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
어떤 날은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가,
또 어떤 날은 꿈에서 만큼은 보고 싶지가 않다.
그리움에 병이 난 누군가를 보며 갸우뚱거리던 나는,
불쑥 깨닫는다.
아. 내가 그 누군가가 되고 말았구나.
나는 내 자아들을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듯 소집한다. “모두 헤쳐모여!!” 군대는 안 다녀왔지만 갑작스러운 불호령에 내 자아들은 칼각을 유지하며 오와 열을 가지런히 한다. 나는 핸드 마이크를 손에 쥐고 여느 (전) 인디밴드 보컬답게 ‘아, 아!’ 볼륨췍을 한 뒤, 계엄령을.. 아.. 지금 이 시국에 이 단어는 좀 그러니까, 비상사태를(마땅한 단어가 없다) 선언한다.
‘자 이제부터 긴 싸움이야, 슬픔이! 너무 슬퍼지지 않게 정신 차리고, 아픔이! 어디 구석에서 혼자 아파하지 말고 꼭 깔깔이랑 같이 다녀! 그리고 우울이, 너 진짜 그러면 안 된다? 아니 니가 땅파기 시작하면 이 나라 다 무너지는 거 알아? 집도 절도 없이(a.k.a교회도 없이) 떠돌고 싶어? 지금 마음밭에 흙도 얼마 없으니까 헤집어 놓지 마라, 경고했다!! 아주 혼구녕 제대로 나!?!?‘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어느 단체를 가도 적응 못하고 혼자 화장실에 짱 박혀 있다가 공지사항 못 듣는 이가 있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쓸쓸이가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인생 살며 단 한 번 도움이 되질 않던 걔는,
헤쳐모여 시간에 헤치지도 모이지도 못하고 변기 위에 앉아 홀로 쓸쓸해하던 걔는,
며칠을 들쭉날쭉한 수면패턴덕에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즘
간신히 잠든 내 꿈속에 나와
작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른다.
쓸쓸이 덕에 나는 꿈에서도
행복하고
괴롭고
보고 싶다가 또 한 번 마음이 찢어진다
안 그래도 너덜너덜한 나라에 살며 매주 이사를 강행하던 나의 자아들은 ‘이 그지 같은 쓸쓸이 새끼!’를 연달아 외쳐대며 짐을 싼다. 아무리 봐도 멀쩡한 땅은 없어 뵈지만 또 찾다 보면 어디 오아시스 같은 곳이 있겠지, 뭐 그런 희망을 가지고, 짧은 다리를 동동 거리며 분주히 움직인다.
나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종종.. 아니 자주 주머니에 욱여넣고 몇 날 며칠은 보고 싶지 않은)자아들이 모여 내가 된 나는,
높아진 심박수에 휘둥그레 잠에서 깬 나는,
쓸쓸이를 욕할 힘도 없이 그저 널브러져 있다.
차라리 잠에 들지 않았으면.. 잠시 생각한다.
헌데, 어쩔 도리가 없다.
잠도 쓸쓸이도 그냥 그런갑다 해야지 별 수 있나?
인생. 마라톤이라던데.
너네라도 없었음 나도 참 외로울 뻔했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