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이스트코스트 집 탐방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오늘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내일의 성취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내일의 성취가 아닌 지금의 우리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저지른 싱가포르 한달살기,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일을 걱정하고 있다. 세 번째 숙소로 이사할 날을 염두하며 나는 매일매일 우리의 가방을 꼭 꼭 싸매고 있다.
2017년 1월 7일, 이사할 날까지 13일이나 남았으면서도 나는 매일 이사할 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실제 해보면 그동안 걱정한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별거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해봤으면서도 늘 나는 필요 이상의 많은 걱정을 한다. 나를 짓누르는 많은 걱정들,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겠다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트리플 A형인 내 기질은 여전히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를 붙잡고 있는 근심, 알지 못해 머릿속을 붙잡고 있는 세 번째 집을 아이들과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스트코스트로의 탐험을 떠나기 전 오전,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영을 했다.
수영하는 동안, 둘째는 언니의 지령을 따르며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하며 논다. 접영까지 배운 수영 자세를 싱가포르에서 좀 더 연마하겠다며 오리발을 들고 왔는데, 오리발로 다양한 놀이를 만들며 잘 논다.
즐겁게 놀았으니,
이제 새로운 곳으로 탐험을 가볼까?
구글맵을 켜고 알주나이드 역 근처의 집에서 이스트 코스트 집을 찾아 나섰다. 집을 찾고 나서, 이스트코스트 쪽에 있는 도서관도 가보자고 하니 아이들은 독서록을 챙겨 나선다. 현재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읽은 책에 대해 적어오면 적어오는 대로 스티커를 선물로 주는데, 이스트 코스트 쪽에 있는 도서관에서도 적어오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한다.
지도를 보며 새로운 골목들로 들어섰다. 역 근처 교복을 입은 몇 명의 학생들을 잠깐 본 것 외에 골목에서는 한 명도 지나가지 않는다. 골목골목, 새로운 세상의 풍경과 마주하며 걸었다. 아이들은 후덥지근한 뙤약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서록으로 둘이 다양한 놀이를 만들며 이사 갈 집을 찾아 1시간가량 계속 걸었다.
드디어, 집을 발견했다!
공동 출입구 사이로 아파트 안을 들여다보니, 1층 통로에 수영장이 있다. 지금 집보다 수영장 규모가 조금은 큰 것 같고 깔끔해 보이자, 아이들이 좋아한다.
이사할 집까지 걸어와서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이제 핸드폰 지도의 목적지를 공공도서관으로 설정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도 외국인이지만, 동양 사람들 말고 서양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집 근처에 커다란 쇼핑몰도 많다. 몇 개의 쇼핑몰들을 지나니 얼핏 봐도 정말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파트들과 대저택들도 보인다. 좀 더 걷다 보니, 대단지 아파트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들 눈에 들어온 건...
놀이터다!!
그늘 하나 없는 놀이터지만, 놀이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시 도서관 찾아 떠났다.
도서관 찾아가는 길, 벽에 뭔가가 붙어 있다. 뭐지? 소라 같은데? 우리 눈에 참 낯설어 보이고 신기해 보이는 그것을 한참을 봤다.
이날 이후로 정말 자주 보게 된 이것은 달팽이였다. 이때 처음 발견해 많이 신기했는데, 자주 보게 되니, 별 느낌 없이, 때로는 존재 자체를 인식도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생겼다.
처음 우리 눈에 들어온 다른 모습의 달팽이를 한참 동안 지켜보다, 다시 도서관을 찾아 길을 갔다.
드디어 도서관 도착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 도서관보다 외관도 크고 내부도 훨씬 큰 것 같다.
아이들은 도서관 안에 들어오자마자, 망설임도 없이 컴퓨터로 행한다. 그리고 오디오 헤드셋을 보더니,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DVD를 가져와 헤드폰 하나씩 나눠 소리를 들으며 보고 있다.
‘재미있어 보이는’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찾아와 한참을 봤다.
말레이시아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 세계 불가사의한 일들이 적힌 이야기 등 도도자매가 찾아온 다양한 책들을 함께 읽었다.
아이들 책만으로 가득 채운 층에서 편안한 소파에 뒹굴며 한참을 책을 보고 있으니 참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공간에 더 있고 싶었지만, 뼛속까지 시린 실내 냉방에 그만 나가서 또 다른 탐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도 앱을 켜서 주변을 보니,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육안으론 보이지 않아 구글맵으로 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지도에 나온 대로, 지도가 가라는 곳으로 30분 넘게 걸었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고 아파트 단지와 자동차 도로만 보인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10분 안에 바다가 보여야 하는데 바다에서 더 멀어진 것 같다. 바다가 보이지 않으니 희망을 품기가 어렵다. 지도를 보고 갈수록 더 멀어지는 거리를 보니, 도전할 의지가 안 생긴다.
오늘은 바다를 찾는 것을 포기할까? 다음에 이사 오면 그때 바다에 꼭 가보기로 하고, 대신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로 마트를 정했다.
지도 앱을 보며, 걷고 걸어 드디어 ‘페어프라이스’라는 마트를 찾았다. 입구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마트를 향해 지나온 길이 보인다.
처음 와보는 길이라, 주변을 살피지 않고 지도에만 의지해 오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빙빙 돌아왔다.
때로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고지식하게 지도만을 고집해 빙빙 돌아온 길을 보니, 두려움을 가능한 피하기만 한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돌아왔지만, 굉장히 큰 마트를 보니 왠지 뿌듯함마저 든다. 몇 시간을 걸어 찾아온 큰 마트에 아이들도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새로운 목적지에, 다시 새로운 의지가 생겨 샅샅이 구경하며 다녔다. 그리고 아이들이 미션을 내려달라기에 “가격 비교해서 물 찾아와.”, “스파게티 면 가져와.” 등등의 지령도 내려줬다. 가격 비교해서 물 찾아오라고 했더니, 10리터짜리 정수기 물이 제일 싸다며 둘이 그 통을 끌고 온다.
아이들과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마트 밖으로 나오니, 다시 집에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다. 여기 올 때처럼 집에 갈 때도 걸어가고 싶었으나, 무거운 물통을 들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골목골목을 걸어갈 길이 두렵기도 하다. 또 도서관에서 뿐만 아니라 걷는 그 순간순간을 즐겨준 우리 도도자매가 기특하기도 해서 결국 우버 타고 집에 돌아갔다.
아이들, 우버 탄다는 소리만 나오면 너무 좋아한다. 편안함을 떼쓰진 않지만 이런 밝은 모습 보면, 너무 걷게 하는 것 같아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잘 크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하다.
이사할 집을 찾아 떠나며 마주친 골목의 풍경,
도서관을 향해 가며 발견한 놀이터와 달팽이,
우리가 정한 목적만 생각했다면 놓쳤을지 모르는 것들이다.
내일의 목적 때문에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행복은 지금 우리의 발견이자 선택이라고 더욱 느끼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