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오줌 맥주는 위대하다
나 : 아 놀래라. 뭐여?
J : 너 어디로 가?
나 : (친구에게 물으며) 우리 어디로 간다고? 아...
J : 어디로 간대?
나 : OO로. 망할… 넌 어디로 가?
J : 나는 친구들하고 OO로 가. 이렇게 헤어지는 거 아쉽다. 내가 거기로 갈게.
나 : 그래. Catch me if you can.
나는 들숨에 플러팅, 날숨에 플러팅을 할 수 있는 여자다.
J가 좌절한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가는 클럽은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정말 큰 클럽이다. 리조트 라운지처럼 되어있기도 하고 아무튼 거기로 간다는 것은 친한 친구와 같이 가도 떨어지면 그날은 못 만난다고 보면 되는 규모였다.
친구가 나에게 쟤 때문에 자기가 너무 설렌다며 우리도 그냥 쟤네가 가는 시내 클럽으로 갈까? 하는데 내가 됐다고 그냥 우리가 가려던 곳으로 가자고 하고 문을 닫고 출발했다.
친구 : 너 근데 쟤 전화번호는 알아?
나 : 몰라
친구 : 야 븅신아 그걸 안 물어보고 오면 어떡해!!
나 : 나 지금 눈물이 차오르고 있으니까 그만 말 시켜. 누구보다 도도했던 나 자신을 한 대 치고 싶으니까…그래도 후회는 없어. 인연이라면 만나겠지.
그렇게 우리는 클럽에 도착했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앉아있다가 춤도 췄다가 둠칫둠칫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심 J가 진짜 올까? 마주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친구와 비트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몇 명의 남성들이 다가온다. 스페인 남자들인데 다른 도시에서 놀러 왔다며 우리에게 관심을 표한다. 간단하게 대답만 하는데 정말 집요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화장실이라도 간다는 핑계를 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 뒤에서 남성들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한다 “실례합니다.”
J다.
훤칠한 키에 애쉬브라운 컬러의 머리카락. 너무 반갑고 놀라서 스페인어로 욕이 다 나왔다. J는 날 보자마자 영화처럼 영어로 말했다.
“찾았다. 나 혼자 여기로 와서 너를 두 시간 동안 찾아다녔어.”
질 수 없지. 나도 말했다.
“난 너를 두 시간 동안 기다렸어.”
갑분 로맨스 코미디. 내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장면이다. 그래서 여기에 남긴다.
얼굴을 보니 온통 땀범벅이다. 진짜 열심히 돌아다녔나 보다. 한 손에 버드와이저 두병을 들고. 대부분의 여성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남자가 손가락 사이로 병 두 개를 드는 그 사소한 포인트가 더럽게 멋있는 거 뭔지 아실 것이다. 물론 나도 가능하지만 그의 손가락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멋있다는거다. 쌉소리다.
*내가 그런 취향이라 그런 남편을 만나 그런 결혼생활을 했나 보다. 지팔지꼰.
진짜 다시 마주칠 줄 몰랐는데 마주하게 된 그 어색함을 풀고자 내가 농담을 했다.
“와, 버드와이저(미국 맥주)를 든 독일인이라니. 자부심이 넘치겠다?”
했더니 이 빌어먹을 클럽에서는 왜 버드와이저 같은 맥주를 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한 병을 가져가며 말했다.
“내거지? 나 버드와이저 좋아해. 잘 마실게.”
하고 일단 자리에 앉았다. 너무 덥고 지쳐 보였다 J가. 한국 친구는 아직도 스페인 남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눈치껏 빠져준 거 같다. 고마워라.
자리에 앉아서 나를 진짜 어떻게 찾았냐고 신기하다는 시답잖은 얘기를 하다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얼마나 오래 들고 다녔는지 세상 미지근하다. 다리를 달랑거리며 사망한 맥주를 꿀꺽 삼키고 J에게 말했다.
나 : 있잖아. 우리 외할머니 고향이 북한이야
J : 아 그 얘기는 그만해. 북한이라고 한 거 미안하다고
나 :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야 ㅋㅋㅋㅋㅋ 사실이라고
J : 정말? omg..
나 : 북한 사람들은 표현하는 어휘가 좀 남달라. 나도 할머니한테만 들은 말들이 몇 개 있어. 알려줄까?
J : 잠시만.. 이거 되게 흥미롭다 뭔데?
나 :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미지근한 맥주는 말오줌 맛이라고. (귓속말로) 우리는 지금 미국산, 정확히는 서부의 카우보이가 타는 말오줌을 마시고 있는 거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J가 입에 있던 맥주를 뿜었다. 바닥은 물론이고 내 다리에 다 튀었다. 내가 웃으며 아니 뭐 하는 거냐고 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너무 미안한데 말오줌을 어떻게 참냐고 토할 거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다리를 닦아주려고 하는데 휴지가 있을 리가 없다. 내버려 두라고 마를 거라고, 더운데 시원해서 좋다고 했다.
“옥토버 페스트라고 생각할게.”
갑자기 J가 말없이 한참 날 응시하더니 말한다.
J : 그거 알아? 너는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 미쳤고 똑똑한 여자야
나 : 호오~
J : 그리고 내가 본 여자 중에 제일 아름다운 여자야
나 : 음.. 그거 알아? 너는 내가 본 남자 중에 가장 무례하고 무식한 남자야. 인종차별에 남의 다리에 맥주까지 뿜어대는
J : 아 제발.. 난 절대 무례한 사람이 아니야
나 : 그리고 너는 내가 본 남자 중에 가장 멋있는 남자야
이거 진짜 영화 대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백 퍼센트 실화다. 나는 원래,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반사시켜 되돌려주는 사람이다. 내가 말해놓고도 감탄했다.
그렇게 조금은 묘한 기류와 함께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좀 더 했고 나는 J가 브레멘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산다고 했다. 어차피 다른 도시 얘기해도 너는 모를 거라며. 그냥 서울인 줄로 알라고 했다.
말오줌 한 병을 다 비우고 갑자기 J가 일어나는데 하늘을 뚫을 만큼 키가 크다.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가만히 날 바라보며 큰 손을 내민다.
“춤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