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언제든 원하면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즉흥적인 성격인 데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여행지를 결정할 땐 짐가방에 다음 날 입을 옷만 툭툭 챙겨 고속버스터미널에 갔다. 생소한 지명을 눈으로 슬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싶은 곳의 티켓을 주저 없이 구매했다. 당시엔 숙소를 예매하는 어플 같은 건 없던 때다. 나는 물어 물어 잘 만한 곳을 찾았었고, 허름한 모텔도 마다치 않았다. 내게 젊음은 그런 거였다.
서른. 아이를 낳자마자 삶은 순식간에 변했다. 더는 어디로 갈 수 없었다. 즉흥적인 사람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변할 수 있나 매일같이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당장 집 앞 마트를 나가려 해도 아이의 짐은 수두룩 빽빽이 었고, 기저귀 가방은 점차 사이즈를 늘려갔다.
당시 내 소원은 며칠이라도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목적지도 즐길 것 먹을 것도 모두 내 맘대로 정해볼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땐 그게 내 소원이었다.
마흔. 이혼 후 아이와 떨어져 살며 정말 혼자가 되니 여행은커녕 집 앞을 나가기도 힘들다. 이제야 알게 됐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란 걸. 나는 갈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돌아올 곳을 잃어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이제 나는 이 자리에 서서 새로운 집이 될 작정이다. 내 아이의 돌아올 곳이 되어주고 싶다. 내 좁은 마음을 찢고 가난한 마음을 꿰어 불쑥 커버린 내 아이의 커다란 몸까지 감싸 안을 너른 품이 되어주고 싶다.
한 날은 노란색 조명이 켜진 어느 집에서 아이와 내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현실치고 너무 비현실 같다고 느낄 만큼 행복한 꿈이었다. 어쩌면 미래에 있는 내 영혼이 너무 속상해할 것 없다며 내게 미리 알려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내 아이는 제발 이런 꿈을 꾸지 않기를, 재밌는 게임이 너무 많아 엄마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고 빌었다.
요즘엔 통 꿈이 기억나질 않는다. 물론 나도 더 이상의 스포는 사절이다. 그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밤은 깊고, 더없이 추운 날이다.
네 손끝이 너무 시리진 않을까 엄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