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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의 효능

내 옷장에 남은 너의 흔적

by 와이

수영은 세 자매 중 둘째였다. 그녀는 투명하다시피 한 하얀 피부색을 하고 두 볼엔 늘 분홍 꽃이 피어 있었다. 예민하고 소심하던 중학교 시절이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던 예쁘장한 수영의 얼굴만 보면 내 안의 질문욕이 마구 꿈틀댔다. 이런 나의 관심을 알아챘는지 수영도 내게 마음을 열어 주었고 우린 금세 친구가 됐다. 당시 우정의 절차엔 각자의 집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차근차근 우리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던 어느 날 드디어 나는 수영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시간을 흘렸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설레는 발걸음으로 그곳에 갔다.


갈색 벽돌집들이 나란히 자리 잡은 골목길이었다. 수영은 “여기야.” 하며 은색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쭈뼛거리며 들어갔지만 포근하고 정갈한 거실을 보니 괜히 맘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수영의 방문을 열자마자 무리 지어 굴러다니던 머리카락 한 덩어리에 나도 모르게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았는지 하나의 생명체로 보일 지경이었다. 지렁이 같기도 하고 쥐 같기도 한 머리카락들 사이를 총총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수영은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하는 식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나마 깨끗한 건 침대 하나였다. 난 그 끝에 아슬하게 걸터앉아 좌우로 눈동자를 굴려보았다. 그녀의 집엔 머리카락만큼이나 옷이 많았다. 의자며 책상,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처음으로 본 어마어마한 옷 무더기가 경이로웠다. 눈치 빠른 수영은 내 시선을 의식한 듯 “언니들도 나도 옷을 좋아해.”하고 말했다.


나는 수영만큼의 옷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내 인생 최초의 패션에 관한 기억은 작아진 원피스를 입고 놀이터를 갔다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한 초등학생 시절이다. 집에 돌아와 "엄마 애들이 놀려."하고 말했더니 엄마는 하얀색 바탕에 빨간 리본이 달린 티셔츠와 넉넉한 바지를 건네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부랴부랴 놀이터로 나갔지만, 아이들은 이미 집에 돌아가고 없었다.


그 이후로도 옷에 대한 나의 센스는 도무지 좋아지질 못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은 굴욕적인 코디를 선보였던 것 같다. (얼마나 구렸는지에 대해서만 써도 원고 하나는 뚝딱 완성될 것 같지만 그렇게 까지 유쾌한 과거는 아니니 일단 접어두도록 한다.)

패션에 둔했던 나였음에도 수영이 입는 옷들이 모두 예뻐 보였다. 짐작건대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언니의 옷장을 보며 감각을 키워왔을 것이다. 당시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롱패딩이었는데 아랫부분이 항아리처럼 퍼지는 드레스형이었다. 그게 너무 멋져 보여서 따라 해 보겠다고 잠실 롯데 백화점 지하에 즐비한 옷가게를 수차례 돌아보고 항아리형 점퍼를 구입한 적이 있다. 당시 내 기준에는 나름의 비싼 옷이었던 것 같은데, 마감도 영 엉망이고 설상가상 물이 빠지는 원단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모방과 실패들로 나만의 패션 세계가 만들어졌음을 인정하지만, 당시엔 나의 첫 쇼핑이 실패했단 사실에 무척 속상해했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것일지 몰라도 청바지마저 수영의 것은 조금 달랐다. 세련된 핏에 색감도 다양했다. 힙합 바지에 벨트를 늘어뜨리는 패션이 어울리던 것은 내가 느끼기엔 수영이 유일했다.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몸인 데다, 잘 찾아 입는 센스가 있던 것도 같다. 나는 수영을 조금씩 따라 하다 결국 양말에 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건 그야말로 비장의 아이템이었다.


수영은 결코 아무거나 신는 법이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청바지에 버건디(지금에야 버건디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팥죽색이라고 여긴 그것) 양말을 매칭했던 것인데, 그 둘이 기막히게 잘 어울려서 나는 속으로 몰래 놀랐다. 색감적으로 훌륭한 착장이었다. 당시 나는 발바닥이 검해지지 않은 하얀 양말만을 찾아 신느냐 애를 쓰던 아이였기 때문에, 할머니색(당시의 편견)을 신고도 예쁠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수영과의 짧은 우정은 학년이 바뀌며 끊겼다. 나는 그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느 때와 같이 양말 쇼핑을 하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넌 유독 양말에 집착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였다. 수영의 팥죽색 양말이 다시 떠오른 건.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내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내게 영향을 주고 있던 것일까? 과연 그랬다. 겨울에는 색색의 니트 양말, 여름에는 형광, 반짝이, 레이스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나의 양말칸에는 수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지금도 나는 고작 트레이닝팬츠를 입고 나가면서도 엊그제 신은 양말과 겹치지 않기 위해 ‘각 빨래를 마친 것’과 ‘빨래한 지 좀 된 것’들을 구분해 놓는다. 다양한 무늬를 지닌 나의 양말들이 최대한 로테이션되어가며 신겨질 수 있도록 말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발목 무늬들이 오늘의 기분을 좌우한다. 나는 이것을 감히 양말의 효능이라 부르기로 했다.

근래 산 것 중 최고로 맘에 쏙 들던 보라색 체크무늬 양말이 사라져서, 조금 울적했다. 요즘 양말을 통 사지 않기도 했고 사라진 양말을 대신할 디자인이 필요하기도 하니 오랜만에 쇼핑을 좀 해볼까 싶다. 생각만으로도 두 볼에 분홍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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