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흙의 아들들

27장. 검은 흙의 예언

by 진동길

27장. 검은 흙의 예언



정 할매 국밥집, 짐승들을 향한 예언



1999년 12월의 끄트머리였다. 해원 읍내는 해가 뜨기도 전에 어두웠고, 어둠은 해가 떠도 잘 걷히지 않았다. 바람이 골목을 꺾어 들어오면, 비닐 지붕이 먼저 울고 사람의 속이 나중에 울었다. IMF가 지나간 뒤로는, 사람들 말이 바싹 말라 있었다. 말라서 더 잘 부러지고, 부러진 말끝은 남의 살을 더 잘 베었다.


정 할매 국밥집은 그런 말끝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었다. 국밥집은 국밥을 팔았지만, 사실은 귀를 팔았다. 숟가락이 그릇을 두드리는 소리, 소주병이 탁자에 닿는 소리, 젓가락이 수육을 더듬는 소리—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씹었다.


가마솥에서는 뼈를 오래 고운 국물이 뽀얗게 끓고 있었다. 솥뚜껑 가장자리에 맺힌 물방울이 ‘툭’ 떨어질 때마다 김이 두껍게 치솟았다. 그 김 속에서 얼굴들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눈이 작아지고, 입술이 말라붙은 얼굴들. 한 잔씩 넘길 때마다, 사람들은 어쩐지 더 깔끔한 표정을 짓고 더 더러운 말을 했다.


“들었능가. 보상금이 쌩현찰만 백오십억이라 카더라.”


누군가가 말하자, 맞은편 사내가 습관처럼 코웃음을 먼저 흘렸다. 그 웃음은 기쁘지 않았다. 숫자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걸, 이 읍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숫자는 늘 혀끝에서 반짝였다.


“현찰이 그만치면… 트럭 한 대는 와야 되겠네.”


그 말에 몇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트럭이라는 단어가 먼저 혀끝에서 굴렀다. 숫자가 커지면 사람들은 물건부터 떠올린다.


“트럭은 니 희망이고, 현찰은 니 망상이다.”
“그라모 백오십억이 어데 있노.”
“있긴 있지. 은행도 모르는 종이로. 이름 없는 수표, 양도성 뭐시기… 그런 걸로.”
“그걸 현찰이라 카는 기다. 그래야 손에 잡히는 기 같으니까.”


말이 술기운을 타고 굴러갔다. 누군가는 국밥을 한 숟갈 떠먹고, 누군가는 국물만 들이켰다. 국물만 먹는 사람은 대개 마음에 살이 없고, 마음에 살이 없는 사람은 남의 살을 더 잘 짐작한다.


“최 영감 총재산이 삼천억이라던데. 군수고 서장이고, 해원장 문지방이 닳는다 안 카나.”
“아이고, 삼천억. 그 돈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나. 짐승 되게 하지.”
“짐승이야 원래 짐승이지. 돈이 짐승한테 발톱을 달아주는 기고.”


탁자 위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가 켜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불이 붙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도 잠깐 불빛처럼 흔들렸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까. 누가 먼저 남의 집구석을 해부할까.


“그 집구석 꼬라지가 영 말이 아이다.”


구석 자리에서 막걸리를 들이켜던 사내가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다고 말이 작아지는 건 아니었다. 국밥집에서 낮춘 말은 더 멀리 갔다. 소문이란 본래, 낮은 데서 시작해 높은 데로 기어오르는 벌레 같았다.


“장남 기백이 있제. 얼마 전에 밥상 엎고 애비 멱살 잡았다 카더만.”
“근데도 아직 수족 노릇 한다 아이가.”
“요새 산 24번지 천막들… 용역 풀어가 다 때려 부순다 카더라. 지가 앞장섰다 카대.”


누군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소리가 뜻밖에 무겁게 났다. 산 24번지라는 말이 나오면, 읍내 사람들은 잠깐 눈을 딴 데로 돌렸다. 그 산비탈 판잣집들은 땅이라기보다 사람의 숨결이었다. 연탄 냄새, 젖은 이불 냄새, 겨울에 얼어붙은 콧물 냄새. 그런 냄새는 돈 냄새보다 오래 남는다.


“둘째는 서울 가 있제. 이현이.”
“그 놈은 또 다르다 카더라.”
“서울이랑 해원을 들락거리면서… 검사들이 있는 집안 여자고 만나고 댕긴다 카고.”
“아부지 닮아도 딴 데로 닮았다. 손에 흙 묻히는 게 싫은 기지.”


말이 이현에게로 넘어가자,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정돈됐다. 기백은 폭력이고, 이현은 계산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은 남의 집 아들들까지 분류하고 이름표를 붙였다. 분류는 늘 쉽고, 쉬운 건 늘 잔인했다.


그때 또 다른 사내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낮아지며, 이상하게도 국밥집의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제일 기가 막힌 건 셋째 서하 도련님이다.”


사내는 ‘도련님’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 말끝을 조금 비틀었다. 존대와 조롱은 자주 같은 입에서 나왔다.


“그 곱게 자란 양반이 밤마다 철거촌 진흙탕에 기어들어 와서, 큰형이 깡패들 시켜 찢어놓은 살을 꿰매준다 아이가… 쯧쯧.”


“게다가 그 집안 여자들 팔자는 또 어떻노.”
“첫째 부인 윤 씨는 옛날에 도망치다 잡혀가, 생사도 모른다 카고.”
“둘째 부인 소피아 마님은… 영숙이 그 여우 같은 년한테 홀린 최 영감이 미친년으로 몰아가 정신병원에 쳐넣어뿟다 아이가.”
“억울하게 갇힌 친어미 돌보러 병원 들여다보는 건 셋째 서하 도련님뿐이라더라.”


말이 여기까지 오면, 사람들은 잠깐 멈칫한다. 멈칫하는 순간마다 국밥은 식고, 국밥이 식으면 다시 숟가락이 빨라진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마음에 걸릴 때 더 급하게 먹는다.


“거, 서하 도련님 세례명이 여호수아라 캤제.”
“진짜 십자가 진 천사가 따로 없구만.”


누군가가 가볍게 웃었다. 웃음이 나와버리면, 슬픔은 더 처참해진다. 누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도 웃음은 나온다. 국밥집 웃음은 늘 살짝 늦게 나온다. 늦게 나와서 더 추하다.


“천사는 무슨.”


이번엔 다른 사내가 말을 끊었다. 목소리에 기름기가 없었다. 기름기 없는 목소리는 대개 오래된 분노였다.


“그 집구석에서 제일 불쌍하고 무서운 건 따로 있데이. 강수만.”
“아… 그 사생아.”
“79년도에 하녀로 있던 어미가 피 토하고 콱 죽어삤다 카더라. 즈그 아비한테는 벌레 취급받던….”
“최 영감이 성씨를 ‘강’ 씨로 맹글어뿟다 카더만, 읍내 바닥에서 그놈이 최태국 자식인 거 모르는 놈이 어딨노.”
“막돌이 어멈이 불쌍타꼬 제 새끼처럼 거둬 키웠다 카는데… 요새 그 수만이 놈 눈깔 보모, 꼭 사람 목통 물어뜯을 날만 기다리는 미친개 같단 말이지….”


말끝이 길어지자, 술잔이 한 번 더 부딪혔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이상하게도 ‘합의’처럼 들렸다. 국밥집에는 이런 합의가 많았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누가 곧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소문으로 합의하고, 합의로 소문을 만든다.


막걸리를 따르던 손이 잠깐 멈췄다. 누군가가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라모 기백이랑 약혼한 박 군수네 외동딸은 우예 된 기고?”
“요새 기백이 놈한테서… 그 첩년 영숙이 분 냄새가 진동한다꼬, 동네 개들이 다 웃는다 안 카나.”
“안 그래도 그 숭악한 소문 땜에 박 군수랑 최 영감이 군수실에서 핏대 세우고 대판 싸웠다 카더라.”
“아이고, 남사시러버라.”


사람들은 ‘남사시럽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 자체를 좋아했다. 남의 불행은 부끄러운 구경거리라서 더 맛있다. 맛있는 말은 금방 퍼진다.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끝내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그라모… 춘식 아재네 딸내미 유라는 요새 우예 지낸다노?”


이름 하나가 국밥집의 공기를 바꿨다. ‘유라’는 소문이 많고, 소문이 많은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살아 있다는 건 죄가 되기도 하고, 복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가시나는 요새 억수로 잘 나간다 카대.”
“며칠 전에 춘식 아재가 깡패들한테 개 패듯이 맞고 쓰러졌을 때, 까만색 삐까뻔쩍한 외제차 타고 싹 나타났다 카더만… 눈깔에 독기가, 독기가 아주 시퍼렇게 올랐더란다.”
“대기업 회장님 첩으로 들어갔다는 둥… 서울서 젤 잘나가는 검사랑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둥….”

말이 튀어나온 순간, 누군가가 젓가락으로 탁자를 ‘톡’ 쳤다.

“어허. 쉿.”
“주둥이 조심해라. 잘 알지도 못하믄서 엄한 소리 캤다가… 춘식 아재 귀에라도 들어가모 우얄라꼬.”


입을 다무는 순간이 왔다. 국밥집은 늘 이런 순간에 늦게 깨닫는다. 입은 칼보다 빠르고, 칼보다 멀리 간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때였다.
가마솥 앞에서 줄곧 국자로 선짓국을 퍽퍽 저어대던 정 할매가, 문득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이 아니라, 솥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귀를 기댔다. 국밥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건, 오래 끓인 국물과 오래 산 노파의 직감이었다.


“피가 끓는다, 끓어.”


정 할매는 국자로 솥바닥을 한 번 긁었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사람 가슴팍을 한 번씩 쳤다.


“썩은 고깃덩어리 파먹겠다고 똥파리들이 바글바글 모여드는데, 조만간 큰비 한 번 쏟아지몬 다 쓸려 내려갈 기다.”

“짐승의 집구석엔… 피비린내 말고는 남는 기 없는 벱인기라….”


국밥집 안이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숟가락을 들고도 입에 넣지 못했다. 누군가는 소주잔을 들고도 입술에 대지 못했다. 예언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예언을 하는 사람의 무심한 확신이 무서웠다. 그 확신은, 국물처럼 오래 끓은 것이었다.




같은 시각, 해원장 대저택의 가장 구석진 뒤뜰.

바람이 살을 베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막돌이 어멈이 앙상한 맨손으로 꽁꽁 얼어붙은 화단의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흙은 손에 닿는 순간부터 질척했고, 질척한 흙은 손의 온기를 빼앗아갔다. 오래된 집의 흙은 늘 차가웠다. 차가운 흙은 늘 뭔가를 숨겼다.


막돌이 어멈은 소피아 마님이 해원장에 있던 시절, 그 선한 영향으로 세례를 받았다고들 했다. ‘마르타’라는 세례명이 입에 오르내렸다. 사람들은 그걸 믿기도 하고 비웃기도 했다. 믿는 사람은 조용히 믿었고, 비웃는 사람은 크게 비웃었다.


서걱, 서걱.


흙은 시커멓고 축축했다. 막돌이 어멈은 그 흙의 색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집안의 역사도, 그 흙의 냄새도, 그 흙에 섞인 피의 결도.


1979년 겨울, 수만의 친어미가 이름 모를 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갈 때—최태국은 안방 문턱조차 넘지 않았다. 노파는 그때 주판알만 튕기던 사내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사람의 죽음보다 돈이 먼저였던 얼굴. 그렇게 사람을 ‘값’으로 바꾸는 얼굴.


어미를 잃고 버려진 핏덩이 수만을 보며, 막돌이 어멈은 속으로 다짐했었다.


‘괜찮다. 내가 키운다.’
‘밥 줄 거고, 옷 꿰매 줄 거고, 재울 데 줄 거다.’


그 약속대로, 노파는 수만을 제 새끼처럼 거두어 키웠다. 인간으로 살려내고 싶었다. 짐승의 집구석에서, 단 한 마리라도 사람으로 남기고 싶었다.


막돌이 어멈이 파낸 검은 흙을 쥐고 코끝에 가져갔다.


“……썩었재. 아주 단단히 썩어 문드러졌어.”


흙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철거민들의 피눈물, 피 토하고 죽어간 수만 어미의 원혼, 정신병원에 갇힌 소피아 마님의 울음, 그리고 돈과 땅의 탐욕이 해원장의 지맥을 타고 흘러들어와 뿌리를 썩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품속에 숨겨둔 낡은 묵주가 손에서 미끄러져 흙 위에 툭 떨어졌다. 묵주는 흙에 닿자마자 더 낡아 보였다.


그때, 어둠이 갈라졌다.


“아이고, 깜짝이야!”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모피 숄의 윤기가 뒤뜰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이영숙이었다. 실크 나이트가운이 달빛을 받아 물처럼 흘렀다. 그녀는 코를 틀어막았다. 흙냄새는 늘 그녀를 모욕했다. 흙은 그녀가 이 집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흙은 진짜였고, 진짜는 늘 더럽고 무거웠다.


“노친네가 미쳤나. 이 새벽에 궁상맞게 흙바닥에서 뭐 하는 짓거리요!”
“며칠 뒤면 산 24번지 기공식이라 집안에 경사가 났는데, 초를 쳐도 유분수지!”


막돌이 어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영숙의 비단옷 자락을 천천히 가리켰다. 흙 묻은 손가락이 비단을 겨냥하는 순간, 비단이 더 차갑게 보였다.


“……작은마님.”
“비단옷이 참 곱네예.”


영숙이 비웃으려는 찰나, 막돌이 어멈의 말이 이어졌다. 말은 낮고, 느렸다. 느려서 더 확실했다.


“근데 어짜노.”
“내 눈에는 그 비단옷이… 마님 입고 들어갈 수의로만 보이는데.”


영숙의 눈이 흔들렸다. 손이 올라갔다가 멈췄다. 손바닥이 허공에서 떨었다. 따귀는 한순간인데, 이 늙은 여자의 눈빛은 오래 붙었다. 오래 붙는 눈빛은 사람을 벗긴다. 영숙은 더럽게 벗겨지는 느낌에 몸서리쳤다.


“뭐, 뭐라꼬?”
“이 늙은이가 주둥아리를 확…!”


막돌이 어멈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정확히 내딛는 얼굴이었다. 오래 산 노파는, 죽음을 말할 때 목소리가 커지지 않았다. 죽음은 늘 조용히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백이 도련님 품에 안기면… 그 금고가 마님 차지가 될 줄 아시지예?”
“착각하지 마소.”
“마님은 그저, 배고픈 짐승 새끼들한테 목덜미 물어뜯길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더.”


영숙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막돌이 어멈은 마지막으로 바람처럼 덧붙였다.


“그 더러운 욕심 안 버리면… 기공식 날 밤에, 마님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지는 핏물이 이 마당을 뻘겋게 적실 끼구만.”


영숙은 따귀를 끝내 때리지 못했다. 대신 뒷걸음질쳤다. 모피 숄이 뒤집히며 그녀의 목을 더 죄었다. 영숙은 안채로 달아났다. 달아나는 발걸음이 “내가 무서운 게 뭐가 있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발뒤꿈치는 이미 공포였다.


영숙이 사라진 뒤뜰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고, 그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창고 쪽에서 강수만이 걸어 나왔다. 그는 막돌이 어멈을 스치듯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노파의 떨리는 한마디가 발목을 잡았다.


“수만아.”


수만이 멈췄다. 멈추는 순간, 바람 소리만 남았다. 바람 소리마저도 누군가의 숨결처럼 들렸다.

수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막돌이 어멈은 그 등 뒤에 길게 드리워진 시커먼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마치 그림자가 사람을 끌고 가는 것처럼.


“니 등 뒤에… 시뻘건 귀신들이 잔뜩 올라타 있네.”


수만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흔들렸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흔들리는 건, 아직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어무이.”


수만이 낮게 말했다.
“날도 찬데…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들어가 주무시지예.”


막돌이 어멈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말은 울음보다 더 무거웠다.


“내가 니를 와 거뒀는데.”
“니 친어미가 피 토하고 죽었을 때, 남들 눈 속인답시고 성까지 갈아치운 아비 밑에서 개돼지 취급받던 니 입에… 내가 와 따신 밥 밀어 넣고 옷을 꿰매입혔는데!”


노파의 손이 수만의 손등을 꽉 움켜쥐었다. 흙 묻은 손이었지만, 그 손은 따뜻하려 했다.


“니 하나만이라도 사람답게 살라꼬 거둔 기다.”
“그 주머니에 든 칼… 당장 버리라.”
“남의 피를 제물 삼아 복수하려는 놈은… 결국 지 영혼도 지옥불에 타죽고 마는 기다.”


수만의 턱 근육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 근육이 꿈틀거릴 때마다,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부서지는 건 연민인지, 후회인지,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지.


하지만 수만은 막돌이 어멈의 손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빼냈다. 빼내는 동작이 정중해 보일 만큼, 그의 마음은 이미 거기 없었다.


수만의 텅 빈 동공 속에는, 평생 짐승의 발밑에서 짓밟히며 새겨진 허무와, 살아서 이 지옥을 집어삼키겠다는 독기만이 뒤엉켜 있었다.


“……어무이.”


수만이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웃음은 서글펐고, 서글퍼서 더 잔혹했다.


“지옥이 무서웠으면… 애초에 이딴 집구석에서 숨 쉬고 살지도 않았습니더.”
“어무이가 지은 따신 밥 묵고 이만큼 컸응께… 이제 그 밥값 해야지예.”
“내 혼자 독박 쓰고 저승 가진 않을 낍니더.”
“가는 길 외롭지 않게… 길동무나 넉넉히 챙겨 갈 낍니더.”


막돌이 어멈의 오열을 뒤로한 채, 수만은 안채 쪽으로 유령처럼 걸음을 옮겼다. 당장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목을 끊기 위함이 아니었다. 더 늦고, 더 정확한 일을 위해서였다. 이 집의 동선을, 사람의 동선을, 욕심의 동선을, 그리고 그 욕심이 서로를 물어뜯는 순서를—어둠 속에서 미리 눈에 새겨두기 위한, 서늘한 리허설이었다.


안방 문 앞에 선 수만은 주머니 속 사시미 칼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문풍지 너머로 늙은 수컷의 코골이가 들려왔다. 그 코골이는 사람의 숨이 아니라 짐승의 숨이었다. 수만의 핏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연민의 찌꺼기가 그 소리 위에서 증발했다.


새벽 다섯 시.

해원장의 검은 흙 위로 잿빛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최태국이 그토록 고대하던 산 24번지 기공식 만찬은 이제 단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기공식은 삽을 뜨는 날이 아니었다.
이 집이 문을 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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