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독수리의 사냥 (1998)
1998년의 봄은 꽃내음 대신 비릿한 녹물 냄새를 풍기며 해원 읍내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으레 봄이 올 줄 알았으나, 그해의 달력은 계절의 순리를 배신했다. 얼어붙은 흙바닥 위로 봄비가 내렸지만, 비를 맞고 피어난 것은 파릇한 새싹이 아니라 붉은 래커로 휘갈겨 쓴 빚쟁이들의 욕설과 시퍼런 압류 딱지들이었다.
읍내 끄트머리, ‘춘식 철공소’의 낡은 함석 간판이 기어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강수만의 수하들이 빠루로 간판을 뜯어낼 때, 굵은 쇠못이 시멘트벽에서 뽑히며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반평생 김춘식의 자랑이자 긍지였던 이름 석 자가 진흙탕에 나뒹굴고, 그 위로 크고 번들거리는 새 간판이 벼락처럼 걸렸다.
[태국 종합개발 제1공장]
간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철공소 안의 공기는 완벽하게 죽어버렸다. 김춘식은 여전히 새벽같이 나와 시뻘건 화덕 앞에 섰고, 여전히 제 몸보다 무거운 망치를 휘둘렀다. 그러나 망치 소리에는 더 이상 쇠를 지배하는 장인의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건 그저 살을 깎아 빚의 이자를 갚아나가는 짐승의 헐떡임에 불과했다. 그는 이제 제 공장의 주인이 아니었다. 최태국이 던져주는 알량한 월급을 받아 일꾼들의 입에 풀칠을 해주는, 껍데기만 남은 ‘고용 소장’으로 전락했다. 춘식이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쇳가루가 튀었지만, 정작 부서져 내리는 것은 쇠가 아니라 사내의 긍지였다.
최태국은 한 달에 한 번, 기름때 낀 철공소 마당에 최고급 세단을 끌고 와 창문을 반쯤 내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늘 높은 곳에서 찢어발긴 먹잇감의 뼈를 감상하는 늙고 오만한 독수리의 시선이었다. 태국은 춘식을 부르지도, 굳이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이 지배자로서 굽어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춘식의 넓은 어깨가 어떻게 쪼그라드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포식자가 누리는 가장 달콤한 유희였다.
사람의 기운이 꺾이면, 집안의 기둥도 속으로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본의 폭력이 앞문을 부수고 들어온 자리로, 병마(病魔)는 뒷문을 열고 도둑처럼 숨어들었다.
언제나 그늘 하나 없이 밝은 얼굴의 일식. 아비 춘식을 닮아 뼈대가 굵고 늘 호탕한 웃음을 달고 살던 맏아들이었다. 정 할머니 국밥집에서 서하와 나란히 쟁반을 나르며 “내중에 크면 우리 아부지처럼 멋진 대장장이가 될 끼다”라고 떠들던 그 펄떡이던 청년의 몸에 낯선 멍이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무거운 쇠를 옮기다 부딪힌 자국이려니 했다. 그러나 팔뚝의 시퍼런 멍은 허벅지로, 등짝으로 번져갔고,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던 일식의 코에서 쏟아진 붉은 피는 세면대를 흠뻑 적시고도 반나절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다.
구급차에 실려 나간 일식을 품에 안고 춘식은 진주 시내의 큰 병원으로 향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하얀 진료실 안에서, 늙은 의사는 춘식의 초조한 눈을 피하며 무거운 판정을 내렸다.
“백혈병입니더. 핏속에 몹쓸 하얀 것들이 자라서… 정상적인 붉은 피를 다 잡아묵고 있심더.”
춘식은 멍한 얼굴로 의사의 입술만 쳐다보았다. 백혈병. 피가 하얗게 변해서 죽는 병이라 했다. 평생을 불지옥 같은 화덕 앞에서 땀을 쏟으며 자식들 핏속에 따뜻한 밥을 밀어 넣어주었는데, 그 피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춘식은 병원 복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꺼먼 쇳가루가 박힌 그의 거친 손이 멸균된 리놀륨 바닥을 박박 긁었다. 철공소가 통째로 넘어갔을 때도 삼켜냈던 눈물이, 짐승의 처참한 울음소리가 되어 복도를 찢었다.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포식자가 춘식의 일터를 강탈하더니, 이제는 신(神)마저 내려와 그의 가장 귀한 핏줄을 끊어내려 하고 있었다.
태평양 너머, 낯선 이국의 아침. 단정한 첼로 케이스를 메고 예술학교로 향하던 김유라는 기숙사 관리인이 건넨 수화기를 붙들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유라는 춘식의 목숨이자 유일한 도피처였다. 흙먼지 날리는 해원 바닥에서 쇳가루를 마시며 평생을 살아온 춘식은, 유라만큼은 제 손에 묻은 가난의 찌든 때를 묻히지 않게 하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빚을 내고 허리띠를 졸라매어 똑똑한 딸을 서울로, 그리고 기어이 타국으로 유학 보냈다. 우아하게 첼로를 켜는 유라의 환상은 춘식에게 있어, 이 비루한 삶이 언젠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유일한 종교와도 같았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어머니의 오열은 유라의 세상을 단숨에 박살 냈다.
“유라야… 니 오빠가, 일식이가 죽는다 칸다…. 공장도 남의 손에 다 넘어가삐고, 약값 댈 돈도 천지 삐까리 빚뿐이다. 우짜면 좋노….”
어머니의 거친 사투리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귓가를 찔렀다. 유라의 손에서 첼로 케이스가 미끄러지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둔탁한 파열음이 났다. 그것은 음악이, 예술이, 그리고 가난한 자가 꾸었던 가장 우아한 꿈이 현실의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였다. 유라는 울지 않았다. 눈물보다 먼저, 세상의 거대한 폭력이 자신의 여린 날개를 잔인하게 꺾어버리는 고통을 똑똑히 응시하고 있었다.
사흘 뒤, 유라는 잿빛 하늘을 인 해원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유학생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핏기 없는 얼굴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 유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하얗게 질려 잠든 오빠 일식의 창백한 얼굴과 그 병상 밑에 쪼그려 앉아 죄인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아버지 춘식의 굽은 등이었다.
“아버지.”
단정하고 이질적인 표준어 억양. 그 부름에 춘식이 고개를 들었다. 반년 만에 본 아비의 얼굴은 백발의 노인처럼 폭삭 늙어 있었다. 춘식은 딸의 얼굴을 보자마자 제 더러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짐승처럼 흐느꼈다.
“유라야… 미안하다. 애비가 등신이라서… 니 오빠 하나 몬 살리고, 니 꿈도 이래 꺾어버리고….”
유라는 대답 없이 아버지의 그 시꺼먼 손을 감싸 쥐었다. 거칠고 투박한, 평생을 불 속에서 쇠를 벼리며 정직하게 살아온 손. 그러나 이 세상은 그 정직함을 대가로 오빠의 생명과 자신의 미래를 통째로 앗아갔다.
일식의 병원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무균실 비용과 수입산 항암제 값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춘식이 받는 알량한 월급으로는 이틀 치 약값조차 댈 수 없었다.
결국 춘식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숨통을 끊어놓은 포식자의 아가리 속뿐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눅눅한 밤, 유라는 아버지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직감하고 말없이 그 뒤를 밟았다.
해원 시장터 한복판. 주변의 낡고 낮은 상가들을 비웃듯 기괴하게 증축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
[태국 종합개발 (M&A·부동산 전문)]
번들거리는 네온사인 간판 아래, 통유리로 마감된 건물 외벽이 빗물에 번져 번뜩였다. IMF 이후, 해원 사람들에게 저곳은 군청 청사나 굳게 닫힌 은행 철문보다 더 서늘하고 절대적인 공포의 성전(聖殿)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지만, 태국의 돈은 주먹보다 빠르고 법보다 잔혹하게 사람의 숨통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그 위압적인 성전의 1층 입구. 비에 흠뻑 젖은 춘식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입구를 가로막고 선 것은 강수만이었다. 수만은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도, 감정 없는 돌부처처럼 춘식의 앞길을 차단하고 있었다.
“수만아… 제발 길 좀 비키도. 사장님 한 번만 만나게 해도! 우리 일식이… 내 새끼가 죽어간다 안 카나!”
춘식이 빗물 섞인 진흙탕에 이마를 찧으며 애원했지만, 수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춘식의 절규는 그저 처리해야 할 소음에 불과했다.
그 시각, 건물 2층의 사장실. 통유리 창 너머로 최태국이 뒷짐을 진 채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려 한 시간째, 빗속에서 벌레처럼 꿈틀대는 춘식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거대한 우상(偶像)이 되어 제 발밑에 엎드린 세상의 비참함을 즐기는 오만한 유희였다. 하지만 시장통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태국은 쳇, 하고 혀를 찼다. 아직은 대중의 눈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위선적인 '지역 유지'의 탈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가자. 벌레 한 마리 치우러.”
잠시 후, 1층의 강화 유리문이 열리고 최태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에는 이영숙이 뱀처럼 달라붙어 커다란 검은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태국의 번쩍이는 구두코가, 진흙탕을 뒹굴어 엉망이 된 춘식의 굽은 어깨 앞에 멈춰 섰다.
춘식은 번쩍이는 그 구두코를 올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뗐다. 평생 땀 흘려 일하는 자의 자부심으로, 남의 피를 빨아먹는 고리대금업자를 내심 얕잡아보며 부르던 평생의 습관이 엉겁결에 불쑥 튀어나왔다.
“태국아……!”
그러나 춘식은 제 입에서 떨어져 나온 그 이름이 허공에 닿기도 전에, 등골에 끼얹어지는 지독한 현실을 자각했다. 그의 굵은 목울대가 거칠게 한 번 출렁이더니, 납작 엎드린 목소리가 다급하게 뒤집어졌다.
“……아이다, 최 사장. 아이고, 최 사장님! 내 좀 살려주이소! 제발 우리 일식이, 내 새끼 약값만 쪼매 대주이소. 내 남은 평생 사장님 밑에서 개처럼 기면서 다 갚겠심더! 제발요, 사장님!”
춘식이 피맺힌 절규와 함께 태국의 바짓가랑이를 향해 거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강수만이 말없이 발을 내밀어 그 앙상한 손을 짐승 쳐내듯 거칠게 걷어찼다.
태국은 발밑에 나뒹구는 춘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서늘한 시선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허공 어디쯤을 향한 채, 얼음장 같은 목소리만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김 사장. 인자 니 명의로 된 거는 숟가락 몽디 하나 안 남았는데, 내가 뭘 믿고 돈을 대주노. 어설픈 동정심은 돈놀이하는 놈한테 쥐약인 기라. 그만 가라.”
“최 사장! 사장님……! 제발 내 목숨이라도 가져가이소!!”
춘식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시멘트 바닥에 쿵, 쿵 머리를 찧어댔다. 이마가 터져 붉은 피가 배어 나왔고, 피는 이내 차가운 빗물에 섞여 진흙탕으로 번져 나갔다. 평생 벌건 불 앞을 지키며 쇠를 벼려온 장인의 긍지가, 서늘한 자본의 폭력 앞에서 가장 비참한 핏물로 으깨어지는 순간이었다.
태국은 흙탕물이 제 구두에 튈세라 미간을 찌푸리며 영숙이 받쳐 든 우산 속으로 몸을 물렸다. 그 신호를 받은 수만이 품에서 젖은 지폐 몇 장을 구겨 꺼내더니, 바닥에 엎드린 춘식의 뒤통수를 향해 경멸하듯 툭 던졌다.
그리고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있었다. 멀지 않은 시장 모퉁이의 ‘정 할머니 국밥집’ 처마 밑. 비를 피해 모여든 시장 사람들 틈바구니에 기백이 섞여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빗속에 무릎 꿇은 춘식과 그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는 아비 태국을 쏘아보고 있었다. 기백의 턱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비에 대한 증오와, 힘없이 무너진 춘식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저 압도적인 돈의 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그의 눈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가장 서늘한 시선은 따로 있었다. 맞은편 상가 건물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유라였다. 그녀의 눈에 이 모든 지옥도가 낱낱이 박제되었다.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2층의 최태국, 길을 막아선 강수만, 뱀처럼 웃고 있는 이영숙, 그리고 빗물과 핏물 속에 처박힌 아버지의 비참한 등.
유라의 가슴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선의(善意)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저 거대한 성전이… 아버지를, 우리 가족을 재물로 삼아 세워진 거라면.’
유라는 빗물에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해원 바닥의 그 어떤 짐승보다 더 지독하고 차가운 독기가 똬리를 틀었다.
‘기꺼이 당신들이 숭배하는 신이 되어줄게. 가장 타락한 모습으로 저 문을 열고 들어가, 기어이 그 견고한 성전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려 주겠어.’
1998년의 비극적인 여름밤. 시장 한복판에 우뚝 선 탐욕의 성채 앞에서, 한 여자가 제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가장 서늘한 계약이 맺어지고 있었다. 아비를 무너뜨린 자들에게 기어이 복수의 핏물을 들이붓게 될 붉은 독버섯은, 그렇게 가장 참혹한 굴욕의 흙탕물 속에서 소리 없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