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조건 리버사파리 가자!
아무 때나 가면 되는 줄 알았다. 싱가포르 도착한 첫 주에 리버사파리 갔다가 보트 운행 안 한다는 말에 좌절했었다. 직원이 그때그때 다르니, 꼭 전화로 보트 운행 여부를 확인해 보고 오라고 해서 일기예보를 확인해보고 지난 화요일에 전화했다. 오랜 시간 기다려 기껏 전화했는데, “오늘 운행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일단 와 보세요”라고 하는데, 어쩌지? 불안하다. 결국 화요일, 리버사파리 대신 센토사 섬에 갔다.
벌써 싱가포르에 온 지 21일째 날이다. 이제 집에 돌아갈 날이 열흘밖에 안 남았다. 내일은 이스트코스트 쪽으로 이사하는 날이다. 이사하면 우리 사정이 어찌 될지 모르니 오늘은 날씨가 어떠하든, 보트 운행을 안 할지라도 무조건 리버사파리를 가야 할 것 같다.
막막함이 줄어들었으니, 아이들과 버스 타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망설여진다. 앱에서 계산된 소요 예상 시간이 1시간 30분이다. 중간에 버스도 갈아타야 하니 실제로는 더 지체될 수도 있다. 아침에 두 시간가량을 가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시작부터 지칠 것 같아 우버를 불렀다.
당연히 버스 타러 가는 줄 알았던 아이들, 우버를 보더니 정말 좋아한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아이들도 길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즐겁게 논다.
한 번 와봤던 곳이라 입구도 헤매지 않고 잘 찾아왔다.
입구에서 나눠 준 지도에 ‘river trail’ 시간이 적혀 있다. 시간에 맞춰 가보니 사육사가 동물을 데리고 나와 만져보게 해 준다.
싱가포르 와서 아이들이 많이 대담해진 것 같다.
사육사가 뱀을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성큼 다가가더니 손을 뻗어 만져본다. 다른 동물들도 만져보려 시도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새 많이 자란 것 같다.
여러 명이 함께 타고 저수지 주변 생물들에 대해 설명을 듣는 크루즈를 탔다. 그리고 지난번 운행하지 않아 발길을 돌리게 했던 보트도 탔다. 보트는 치타 우리 옆을 바로 지나간다.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스릴을 또 즐기고 싶은지 내리자마자 바로 또 탔다. 두 번째 보트 타고 가는 중, 갑자기 비가 내린다. 제법 빗방울이 굵다. 비를 맞으며 마저 돌고 보트에서 내렸다. 또 타려고 하니 비가 와서 운행 중단한다고 한다. 비가 그치면 운행할 수도 있다고 하니, 한 바퀴 돌고 다시 와보기로 하고 판다 우리 쪽으로 갔다.
너구리 같이 생긴 레드 판다 ‘홍’은 불안한 듯 계속 나무 위를 왔다 갔다 한다. 누워있던 자이언트 판다 카이카이(2007.9월생)와 지아지아(2008년 9월 3일 생)는 사육사가 대나무를 넣어주자 나무에서 내려왔다. 우걱우걱 대나무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오니 비가 그쳤다. 희망을 품고 다시 보트를 타러 갔다. 그런데 오늘은 그만 운행한다고 한다. 아쉽다. 하지만 버스 타고 늦게 도착했다면 아예 못 탔을 거라고 생각하니 두 번이라도 탄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탑승객으로 타게 된 것이 더욱 감사하다.
다른 동물들을 보며 다시 판다를 보러 갔다. 아이들은 판다를 계속 보고 싶어 했는데, 관람 시간을 제한한다. 실내에 우리 셋 외에는 없었지만 직원이 들어온 시간을 확인해 나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나와 다시 들어가려고 입구로 갔다. 비 때문에 판다 우리 입장을 제한한다고 한다. 아쉽다.
아이들 표정을 보니 실망이 큰 듯하다. 아이들은 판다 우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데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판다 우리 앞 기념품 가게 안을 계속 둘러본다. 생활비도 빠듯해 기념품 사주는 것은 무리인 것을 아이들도 아는지 사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구경만 한다.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아이들 모습이 기특해 적당한 가격이 있으면 뭐라고 사줄까 하고 나도 열심히 둘러봤다. 판다를 모티브로 한 기념품들이 크기에 비해 너무 비싸다. 구석에 판다 쿠션이 있다. 크기가 커서 더 비쌀 줄 알았는데 가격이 다른 기념품들에 비해 비싸지 않다. 아이들도 마음에 들어한다. 첫째는 본인과 출생 띠가 같은 지아지아 쿠션을, 둘째는 레드 판다 홍 쿠션을 소중히 품에 안고 데리고 나왔다.
비가 와 쌀쌀해졌다. 피곤하기도 하고, 젖은 우산과 짐을 들고 버스와 MRT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는 번잡할 것 같아 우버를 부르고 싶다. 하지만 기념품까지 샀으니 오늘은 지출을 자제해야 한다. 약속대로 버스와 MRT를 타고 집에 오기로 했다.
버스 타는 곳에 공작새가 나와 있다. 덕분에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버스 안에서 판다 쿠션을 안고 있는 아이들 표정이 포근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는 버스에서 혹시라도 내려야 할 곳을 놓칠까 봐 초긴장 상태다. 괜히 버스 탔나 싶어 살짝 후회된다. 지도 앱과 풍경을 계속 비교해봤다. 아직 도착한 것 같진 않지만, 지나치지 않기 위해 다른 승객에게 물어봤다. 다행히 그 승객도 우리와 같은 곳에서 내린다고 한다. 만원 버스 안에서 그 승객을 놓칠까 두려워 이번에 그 승객만 계속 바라봤다. MRT 역인 것 같은데 그 승객이 내리라고 안 한다. 불안한 마음에 ‘내릴까’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그 승객이 우리를 본다. 무사히 내렸다.
MRT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집이 MRT 역에서 멀지 않아 MRT 역에만 오면 집에 가는 길이 어렵지 않기에 안심이다.
오늘 버스 타고 처음으로 제대로 내렸다.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한다.
별다르지 않을 것 같은 오늘, 또 새롭다.
아이들 표정도 매일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