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형제들의 여름 (1998~1999) - 서(序)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서(序) — 불씨, 사냥, 그리고 밀레니엄의 열병
여름은 본디 만물을 살찌우려 뜨거운 법이다. 논물은 끓어올라 벼를 키우고, 사람의 땀은 땅을 적셔 내일을 잉태했다. 허나 어떤 여름은 살리기 위해 뜨거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위해 뜨겁다. 바람이 불기 전부터 허공에 매캐한 기름내가 떠도는 계절. 손에 쥔 성냥 하나 없어도, 사람의 독기(毒氣)만으로 불씨가 번져가는 지독한 여름이다.
IMF가 휩쓸고 간 1998년. 해원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접어두고 살았다. 숨을 죽인다고 산더미 같은 빚이 줄어들 리 만무하건만, 사람들은 자꾸만 목을 움츠렸다. 브라운관에서는 연일 ‘경제 회복’을 떠들어대고 읍내 간판들은 새 페인트칠로 번들거렸지만, 바닥의 핏내를 맡고 사는 해원의 무지렁이들은 알았다. 환하게 켜진 것은 전등알이지, 결코 사람의 명운이 아니었다. 삶은 여전히 시퍼런 연체 장부 밑에서 헐떡이고, 붉은 도장 아래서 짓눌리며, 빚쟁이에게 넘어간 담보물 위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웅크린 자들의 등짝 위로, 마침내 사냥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무너질까 봐 몸을 떨 때, 어떤 짐승은 그 두려움을 게걸스럽게 씹어 삼킨다. 최태국은 피 냄새를 맡고 움직였다. 평생 뜨거운 쇳물을 두드리며 우직하게 살아온 김춘식의 철공소가 통째로 태국의 아가리 속으로 넘어갔다. 사내의 손바닥에 훈장처럼 박혀 있던 굳은살은 고철 덩어리만도 못한 값으로 매겨졌다. 기계가 멈추는 쇳소리보다 더 참혹한 것은, 정직하게 살아온 한 인간의 긍지가 속절없이 꺼져버리는 소리였다.
파국은 돈만 집어삼키며 크지 않았다. 가난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병마(病魔)는 창문을 넘어 스며드는 법. 철공소 집안의 어린 핏줄이 백혈병이라는 죽음의 그늘을 뒤집어썼다. 병은 말이 없다. 말이 없기에 빚쟁이보다 잔혹하다. "버텨라", "괜찮아질 거다"라는 위로는 병마 앞에서 한낱 헛기침처럼 바스러졌다. 한 가정을 꼿꼿하게 버티게 했던 웃음, 체면, 알량한 자존심마저 한꺼번에 풀려나가 진흙탕 속에 질척하게 짓이기어졌다. 해원의 땅은 그 질척한 피눈물을 게걸스럽게 빨아먹으며 비대해져 갔다.
그 피눈물 위에 새로운 간판이 벼락처럼 내걸렸다. 촌스러운 ‘태국금융’의 허물이 벗겨지고, 더 넓고 더 노골적인 이름이 읍내 정수리에 박혔다.
[태국 종합개발 (M&A·부동산 전문)]
숫자로 사람의 숨통을 조이던 손이, 이제는 아예 포크레인 삽날이 되어 흙을 파뒤집고 마을의 척추를 꺾어버렸다. 길이 바뀌고, 마을이 접히고, 사람의 사는 모양새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찢겨 나가는 것은 언제나 가장 약한 자들의 살점이었다.
읍내가 찢겨 나가는 동안, 핏줄로 엮인 형제들 가슴속에도 각기 다른 불씨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기백의 목에는 ‘박세린’이라는 정략의 동아줄이 옥죄어 들었다. 그 이름은 사랑이 아니라, 아비가 쳐놓은 완벽하고도 차가운 ‘거래의 문장’으로 굳어졌다. 이현은 서울에서 더욱 차갑게 심장을 얼리며, 신이 떠난 이 잔혹한 세상이 도대체 어디까지 타락을 '허용'하는지 벼리며 오만한 냉소의 칼을 갈았다. 서하는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의 가장 깊은 수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부서진 삶들의 편에서 속죄의 십자가를 지려 했다. 짐승 같은 주먹으로, 얼음 같은 논리로, 바보 같은 연민으로. 형제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을 다룬다. 불을 다루는 법이 다르면 타들어 가는 영혼의 자리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의 여름. 욕망이 한 번 더 시퍼렇게 날을 세운다. 산 24번지. 해원장 뒷산, 숫자 몇 개로 불리던 버려진 흙무더기 위로 ‘신도시 개발’이라는 거대한 십자포화가 쏟아져 내렸다. 땅값은 사람의 목숨값보다 수백 배 빨리 치솟았고, '150억'이라는 기괴한 숫자가 읍내 사람들의 허기진 입술을 탐욕스럽게 벌려놓았다. 숫자가 비대해질수록 사람은 한없이 작아진다. 작아진 인간은 더 쉽게 무릎을 꿇고, 굽은 등짝 위로는 어김없이 돈이 올라타 채찍질을 해댄다. 그때부터 흙은 만물을 품는 어미가 아니라, 핏물 뚝뚝 떨어지는 먹잇감이 된다. 먹잇감이 던져지면 사방에서 승냥이 떼가 몰려든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누군가는 미친 듯이 웃고, 누군가는 피를 토하며 울고, 어둠 속의 수만은 소리 없이 살생부의 장부를 넘긴다.
밀레니엄(Millennium)은 달력 위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해원에서는 핏빛 파국의 예감이었다.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사냥의 송곳니로 변하고, 사냥이 매혹적인 유혹으로 번지며, 유혹이 끝내 아비와 아들의 목을 겨누는 폭력으로 폭발해 버릴 것이라는 지독한 예감. 그 광기의 한가운데서, 정 할머니의 거친 입술을 타고 기어이 서늘한 예언이 먼저 흘러나올 것이다.
"이 집에… 기어이 시퍼런 피가 튀고 말 낀데."
말은 저주가 되고, 예언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이다. 이 『형제들의 여름』은 단순히 흘러가는 계절의 낭만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이 짐승의 아가리 속에서 어떻게 바스러지는지, 땅이 사람의 피를 어떤 방식으로 집어삼키는지, 그리고 한 집안의 썩어 문드러진 핏물이 결국 어디로 흘러가 응고되는지를 쫓아가는 지독한 묵시록(默示錄)이다.
불씨는 이미 붉게 타올랐다. 이제 남은 것은, 불길을 거세게 몰아칠 바람의 방향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