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차, 보태닉가든 무료 투어
낯선 곳에 와서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배움을 가질 수 있는 시간, 너무 좋다.
하지만, 토요일 이른 아침 MRT 타고 가기 귀찮다.
또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가도 ‘여전히 귀찮은 데 가지 말까?’ 고민했다.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그 시간이 즐겁고, 설레고 기쁘기도 하지만, 이른 아침 아이들을 챙겨 나오려고 하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 것 같아 좀 고민이 됐다.
2017년 1월 8일 토요일 아침,
한달살기 시작하고 온전히 일주일을 보낸 후 맞이하는 주말이다.
어느 정도 이 곳에 익숙해진 것 같다. 버스 타고 길도 잃어 헤매 보고, 공공도서관의 스토리텔링 수업도 참여해 보고, 새로 이사 갈 동네도 탐방 갔다 오니 다소 익숙해진 마음에 긴장감도 풀린다. 오늘은 그냥 쉬고 뒹굴고 싶은 일상인 토요일 아침이다. 하지만 두 아이와 함께 이른 아침 MRT를 타고 보태닉가든을 향했다.
보태닉가든, 외가댁 식구들과 아빠, 11명의 가족이 1년 반전, 다 같이 와봤던 곳이다. 새롭지 않을 것 같은 보태닉가든에 그것도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온 이유는 무료 투어 때문이다.
버스 타고 나가 길 잃어버린 날 여행안내센터에서 받은 자료에 보태닉가든 가이드 투어가 적혀 있었다. 매주 토요일 9시, 테마를 달리하며 보태닉가든에 대해 배우는 무료투어가 있다는 것을 읽고, 여기서만 배울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꼬박 일주일을 기다렸다.
1시간이 넘게 돌아다니며 풀에 대해 듣는 것, 그것도 아침에 일찍 서둘러와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다 어제서야 얘기했다.
"엄마 내일 아침 보태닉가든에서 하는 수업 들으러, 7시 30분에 집에서 나갈 거야. 일찍 일어나야 하고 많이 걸어야 하니까 함께 가고 싶은 사람만 와. 그냥 자고 싶은 사람은 푹 자고 있으면 엄마 11시까지는 올게.”
‘엄마는 꼭 갈 거야.’라는 의지를 담아 얘기하니, 두 아이 모두 ‘함께 가겠다’고 한다. 두 가지중 한 가지를 선택할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만 6살 7살 두 딸에게는 '엄마를 따라가야 한다'가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으니, 아이들은 결국 엄마의 스케줄을 따라갈 수밖에.
그래도 미리 말해서 좋은 점은 아이들이 뭘 해야 할지 알고 스스로 한다는 점이다. 엄마를 좇아가려면 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척척, 할 일을 한다. 엄마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늦게 일어나면 엄마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알아서 일찍 일어나고, 엄마보다 먼저 옷 입고 준비 다 끝내고 아침까지 잘 챙겨 먹었다. 그리고 늦지 않게 집을 나왔다.
MRT역에서 내렸는데, 어디가 보태닉가든 입구인지 모르겠다. 전에 와본 곳이 아니다.
'잘 못 내렸나?'
낯선 모습에 또 불안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보태닉가든 맞다고 한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입구라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서 보니 표시는 없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보인다. 전에 보태닉가든을 올 때 MRT가 아니라 택시와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바로 앞에 방문자 안내센터가 있었는데, 여기는 안내센터는 커녕 아무 표시가 없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의 닫힌 철문이 보여, 그것을 열고 들어갔다. 전혀 와보지 못한 완전 새로운 곳에 온 것 같다.
벌써 8시 45분이다!
9시 정각에 투어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무료투어를 시작하는 방문자센터가 어디에 있을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서둘러 뛰었다. 하지만 건물 같은 거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한가롭게 요가 매트를 깔고 그룹 지어 운동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인다. 그만 뛰고, 그들처럼 나도 아침 햇살 맞으며 평온한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보태닉가든 약초 수업을 듣기 위해 여기 왔으니, 방문자 센터를 찾아야 한다. 내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 달렸다.
물어 물어 겨우 9시 조금 넘겨 방문자 센터를 찾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아이들과 나는 벌써 땀으로 젖었다. 그런데 이미 그룹이 출발했다고 한다. 우리는 가르쳐준 방향으로 다시 뛰었다.
천천히 이야기 들으며 걸어가는 무리들이 보인다.
여긴가 보다. 우리도 사람들 틈에 끼었다.
우리만 관광객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현지 사람들은 없었다. 미국, 홍콩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여행 와서 미리 현지 무료 설명 시간을 알고 참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정신없이 달려와, 아이들도 나도 잠깐 쉬고 싶었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알아들으려고 서둘러 좇아가며, 더욱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범위에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줬다.
아이를 데려온 사람이 나 밖에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아이들에게 집중이 됐다. 선생님과 다른 참가자들이 중간중간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어?’, ‘얼마나 머물러?’, 등등 질문을 던지고, 또 본인들이 알고 있는 식물 관련 정보들도 추가로 들려준다. 최선을 다해 알아듣고 대답하려 하다 보니 날씨가 더 덥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뙤약볕에서 땀으로 머리부터 샤워를 하면서도 잘 따라온다. 그 모습이 기특해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여준 것 같다.
무사히 무료 투어를 마치고, 우리끼리 보태닉가든을 여유롭게 더 둘러봤다.
발 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1년 반 전 아빠와 비를 피했던 곳도 보인다. 함께 오지 않은 아빠하고의 추억을 위해 일부러 아이들에게 그때의 장면 설명해 주는데, 아이들은 기억이 안 난단다.
우리 앞을 지나가는 악어처럼 큰 도마뱀도 구경하고, 그네도 타며 천천히 보태닉가든을 돌아보았다.
나올 때는 오늘 아침 우리가 들어왔던 철문이 아니라 정문을 찾아 나왔다. 그런데 여기에선 MRT역이 안 보인다. 외국 대사관과 높은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새로운 분위기의 거리를 걸었다.
7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더운 날씨에 뛰고 걷고 돌아다녀서 힘들다. 그런데 아이들은 힘들다고 말도 안 하고 잘 따라와 준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해주고 싶은데, 그동안 길에서 많이 봤던 아이스크림 파는 오토바이도 오늘따라 안 보인다.
드디어 아이스크림 파는 곳이 나타났다.
아이스크림 사주겠다는 말에 아이들은 엄청 신나 한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오래 즐기고 싶다며 조금씩 빨아먹는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아이들 마음과 다르게 빠르게 녹는다. 아이스크림 물이 뚝뚝 떨어지니, 즐길 새도 없이 바쁘게 입으로 들어갔다.
다시 걷고 걸어 드디어 MRT 역을 발견했다.
중간에 노선을 갈아타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땀 흠뻑 젖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은 더없이 즐겁게 수영을 했다. 오전의 더위 덕분에 시원함을 더욱 값지게 느꼈을 것 같다.
보태닉가든은 싱가포르 여행 오면 누구든 들르고자 하는 유명한 곳이다. 도도자매에게도 보태닉가든은 알던 곳, 추억이 있던 곳이었지만, 오늘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또 다른 이야기와 추억을 만들었다.
오늘 들은 식물 이름은 전혀 기억 못 하더라도,
힘들게 찾아가 땀을 흘리며 느꼈던 뜨거운 열정을,
뜨겁게 흘린 땀 뒤에 느낀 상쾌한 시원함을,
우리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