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리버사파리에서의 성장일기
뭘 할지 딱히 정하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을 존중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하고 있는 싱가포르 한달살이지만, 싱가포르 오기 전 아이들 취향을 존중해 세 가지 할 일을 계획했었다.
그중 하나가 ‘리버사파리’ 가기이다.
싱가포르 오기 전에도 몇 번이나 지도를 확인하고 가는 방법을 봤었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 아직 감이 오지 않아 어젯밤에도 또 찾아봤다. MRT를 타고 가서 버스를 갈아타 대략 1:30 정도 소요 예상되는 거리다. MRT만 타고 가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2시간이 걸려도 가겠는데, 아무리 지도로 거리를 측정해 보고, 걸어가는 길을 찾아봐도 MRT역에서 걸어가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이틀 전 안내가 나오지 않는 버스로 인해 가까운 거리도 헤매다 비까지 맞았으니, 먼 거리를 버스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괜히 버스 타고 갔다가 헤매느라 길 위에서 시간다 보내고, 사파리 구경도 제대로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돼, 가는 길은 우버로 가기로 했다. 대신 아이들에게 집에 오는 길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버스를 타고 오자고 얘기했다.
우버타고 간다는 말에 아이들도 신났다.
이틀 전 충동 쇼핑으로 생활비 예산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버는 긴급상황에서만 탄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했었는데, 기대치 않은 우버 소식에 아이들도 신났다. 버스 타고 신경 곤두세우며 지도를 보면서 “엄마는 내릴 곳 확인해야 하니 엄마에게 말 걸지 마라!”라고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대했으면서도, 결국 길 잃어버리고 비까지 맞았으니 아이들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기에 불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기로 했던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지니,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길을 잘 알지도 못하고, 요금체계도 잘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택시를 타면 돌아가는지, 요금을 바가지를 씌우는지 불안할 수 있는데, 우버는 내가 가는 길을 보여주고, 예상 가격을 알려주니 낯선 곳이지만, 믿을 수 있는 도구인 것 같다. 싱가포르는 정부에서 자가용 숫자를 제한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현지인들도 우버나 그랩을 많이 이용하니, 앱을 깔아 두면 편리할 거라고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남편 지인이 알려줘서 싱가포르에 오기 전 깔아 두긴 했는데, 급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하고, 버스비보다 굳이 돈 더 들여가며 우버를 탈 생각이 없었기에 별로 이용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길 잃어버리고 우버를 탔을 때, 추위에 떨고 있던 아이들이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얼마나 고맙던지. 그 후 우버는 낯선 곳에서 우리의 의지처가 되었다.
우버가 오자 아빠 차를 만난 듯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실뜨기도 하고 놀며 편하게 갔다. 우버 운전기사분은 1시간여 동안 가면서 내내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얼마 동안 머물 건지, 뭘 할 건지 등등 물어보셨다. 내가 한 달 동안 딱히 뭘 할 건지 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아이들이 분명 좋아할 거라고 하면서 사이언스 센터를 추천해 주셨다. 여기는 다음에 가는 것으로 메모장에 적어뒀다.
거의 다 도착했는지, 리버사파리 간판이 보인다. 갑자기 운전기사분이 차를 세운다. 그리고 우리 보고 내리라고 하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커다란 간판과 기념 촬영하고 가라고 하시면서, 사진도 여러 장 찍어주셨다. 우버를 이용한 시간이 요금에 반영돼 지불하긴 하지만, 차를 세워 간판 앞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게 해 주신 친절함에 너무 감사했다.
다시 차를 타고 가서, Zoo라고 쓰여 있는 곳에 세워주셨다. 길 잃어버리고 나서 두려움이 커져서, 다 왔다고 하시는데도 나는 차에서 쉽게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서 내리는 게 확실한지 물어보았다. “왜 동물원 앞에 세워줘?”, “리버 사파리는 어디야?” 쉴 새 없이 질문했다. 운전기사분은 “잘 모르겠지만, 내비게이션이 여길 가리켜, 그러니 여기일 거야”라고 하시는데 차를 계속 잡고 있을 수가 없어 일단 내렸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두리번 두리번 거렸는데 리버사파리는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켜고 리버사파리를 찍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하는 곳과 다른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조심조심 지도를 보면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거슬러 걸어가니, 드디어 리버사파리 간판이 보인다. 마음이 불안하니 동물원 바로 옆이었으면서도 간판이 보이지 않고 입구를 찾아가는 길이 정말 멀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뽑아온 리버사파리 입장권을 직원에게 보여줬다. 이걸로 입장 못한다고 한다. 동물원 쪽에 있는 매표소로 가서 입장권으로 받아오라고 한다. 이제야 왜 사람들이 다 저 쪽으로 갔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다시 동물원에 가서 입장권으로 교환해 리버사파리 입구에 와서 표를 보여줬다.
그런데 직원이 뭐라 뭐라 한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직원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만 얘기해 줄래요?”
“오늘 비가 와서 보트 운행을 안 해요.”
“그럼 언제 보트 운행해요?”
“날씨를 알 수 없으니, 매일 아침 전화해 보세요.”
이런!!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비가 조금 왔었지만, 우버타고 한 시간가량 오는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지만 오전에 비가 왔었기 때문에 안전상 이유로 보트를 운행 안 한다니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방침은 정해졌고, 이용객인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리버사파리를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기왕 이용할 때 내부 시설을 다 이용하고 싶었기에, 보트도 못 타는 리버사파리를 들어갔다 오기는 서운했다. 그렇다고 그냥 집에 돌아가기는 우버타고 온 시간이 아까웠다.
보트 운행과 상관없는 동물원에라도 들어갈까 하는 생각에 다시 동물원 앞 매표소로 갔다. 어머나. 가격이 한국에서 미리 산 리버사파리 입장권의 거의 두배다. 정말 아까웠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아이들이 너무 실망할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현장에서 표를 샀다. 지금까지 우왕 좌왕 하는 엄마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 주던 도도자매를 위해, 동물원 안을 돌아다니는 트램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표가 포함된 입장권을 샀다. 대신 한 달 생활비 예산에 포함되지 않았던 큰돈이라 카드로 구매했다.
드디어 동물원 안에 들어왔다.
뭔가 매끄럽지 못하게 우왕좌왕하며 동물원에 입장하게 됐지만, 일단 들어오니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 즐거운 눈빛이다. 입구부터 볼거리가 많다. 입구 근처 공룡 숲만 지나가는데도 한참이 걸린 것 같다. 볼거리들이 많으니 처음에만 트램을 타고 계속 걷거나 뛰어서 다닌 것 같다.
오전에 비가 와서 더욱 후덥지근한 날씨에 계속 걸어 다니니, 다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음료수가 더욱 부러워 보이는 눈치다. ‘사줄까’하는 마음에 가격을 알아보러 가게에 들어갔다. 그냥 평범한 탄산음료인데, 작은 코끼리를 빨대 중간에 꽂아놓고, 플라스틱 병에 담아 줘서 개당 9달러나 했다.
한달살이 시작하고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여러 번 예산 얘기를 한 엄마에게 음료수 사달라는 말은 못 하고 음료수 판매대를 맴돌며 “우와”, “비싸다”를 연신 내뱉은 아이들이 기특해 보이면서도 불쌍해 보여 각 각 하나씩 사줬다. 아이들은 아껴먹겠다는 말도 하고, 코끼리를 손에 끼고는 정말 좋아라 한다.
원래 한국에서도 음료수를 막 사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까지 여러 번 고민하고 사준적은 없는 것 같다. 사줬지만, 정말 이 돈을 써도 되는지 고민하고, 아이들과 예산에 대해 그리고 우선순위와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주니 아이들이 느끼는 기쁨도 다른 것 같다.
얻게 된 것에 대해, 사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좀 더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싸가져 간 주먹밥과 간식 먹으며, 아이들과 지도 보면서 어딜 갈지 방향 정하고 계속 돌아다녔는데 벌써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고 방송이 나온다. 아직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한 백호랑이도, flying fox도 못 봤는데.
백호랑이 띠인 둘째는 백호랑이 보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기에 빨리 뛰었다. 여긴가 저긴가... 일단 백호랑이 동상은 봤는데 실물은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백호랑이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만, “날으는 여우 Flying Fox”는 한국에서 보지 못했으니 날으는 여우를 보자고, 둘째를 설득했다. 마음이 급하니 지도를 보고 뛰는데도 도대체 어딘지 모르겠다. 직원에게 물어 물어 겨우 Flying Fox 우리에 도착했다. Flying Fox 우리는 철조망으로 하늘까지 쳐져 있었다. 철조망을 보니, 명명된 이름처럼 '여우가 날아다닌다'는 우리의 예상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직원이 “여기니까 들어가”라고 했을 때 잠시 망설였다. 철조망 문을 열고 들어가서도 낮은 자세로 두려움에 떨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나무만 보일 뿐 여우같이 생긴 건 안 보인다. ‘없는 건가...’하고 실망하고 있는데,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박쥐가 보인다.
'저게 뭐지?' 이름표를 확인해 보았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다닌 'Flying Fox'다. 영어 단어 그대로 Fox인 줄 알았는데 커다란 박쥐 영어 이름이 "Flying Fox"라니. 조금은 황당했지만, 아이들과 지도 보며 신나게 뛰어다녀서 찾은 결과니 뭐든 안 즐거울까.
신기한 이름의 Flying Fox를 마지막으로 보고, 천천히 출구로 나왔다.
집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으니, 이번에도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날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정작 엄마인 나는, 더운 날씨에 많이 걸어 힘들 아이들을 끌고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갈 자신이 없다. 안내방송이 안 나오는 버스는 아직 두렵기도 하고, 오전 8시에 집에서 나와서 저녁 6시까지 음료수 하나씩밖에 안 사줬는데, 너무나 좋아해 주고 즐겁게 돌아다녀준 아이들이 고맙기도 해서 결국 또 우버를 불렀다. 저녁 시간이라 우버가 도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리고 아직 우버가 익숙지 않아 차가 지나갈 때마다 차 번호판을 확인하며 긴장하긴 했지만, 일단 우버를 타면 헤맬 염려가 없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도 엄마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리버사파리 보트 운행 안된다는 말에 순간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고 우왕좌왕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마음을 나눈 시간이었기에 정말 감사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많이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는, 완벽하지 않은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고 함께 시간을 채워갔다. 즐겁고 신나는 표정으로 함께 뛰었다. 마음을 나누고, 느끼고, 기억하는 이 순간들을 통해 아이들도, 그리고 나도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시간에 대한 감사함으로 마음이 꽉 찬 기분이다.
오늘 또 우리가 무사히 해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