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이혼을 결심했다.
서른아홉, 이혼을 결심했다. 초등학생 아들은 아빠와 함께 살기로 했다. 양육에 내 30대를 바쳤던 터라 아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안 됐지만, 남편 역시 아이에게 좋은 아빠였다. 원한다면 언제든 엄마에게 올 수 있다는 협의서를 작성한 뒤 그렇게 하기로 했다.
혼자가 된 뒤 일상이 무너졌다. 가장 내 맘을 무겁게 한 건 아이의 가정을 망쳐버렸단 죄책감이었다. 가족사진에 나란히 설 수 없는 부모가 되어버렸다. 평생 지고 갈 마음이 빚이 매일 밤 복리처럼 불어났다.
아이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밥대신 술을 마셨다. 마음과 몸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망가져갔다. 달에 두 번, 면접교섭일 외엔 웃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간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는 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언제나 같은 웃음으로 날 맞아주었다. 만날 때마다 즐거워해주고 헤어질 때마다 엄마가 너무 좋다고 말해줬다.
여느 날처럼 아이와 헤어지며 인사할 때였다. 빛나는 두 눈동자엔 나를 향한 어떤 의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잘 살고 싶어졌다. 살아져서 사는 것 말고, 가꾸고 다듬어서 잘 살고 싶었다.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선 이곳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만들어야 했다. 내가 다시 잘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유일한 이유라면 바로 아이였다.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상의 규칙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약한 의지를 뛰어넘는 무언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라도 나만의 루틴을 다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것들이야 말로 내 삶을 견인할 유일한 힘이라고 여겨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자.
자기 전 신에게 기도하자.
일찍 깬 날엔 글을 쓰자.
쉬운 것부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는 것. 이전의 내게 너무 당연했던 일이 이제는 마음을 먹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 됐다.
물 마시는 아침이 기계적으로 반복됐다. 잠들기 전 기도를 했고, 일찍 일어난 날에는 나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루틴 위에 하나를 더해냈다. 점차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지고 자주 무기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나로 돌아가기 애쓰기보다는 새로운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보려 한다. 기어코 만들어낸 삶의 작은 규칙들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숨 쉬듯 자연스러워지도록 말이다. 지난한 과정일지라도 그렇게 살다 보면 다시금 평범한 날들이 내게 와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