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피눈물 젖은 땅 (1998)
해원에서는 예부터 흙이 사람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논은 주인의 발자국을 기억하고, 밭은 농부의 땀 냄새를 기억하고, 산자락은 아낙들의 기도와 한숨을 고스란히 품어주었다. 그래서 무지렁이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흙을 함부로 욕하지 않았다. 내년 농사에 벌이 내릴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흙이 사람의 알량한 목숨보다 훨씬 더 오래 곁을 지킨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의 칼바람이 지나간 뒤, 해원의 흙에는 갑자기 흉측한 입이 생겼다. 입이 생기면 말이 돌고, 말이 돌면 값이 매겨진다. ‘논’ ‘밭’ ‘산’이라는 다정한 이름 대신, ‘지번’ ‘용도 변경’ ‘개발 가능성’ 같은 서늘한 말들이 읍내를 떠돌았다. 사람들은 흙을 바라보며 더 이상 생명을 보지 못하고, 흙껍데기 위에 덧씌워진 숫자만을 보았다. 숫자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손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그 손이 향하는 곳은 늘, 가장 약한 자들의 목줄이었다.
태국의 간판은 그 입을 가장 먼저 달았다. [태국 종합개발 (M&A·부동산 전문)]
요즈음 들어 그 간판은 핏빛처럼 번들거렸다. 예전의 ‘태국금융’이 장부로 사람을 눌렀다면, 지금의 ‘종합개발’은 아예 땅의 지반을 흔들어 사람의 뿌리마저 뽑아 넘겼다. ‘인수’라는 우아한 말은 해원 바닥에서 ‘삶을 통째로 빼앗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춘식 철공소가 허무하게 넘어가던 날, 장터 사람들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이를 갈았다.
“인자 저놈들은 공장만 잡아묵는 기 아이고, 동네 숨통을 통째로 잡아묵을 낀데.”
그러나 가난한 자들의 말은 늘 현실보다 늦다. 잡아먹는 자의 이빨은 탄식보다 언제나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춘식 철공소’의 주인이 바뀐 뒤로, 해원 읍내에는 기괴하고 끈적한 정적이 깔렸다. 낮에는 장터가 예전처럼 돌아가는 듯 보였으나, 사람들의 눈동자는 허공을 떠돌며 서로를 피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 어느 집 논마지기가 태국 종합개발에 담보로 잡혔는지—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파리한 안색만으로 대충 다 알게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사정을 알게 되면 인사가 줄어들고, 인사가 줄어들면 마을은 핏기가 가신 채 금방 늙어버린다.
장터 모퉁이 다방. 늘 복덕방 투기꾼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호기를 부리던 자리에 이제는 다른 질감의 사람들이 앉았다. 예전에는 ‘땅을 사려는 자’가 앉아 웃었지만, 이제는 ‘땅을 팔아야만 사는 자’가 고개를 숙였다. 같은 낡은 소파에 앉아도 눈빛의 온도가 달랐다. 땅을 팔러 온 자의 말끝은 가을 풀벌레처럼 가늘게 떨렸고, 그 피를 빨아먹으려는 자의 목소리는 굵고 거만했다. 그 비참한 간극 사이에서 중개꾼의 세 치 혀만 독사처럼 가장 바쁘게 널름거렸다.
해원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빚’을 말할 때, 지독한 병(病)을 부르듯 입술을 떨었다.
“그 집은 빚이 들었다.”
“저 집은 빚이 번졌다 카대.”
그 말마따나 빚은 몹쓸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담보라는 이름으로, 연대 보증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절망이 내 절망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태국 종합개발의 3층 사무실에는 밤이 깊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 불빛은 세상을 밝히는 따뜻한 불이 아니었다. 숨이 끊어져 가는 망한 집의 속을 시퍼렇게 헤집는, 차가운 수술실의 조명등 같은 불이었다.
가끔 건물 밖으로 둔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딱.
붉은 인주가 묻은 도장이 종이 위로 떨어지는 소리. 그 한 번의 소리에 빳빳한 종이가 반으로 접히고, 누군가의 굴곡진 삶도 가차 없이 두 동강으로 접혀 나갔다.
읍내가 빚이라는 병으로 말라 죽어갈 무렵, 진주 시내의 병원 무균실에서는 진짜 피가 하얗게 죽어가고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한결 진해지고, 의사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간호사들의 말이 턱없이 짧아졌다. 병원에서 짧아진 말은 늘 돌이킬 수 없는 소식을 품고 있는 법이다.
일식은 하얀 무균실 안에서, 자기 몸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바스라져 갔다. 붉고 뜨거웠던 청년의 피가 차갑고 하얀 무엇인가로 바뀌어 가는 참혹한 과정. 살갗은 밀랍처럼 창백해졌고, 호탕하게 웃던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졌으며, 눈은 자꾸만 두개골 깊은 곳으로 침잠했다. 사람이 깊어지는 것은 대개 연륜과 생각이 쌓일 때라지만, 일식의 깊어짐은 그저 생명의 불씨가 바닥으로 속절없이 꺼져 들어가는 침강(沈降)이었다.
그 잔인한 계절의 어느 오후. 진주 대학병원 정문 앞은 택시들이 숨차게 들락거리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유리문에 부딪혀 어지럽게 되돌아왔다. 기백은 그 유리문 앞에서 한 번 들어갈 뻔하다가, 이내 물러섰다. 발이 제 것이 아니었다. 들어가자니 춘식의 얼굴이 떠오르고, 돌아서자니 목구멍에 가시가 찔린 듯 아팠다.
주머니 속 봉투가 손바닥에 땀을 묻혔다. 원무과로 가서 이름 모르게 내고 나오면 된다—그렇게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정리를 했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아비의 죄를 조금이라도 씻어내려는 아들의 미련하고 처절한 속죄였다. 그런데 저 투명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하얀 복도 끝 어딘가에 지옥 같은 ‘춘식이네’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이 기백의 발목을 무겁게 잡았다.
그는 벽에 붙었다가, 다시 기둥 뒤로 숨었다. 사람들 사이로 몸을 비집고 나와서는 또 멈췄다. 병원은 이상하게도 모든 걸 밝히는데, 그 시린 밝음이 사람을 더 숨게 만들었다. 기백은 봉투를 쥔 손을 주머니 깊숙이 더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이 얼얼했다.
그때, 낡은 택시 한 대가 급히 브레이크를 잡고 섰다. 문이 열리자 춘식이 굴러 떨어지듯 내렸다. 병원에서 치료비가 밀려 약 투여가 중단되었고, 오늘이 고비일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혼비백산 달려온 참이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병원 문을 향해 짐승처럼 돌진하던 춘식의 앞을, 기백이 본능적으로 막아섰다.
“……아재요.”
춘식이 퀭한 눈으로 기백을 올려다보았다.
원수의 아들이었다.
기백은 끝내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받으이소. 아부지는 모르는 돈입니더. 급한 대로…… 일식이 약값에라도 보태이소.”
춘식은 봉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최태국의 아들이 건네는 돈. 자존심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야 할 돈이, 지금 당장 내 새끼 목숨줄을 붙들 세상의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춘식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부들부들 떨며 봉투를 받아들었다. 사내의 굽은 등짝이 격하게 들썩였다. 고마움인지, 치욕인지, 세상에 대한 원망인지—어느 쪽도 아니라는 듯,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소리만 터져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야……!”
춘식은 병원 입구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힐끗거렸지만, 자식 죽어가는 아비의 통곡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기백은 그 끔찍한 울음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개를 더 깊이 숙일뿐이었다. 한참을 토해내듯 울던 춘식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기백은 도망치듯 앞장서는 춘식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두 사내는 말없이 복도를 달려 무균실 앞에 섰다.
유리창 너머, 일식이 며칠 만에 힘겹게 눈을 뜨고 달싹이는 입술을 열고 있었다. 방진복을 입고 들어간 춘식은 아들의 마지막 호흡이라도 받아 마시려는 듯, 굽은 등을 한껏 수그려 일식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다. 유리창 밖의 유라도 숨을 멈추었다.
일식이 가쁘게 오르내리던 가슴을 멈추고, 아주 작고 건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부지. 쇠…… 냄새가 난다."
그 마지막 쇳내를 기억해 낸 일식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가, 이내 천천히 허물어졌다. 심전도 모니터의 붉은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지며 ‘삐—’ 하는 기계음을 토해냈다. 춘식은 짐승의 울음을 터뜨리며 아들의 싸늘한 가슴팍에 제 시꺼먼 얼굴을 파묻었다.
그 순간, 무균실 밖 복도의 정적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일식아—! 내 새끼야!!”
유리창에 매달려 숨을 죽이고 있던 일식의 어미가 바닥으로 쿵, 하고 허물어져 내렸다. 간호사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쓰러진 어미를 들어 올리려는 의료진들의 다급한 외침이 섞이며, 고요했던 복도는 순식간에 혼비백산한 소란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그 끔찍한 소란의 한가운데서, 유라는 미동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제 발밑에서 기절해 숨 넘어가는 어미를 부축하려 허리를 굽히지도,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유라의 차갑고 건조한 눈동자는 오직 얇은 유리벽 너머, 식어버린 오빠의 얼굴에만 무섭도록 고정되어 있었다. 그 기괴하리만치 고요한 뒷모습은 슬픔에 압도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끝을 넘어서 버렸다는 서늘한 표식처럼 보였다.
그 뒤편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기백이 서 있었다. 그는 아비의 죄를 뒤집어쓴 죄인처럼 굳어 있었다. 유리 너머로 피를 토하듯 오열하는 춘식, 복도 바닥에 쓰러진 어미, 그리고 완벽하게 정지해 버린 유라. 이 처참한 지옥도가 기백의 망막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순간, 기백의 가슴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 얼어붙어 있던 무엇이 ‘쩍’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연민의 눈물이 아니었다. 먼 옛날, 어미가 자신을 어두운 해원천 다리 위에 남겨두고 떠났던 밤 이후로—살아남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제 안에 꽁꽁 묶어두었던 봉인이 풀리는 소리였다. 기백은 주먹을 꽉 쥔 채, 소리 없이 턱 밑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묵묵히 삼켰다.
유라는 그때 처음으로 길게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기백과는 달랐다. 그녀의 눈에서는 끝내 눈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눈빛 속 어딘가에, 무겁고 서늘한 도장이 내려앉듯 조용한 확정이 새겨졌다.
끝났다.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오늘 여기서 끝이 났다.
그날 밤, 해원의 밤하늘은 잔인하리만치 맑고 투명했다. 죽음은 먹구름이 끼고 천둥이 치는 궂은날에만 찾아오지 않는다. 죽음은 둥근달이 떠도 오고, 별이 쏟아져도 온다. 세상의 슬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무심한 제 순서에 맞춰 뚜벅뚜벅 걸어올 뿐이다. 일식은 맑은 별빛이 떨어지는 새벽을 넘기지 못했다.
죽음의 소식은 해 뜨는 아침보다 빨리 장터로 스며들었다. 정 할머니 국밥집의 가마솥에서도 평소처럼 하얀 김이 피어올랐고, 아침을 먹으러 온 사람들의 입에서도 웅성거리는 말들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날 아침의 말에는 아무런 온기가 없었다. 지독한 가난과 병마 앞에서는 어떤 위로도 온전한 얼굴을 갖지 못했다.
정 할머니는 펄펄 끓는 국을 푸다 말고 묵직한 국자를 든 채 허공에서 손을 멈추었다. 국밥은 이리도 끓어 넘치는데, 청춘의 숨은 차갑게 꺼져버렸다. 사람이 꺼지면 마을의 온기도 꺼진다. 장터를 지키며 숱한 죽음을 보아온 노파는 위로의 말 대신 길고 깊은 한숨만 국밥 김 속으로 섞어 보냈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누군가가 혀를 차며 낮게 중얼거렸다.
“춘식이네…… 인자 싹 다 끝났네.”
그의 입에서 나온 ‘끝났다’는 말은 안타까움의 마침표가 아니었다. 방패막이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자들—이제 온전한 먹잇감이 되었다는 확인 사살에 가까웠다.
그 씁쓸한 오후, 태국 종합개발의 사장실에서는 어김없이 붉은 인주가 묻은 도장이 서류 위로 떨어졌다.
딱.
서류에 찍히는 도장은 결코 사람의 눈물로 젖지 않았다. 세상에는 타인의 피와 눈물로도 절대 젖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도장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 폭력에 찢기고 젖어드는 쪽은 연약한 사람 쪽이었다.
해원의 땅은 그날도 말없이 사람들의 발밑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흙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포식자가 무엇을 강탈했는지. 무지렁이들이 흘린 이 피눈물이 결코 증발하지 않고 흙 속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언젠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붉게 피어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그해, 해원의 붉은 땅은 소리 없이 질척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로 젖는 것이 아니었다. 속절없이 으깨어진 사람의 피와, 차갑게 얼어붙은 원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