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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Oct 03. 2019

행복의 조건, 지금, 여기!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스토리텔링 수업 듣기

싱가포르 대중교통인 버스, 지하철, 우버 다 타보고, 길 잃어버려 헤매도 봤더니 이 곳, 싱가포르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도서관 스토리텔링 수업도 있고 내일 드디어 레고랜드 가는 날이라 오늘은 쉬엄쉬엄 체력 보충하기로 한 날이다.

내일이 왜 레고랜드 가는 날로 정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싸게 티켓을 구매하고, 사람이 덜 많을 날 가고 싶었기 때문에 미리 날짜를 정했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방문 날짜를 지정해 사면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그럼 언제 가는 게 좋을까?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아이들 적응과 컨디션도 고려해야 하고, 사람들이 많이 없을 만한 날짜를 고민했다. 그리고 너무 늦게 가면 아이들 즐거움이 너무 밀릴 것 같아서 새해 지나고 평일 목요일로 지정해, 내일이 레고랜드 가는 날로 정한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편안해진 마음에, 아이들도 자신들이 정한 방학 숙제, “줄넘기”를 하며 오늘 일상을 시작했다. 사실 싱가포르에서 몸도 마음도 부담스러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방학식날 방학숙제를 다 해 놓고 다음날 싱가포르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나만의 숙제”로 “매일 줄넘기 하기”를 정해서 싱가포르 올 때 줄넘기를 챙겨 왔다.

아침 먹고, 아이들은 스스로 줄넘기하며 내일을 위한 체력을 키웠다. 대충대충 해도 되는데 방학숙제에 기록해야 한다며 이단 뛰기도 하고 꼬박 50분 넘게 열심히 했다. 열심히 줄넘기하고 우리 아이들 전용 수영장에서 아침 수영도 했다.

수영장이 아파트 중간층에 위치해 있는데 아무도 안 쓴다. 가끔 청소하시는 분들만 마주치고 주민들은 이용 안 하는 것 같다. 덕분에 우리 도도자매만 오붓하게 수영할 수 있다.


도도자매, 연년생이라 둘이 잘 놀다. 그러다가도 금세 서로 티격태격한다. 오늘도 둘 만의 수영장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또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엄마인 나는 폭발할 것 같았다. 여기 싱가포르에 아이들이 아는 사람, 의지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고, 나도 아이들밖에 없는데 여기서 엄마인 내가 화를 낸다면 아이들이 정말 무섭고 서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혼내다가 화낼 것 같은, 나의 폭발을 막기 위해, 냉각 시간을 갖고자 아이들에게 엄마 동네 한 바퀴 돌다 오겠다고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우리집으로 올려다보니 우리 도도자매 베란다에서 빼꼼히 얼굴 내밀고 손 흔들고 있다. 넉살 좋은 도도자매 보니 금세 또 애틋해지네요.

밖에 나온 엄마를 눈으로 좇으며 손흔드는 도도자매

이왕 나왔으니 바로 들어갈 수는 없고, 아이들을 위해 뭔가 새로운 즐거움으로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수영장 말고 매일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 놀이터를 찾아주고 싶었다. 집 계약하고 집주인에게 놀이터가 있는지 문의를 했을 때 우리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없다고 해서, 싱가포르 오기 전부터 위성 지도로 근처 놀이터가 없는지 찾아보긴 했었다. 지도상 보이는 놀이터는 없었지만 ‘놀이터가 없는 나라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 가까운 데에서 못 봤다.
도서관 가는 길에 놀이터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 그물망으로 된 피라미드 하나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 그리고 마트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오픈된 놀이터가 있지만 거리가 꽤 돼사 바로 집 앞을 찾아보고 싶었다.

우리집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건물은 우리 아파트보다 단지 규모가 커 보이니, 놀이터가 있을 것 같다. 밖에서 놀이터가 보이지는 않지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 가서 물어봤다.

“한국에서 아이들과 한 달 여기서 머무는데 여기 놀이터에서 놀면 안 되나요?”

“안돼요.”

한 번 더 부탁드려봤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떼를 더 써봤지만,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기에, 아쉽지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근처 아파트들은 건물 둘레로 벽이 빙 둘러져 있고 입구에 관리인이 앉아 있어서 아무나 못 들어가는 구조다. 외부인 출입을 좀 철저하게 제한하는 것 같다.


우리집에서 조금 멀지만 그래도 두 번째로 가까운 아파트 단지 경비실 문을 두드렸다.

앞서 거절당해서 또 거절당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놀이터다운 놀이터에게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 물어봤다.

그런데 흔쾌히 “Yes” 란다.


앞서 거절당했던 아파트와 너무나 대조적인 반응에 믿기지 않아서 재차 물어봤는데 “Yes”란다.

더 물아보면 귀찮다고 “안돼”할까 봐, 금방 마음 바뀔까 봐,
아이들 바로 데려오겠다고 하고 집에 뛰어갔다.


엄마 언제 오나 걱정하고 있었을 우리 도도자매, 엄마가 문 열자마자 흥분된 목소리로 “놀이터 가자”고 하니 깜짝 놀란 것도 잠시, 신나서 나온다.

아이들과 뛰어서 허락받은 아파트 경비실에 가서 인사하고, 건물로 둘러싸인 놀이터에 갔다. 여기 놀이터에도 아이들은 우리 도도자매뿐이다.


아파트 규모가 커서 놀이터가 클 줄 알았는데, 작은 미끄럼틀 하나뿐이다. 대신 놀이터 앞에는 굉장히 넓은 수영장이 두 개나 있었다. 하지만 수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이들은 넓은 수영장을 보더니, 수영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수영장은 허락을 못 받아서 아쉽지만 그저 바라보고, 미끄럼틀에서 놀았다. 비록 미끄럼틀 하나지만, 오랜만에 본 미끄럼틀에 아이들은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관리인에게 “놀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나오며, 아이들은 “우리라면 수영장에서 매일 놀 수 있는데...”라며 수영장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나에게 “다음에 다른 나라에게 한달살기 하게 된다면 이 집처럼 넓은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하면 좋겠다”고 한다.


싱가포르 와서 본의 아니게 집들을 비교하게 된다. 동네 집들이 비슷비슷한 우리나라와 다르게, 여기는 한 동네에 정말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집들이 있다. 작은 우리집 바로 앞만 해도 굉장히 철저히 보안 관리되는 큰 집이 있고, 우리집 바로 앞 커다란 아파트 대지 전체 만한 규모의 대저택도 있다. 다양한 집들 만큼이나 사람들도 다양하다. 그리고 이방인인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세상의 다양함을 피부로 느끼고 배우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놀이터에서 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른 저녁을 챙겨 먹은 후, 스토리텔링에 참여하기 도서관에 갔다. 시간이 조금 일러 책을 읽고 있으니,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는 방송이 나온다.

영어 스토리텔링은 매수 수요일 저녁 7:30부터 8:00까지 진행된다. 7:30이 돼서 도서관 안에 있는 프로그램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책을 들고 들어오셔서 가볍게 인사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헐레벌떡 교복을 입고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자주 오는 아이들인지, 그 아이들이 들어올 때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사하며,
“밥 먹었니?”물어보신다. 그러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니요, 학교에서 바로 왔어요”라고 대답해서 깜짝 놀랐다.


7시 30분이 넘었는데
밥도 안 먹고 학교에서 바로 왔다고??


이 아이들의 대답에 싱가포르 교육 제도가 궁금해졌다.
도서관 근처에 건물이 우리나라 보통의 초등학교 건물 3배 정도 되는 큰 학교가 있다. 학생수도 엄청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보다 이른 아침 시간에 학교 가는 것을 봤는데, 이제 1학년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아이가 이 시간까지 학교에 있었다니!!

놀라움을 뒤로하고 수업을 들었다. 영어로 진행하는 스토리텔링 수업을 아이들에게 한글로 번역해주고, 중간중간 선생님이 던지시는 질문에 대답도 하며 책 2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 책 내용과 관련해 활동을 했다.

선생님께서 들고 오신 신문지를 나눠 주고 모자 접기를 했는데, 우리 도도자매는 유치원에서 접어본 거라고 선생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접어 완성했다.
쩔쩔매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게 너무나 빠르게 야무지게 접으니, 선생님께서 연거푸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칭찬해 주셨다. 영어로 진행되는 이야기 시간 내내 좀 힘들어하던 모습은 금세 잊히고 똘똘한 한국인 아이들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약간은 뿌듯함도 들었다.

활동까지 끝나자, 아이들이 나가 선생님께 뭔가 확인받고 스티커를 받아왔다. 뭐지??

가서 물어보니, 공공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장려하기 위한 제도라고 한다. 도서관 안에 비치된 연령별 독서 카드가 있는데, 거기에 책 제목과 주인공에 대해 적어오면 미션 단계별로 스티커를 준다고 한다. ‘스티커’를 준다는 말에, 다음 주 스토리텔링 안 오겠다던 도도자매, 다음 주에 꼭 오겠다고 한다. 독서 카드 빈칸을 다 채워 다음 주에 스티커 다 받겠다고 도도자매는 알지도 못하는 영어 책 제목과 주인공 이름을 막 적었다.

스토리텔링이 끝나 나오는데,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앉아 있다.
“엄마! 저 아이들은 왜 저기 앉아 있어?”


그때 그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선생님께 가서 중국어로 말한다. 도도자매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것이, 깜짝 놀란 눈치다.

“엄마 쟤네 뭐라고 그러는 거야?”
“중국어 하는 거야.”
“너네도 듣고 갈래?”
“아니!”

영어 스토리텔링이 끝나고 바로 중국어 스토리텔링이 있다. 욕심 같아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언어를 들을 기회를 주고 싶어 중국어 스토리텔링도 듣게 하고 싶지만 너무 무리하면 탈 나니까, 아이들에게 말도 안 했었다. 중국어 스토리텔링 듣지는 않았지만 영어 시간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말하는 아이 모습이 분명 자극이 된 것 같다.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들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말레이어이지만, 중국계 사람들이 많이 중국어도 함께 사용한다고 얘기해 줬지만 실제 바로 앞에서 조그만 아이들이 영어와 중국어 말레이어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좀 충격받았나 보다.

오늘 도도자매, 도서관에서 여러 번 놀랬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작은 아이가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있다가 도서관에 혼자 온 것, 아이들이 영어에 중국어 말레이어까지 잘하는 것!! 정말 놀랍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싱가포르 교육에 대해 좀 찾아봤다.

초등학교 때 보는 성적으로 중학교가 달라지고, 정해진 중학교에 따라 대학 입학까지 결정돼 초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입시 경쟁이 결코 뒤지지 않는 곳, 오히려 경쟁이 더 치열한 곳인 것 같다.

아이들이 입시 경쟁하지 않고 아이다움을 지키며 다양성을 보고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어서 떠나온 한달살기인데... 싱가포르의 아이들을 보니 우리나라가 행복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 모습이 싱가포르의 전체 모습은 아니지만, 5일 여행 왔을 때 본 깨끗하고 예쁜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이미지가 조금은 달라졌다.

놀이터만 보더라도 얼마나 아이들을 생각하는 곳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는데, 놀이터 시설은 둘째치고 놀이터에 아이들이 한국 우리 동네 놀이터 보다 안 보여서 놀랬다.

행복은 어디에서 사느냐, 환경이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신을 지키며 산다면 어디서든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충분히 아이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 6일 차,

행복은 먼 곳에,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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