에 좋은 땅 얻었네예.”

그렇게 최태국은 해원의 땅을 한 뼘씩 집어삼켰다.




1965년, 최태국은 결혼했다.

상대는 해원 인근 마을의 농부 딸이었다.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여자였다. 최태국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였다. 그 여자의 집에 논 서른 마지기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 사돈 될랍니까?”

최태국은 그 집 아버지에게 돈 봉투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망설이다가 받았다. 딸은 울면서 시집갔다.

결혼 첫날밤, 최태국은 신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장인어른이 가져온 토지 문서를 살펴보았다. 서른 마지기. 나쁘지 않았다.

“니 친정 논 문서 있제?”

“…예.”

“내일 면사무소 가서 내 명의로 바꿀 낍니더.”

“허나…”

“허나는 무신 허나고. 부부는 한 몸 아입니까? 내 거나 니 거나 똑같제.”

그렇게 서른 마지기 논도 최태국의 손에 들어갔다.

그 부인은 이 년을 살다가 유산 끝에 죽었다. 최태국은 장례도 간소하게 치렀다. 부인의 친정에서 항의했으나, 최태국은 코웃음을 쳤다.

“장례는 내 맘대로 한다. 니들이 뭔 상관이고?”

친정 식구들은 울분을 삼키고 돌아갔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최태국을 건드리면 본인들만 손해라는 것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고, 농촌을 현대화한다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젊은이들은 서울로, 부산으로, 공장으로 떠났다. 해원에 남은 것은 늙은이들과 논밭뿐이었다.

땅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농사지어봐야 남는 게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땅을 팔기 시작했다.

“최 선생, 내 논 좀 사주이소.”

“얼마에 팔 건데예?”

“한… 한 100만 원에…”

“100만 원? 그기 너무 비싼데예. 요새 땅값이 다 떨어졌는데 뭘.”

“그래도…”

“50만 원 드릴랍니더. 그것도 지금 당장 현찰로.”

“50만 원은… 너무 싼데예…”

“그럼 말고. 다른 사람 찾아보이소. 허나 해원에서 지금 당장 현찰 쥐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노?”

상대는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태국은 현금을 세어주고 토지 문서를 챙겼다.

그렇게 1970년대 내내, 최태국은 해원의 땅을 긁어모았다.

해원 장터 국밥집 주인 정 할머니의 남편도 그 중 하나였다. 1978년 가을,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비가 급했던 정 할머니네는 최태국에게 30만 원을 빌렸다.

“할머니, 한 달 안에 갚으이소. 이자는 3푼입니더.”

“알았네예. 꼭 갚을 낍니더.”

하지만 정 할머니네는 갚지 못했다. 아들의 수술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었다. 일 년이 지나자 빚은 40만 원이 넘었다. 이 년이 지나자 80만 원이 되었다.

“할머니, 이거 안 되겠네예. 땅 내놔야겠네예.”

“최 선생님, 제발… 제발 좀…”

“논 석 마지기 주이소. 그럼 빚은 다 없던 걸로 할랍니더.”

당시 시세로 석 마지기는 200만 원은 되었다. 정 할머니의 남편은 울면서 땅문서를 내밀었다.

“고맙습니더, 영감님. 덕분에 좋은 땅 얻었네예.”

그날 밤, 정 할머니의 남편은 소주 한 병을 들고 논둑에 앉아 밤새 울었다. 그 논은 시아버지가 평생 모아 산 땅이었다. 그 땅에서 나온 쌀로 자식 셋을 키웠다. 그 땅이 30만 원짜리 빚 때문에 날아간 것이다.

“최태국이, 그 개자식… 그 개자식…”

남편은 술에 취해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용증에 도장을 찍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1980년대, 최태국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태국 건설’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정부에서 지방 개발 정책을 내놓자, 최태국은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 읍내에 상가를 짓고, 도로를 뚫고, 다리를 놓는 공사를 따냈다.

뇌물을 썼다. 면장에게, 군청 직원에게, 경찰서장에게. 술을 먹이고, 돈을 쥐어주고, 기생집에 데려가 접대를 했다.

“최 사장님, 고맙습니더.”

“아이고메, 뭘. 우리가 서로 도와야제.”

공사는 부실했다. 시멘트를 적게 쓰고, 철근을 얇게 넣고, 자갈을 섞어 넣었다. 그렇게 아낀 돈은 최태국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공사비가 남았네예. 허허.”

준공 검사는 통과했다. 검사관에게도 돈을 쥐어줬기 때문이다.

몇 년 뒤, 그 상가 건물 중 하나가 무너졌다. 다행히 사람이 없을 때라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상가 주인은 망했다.

“최 사장님, 책임 좀 지이소!”

“책임? 무신 책임? 그기 건물이 오래돼서 그런 거 아입니까?”

“오래되긴 무신 오래돼! 지은 지 겨우 5년밖에 안 됐는데!”

“그기 내 알 바 아입니더. 법대로 하이소, 법대로.”

상가 주인은 소송을 걸었으나 이기지 못했다. 최태국은 변호사를 고용했고, 증거를 없앴고, 증인들을 매수했다.

그렇게 최태국은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부자가 되었다.




그 돈으로 최태국은 해원 남쪽, 옛날 갯벌이었던 자리를 메워 땅을 샀다. 그리고 그 위에 3층짜리 붉은 벽돌집을 지었다.

해원장(海原莊).

사람들은 그 집을 그렇게 불렀다. 담장은 2미터가 넘었고, 대문은 쇠로 만들어져 있었다. 안에는 정원이 있었고, 분수대가 있었고, 값비싼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저 집, 돈이 얼마나 들었을꼬?”

“한 2억은 들었다카더라.”

“2억? 아이고메, 저 돈이 다 어디서 나왔겠노. 사람들 피 빨아먹어서 만든 거제.”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댔으나, 누구도 최태국에게 대들지 못했다.

해원장 안에서 최태국은 왕처럼 군림했다. 밤마다 술판을 벌였다. 지인들을 불러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불러 춤을 추게 하고, 그렇게 밤을 새웠다.

“으하하하! 인생은 짧다! 실컷 먹고 마셔야제!”

술잔이 부딪히고, 여자들이 낄낄대고, 최태국의 웃음소리가 담장 너머로 새어 나왔다.

해원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태국은 이미 해원의 왕이었다.

그리고 1970년 초겨울, 그 최태국이 화림리의 윤 씨네 집을 찾아간 것이다.

“선생님 댁 따님 하나 있으시다카는데? 제게 주이소.”

그것은 청혼이 아니었다. 거래였다. 아니, 거래라기보다는 약탈이었다.

최태국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윤 씨네 집안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그 빚의 절반은 자신이 돈을 빌려준 빚쟁이들이 떠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윤 씨네는 거부할 수 없었다.

‘양반집 딸 하나 얻으면 쓸모가 있겠제. 족보에 올릴 수도 있고, 허허.’

최태국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윤 씨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물건이었다.

며칠 뒤, 윤 씨네 집에서 답이 왔다. 결혼을 승낙한다고.

최태국은 빙그레 웃었다.

“됐다. 드디어 양반 피를 섞겠네.”

그는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었다. 번들거리는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세상은 돈으로 돌아간다.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제. 양반집 딸도, 땅도, 사람도.”

그것이 최태국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철학대로 살았다.

흙을 먹고 사는 사람. 아니, 흙을 파먹고 사는 짐승.

그것이 바로 최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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