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3장 — 오! 운명이여

by 진동길

13장 — 오! 운명이여

2000년 3월 15일 새벽 05:55–08:40 / 경남 해원읍내, 정 할매 국밥집

(라디오에서는 오르프의 합창이 낮게 깔렸다가, 갑자기 터졌다가, 다시 낮아졌다.)



탕. 탕. 탕.


무쇠 솥뚜껑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둔탁한 파열음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정 할매 국밥집의 가마솥은 지옥의 아가리처럼.

붉은 불기운을 삼키며 끓었다.

솥뚜껑 가장자리에 붙은 그을음이 달아오르다 식고, 달아오르다 식었다.

뜨거운 것은 늘 그렇게 반복해 사람을 길들인다.


밖에서는 매화가 떨어지고 있었다.
해원 땅의 매화는 먼저 피고 먼저 젖는다.

문 열릴 때마다 매화꽃잎이 한두 장씩 들어왔다가, 젖은 바닥에 붙어버렸다.


밟히면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소리 안 나는 것들이 더 오래 남았다.

바다 비린내를 싣고 온 바람이 꽃잎을 적시면,

꽃잎은 무게를 얻고 무게를 얻은 꽃잎은 흙에 더 깊이 박힌다.


떨어진 꽃잎이 땅을 덮는 게 아니라 땅에 파고들어가,

봄을 덮어버리는 날이 있다.

해원 사람들은 그날을 “비린 날”이라 했다.

흙이 비리면 사람 마음도 쉽게 비린내를 낸다.


땅땅땅.
도마 위 칼끝이 내리치는 소리가 합창의 박자처럼 가게 안을 쪼갰다. 라디오에서는 낮게 웅성거리던 소리가 한순간 터져 나왔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고요와 폭발이 번갈아 오고 가는 음악. 운명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고, 누군가 말해 준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해원에서는 모르는 척하는 것만 배운다. 모르는 게 아니라—알아도 말하지 않는 법.


국밥집의 아침은 밥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말로 시작되었다.
말은 밥보다 먼저 끓고, 더 오래 끓는다.


처음은 늘 낮았다.
속닥속닥. 군시렁군시렁.


“미친 게 아이라 캤다.”


구석 자리에서 탁주를 들이키던 늙은 사내가 혀끝을 굴렸다. 낮고 축축한 그 한마디가 솥김을 타고 번졌다. 김이 한 번 번지면, 말도 같이 번진다. 말은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미친 게 아이라… 산 채로 무덤에 쳐넣은 기지.”
“소피아 사모 말이가.”
“그래. 최태국 그 인간이… 영숙이 치마폭에 눈이 뒤집히가, 멀쩡한 조강지처를 정신병원 독방에다 갖다 버린 거 아이가.”


속닥속닥이 수군수군으로 커지더니,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착착 맞물려 굴렀다. 혀끝의 이빨들이 서로의 말살을 물어뜯고, 물어뜯은 자리에서 더 독한 말이 자랐다.


“하늘이 두렵지도 않제.”
“하늘이야… 저짝 편이지.”
“그라모 그 여자는 정신병이 아니라… 사람 손에 미쳐진 기네.”
“미쳐진 게 아니고, 미치게 만든 기다.”


탕. 탕. 탕.

정 할매가 솥뚜껑을 한 번 더 열었다 닫았다. 김이 확 올라왔다. 김 속에서 사람 얼굴이 잠깐씩 흔들렸다. 흔들리는 얼굴은 다들 한 번씩 죽은 얼굴을 닮아 있었다. 해원은 그런 얼굴들이 많은 동네였다. 살아서도 죽은 표정으로 버티는 얼굴들.


정 할매가 칼을 도마에 내려놓고, 국자를 들었다.
국자 끝이 솥바닥을 긁으며 땅땅땅, 금속 같은 소리를 냈다.


“입 조심해라.”


짧았다. 짧아서 더 무거웠다.
정 할매의 말은 꾸짖음이 아니었다. 겁이었다. 말이 길어지면, 돌아올 때는 칼이 된다. 정 할매는 칼이 돌아오는 걸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날 새벽만큼은 입을 못 다물었다.
입을 다물면, 속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자식 새끼들은 뭐하고.”
“큰놈 기백이는… 지는 지가 한 짓이 뭔지도 모르지.”
“둘째 이현이는 서울서 똑똑한 척하더니, 요새는 경찰서 들락거린다 카더라.”
“막내 서하는… 가끔 간다 아이가.”
“어데.”
“그 병원.”
“소피아 사모 있는 데?”


그 한 문장에서, 가게 안이 잠깐 멈췄다.

멈춘 자리에 라디오 합창이 또 한 번 터졌다.

오— 하고 낮게 시작했다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소리.
사람들의 속도 그 박자에 걸렸다.


“서하가 간다 카더라.”
“혼자?”
“혼자 가기도 하고… 누구랑 같이 갔다 카기도 하고.”
“이현이랑?”
“아직은 모르지.”
“그 둘째는… 엄마 찾을 마음이 있겠나.”


그 말은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이었다.
대답이 뻔하니까.


“기백이는 지엄마 안 찾는다더라.”
“배신감이니 뭐니…”
“배신감?”
“웃기지. 배신한 건 엄마가 아니고…”


말끝이 꺾였다. 꺾인 말끝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누가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해원 사람들은 본능처럼 안다. 안다는 건, 이미 한 번 당해 봤다는 뜻이다.


정 할매 국밥집 문이 삐걱 열리고 닫힐 때마다,

매화꽃잎 몇 장이 문턱에 쓸렸다가 다시 밖으로 밀려났다.

들어오지 못하는 것들.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떠도는 것들.

그게 사람일 때가 있고,

가슴아리일 때가 있고,

'엄마'라는 이름일 때도 있다.


누군가가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아주 낮게 말했다.


“산 이십칠번지… 그건 어찌 됐노.”


기백 엄마, 윤 씨가 기백에게 준 산 27번지.
해원에서는 땅이 단지 땅이 아니었다.

땅은 사람을 묶는 매듭이었다.

매듭은 선물처럼 보일 때가 많다.

주는 사람이 선하다고 믿고 싶어서.

그러나 매듭은 풀어야 매듭이다.

풀지 못하면 목줄이 된다.


“그 땅은 땅대로 누워 있지.”
“누워 있으면 뭐하노. 피가 묻었는데.”
“땅은 말 없지만, 말 없는 게 더 무섭다.”


땅땅땅.


정 할매가 다시 칼을 들었다.

도마 위에 파를 올려놓고 자르기 시작했다.

파가 잘릴 때마다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사람도 그렇다. 잘리면 속이 드러난다.

드러난 속을 보고도, 사람들은 다시 덮는다.

덮어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날, 덮는 말 속에서도 한 줄이 툭 튀어나왔다.
툭— 하고. 마치 누가 숟가락을 놓친 것처럼.


“서하가… 모실라 카더라.”


모신다는 말은 집으로 데려온다는 뜻이었다.
집으로 데려온다는 건,

다시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너무 커서,

오히려 가게 안 공기가 얇아졌다.

얇아진 공기 속에서는 숨 쉬는 소리까지 크게 들린다.


탕.탕.

정 할매가 국자를 들고 그릇에 국을 퍼 담았다.
국물은 뽀얬다.

뽀얀 국물 위로 김이 올라오는데, 그 김이 잠깐씩 라디오 합창과 겹쳤다.

낮게 웅성거리다가, 갑자기 터지고, 다시 가라앉는 소리. 마치 가게 안의 사람들 마음처럼.


정 할매가 그릇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 묵었으믄 나가라.”


그 말은 쫓는 말이 아니었다.
살라는 말이었다.


먹고, 나가고, 또 살아내라는 말.

밖에서는 매화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어떤 꽃은 지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면서 시작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함부로 “봄”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해원 사람들은 그래서 봄을 말할 때 늘 이렇게 덧붙였다.


“올해도… 지독하데이.”


라디오에서는 또 한 번 합창이 터졌다.


'오! 운명이여~~~'


그 소리가 국밥집 천장을 치고,

밖의 골목을 치고,

해원천 물비린내를 치고,

산 24번지의 담벼락까지 치는 듯했다.


운명은 늘 그렇게,

멀리까지 간다.
사람이 안 듣는 척해도...

운명은 사람 이름을 안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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