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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Dec 31. 2019

첫 출근

가볍게 눈이 떠진다.

첫 출근 날인데... 생각을 해 봤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가볍다. ‘오랜만의 출근이야’라고 말해봤지만,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는다. 눈을 뜨고 누운 상태로 잠시 오늘 챙겨야 할 일들을 체크했다. 그리고 그동안 매일 출근 준비를 했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일어나 하나하나 준비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 첫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엄마 준비하는 거 지켜보려고.”

첫째는 눈을 비비며 안방에 누워 김차장을 쳐다본다.

회사 출근할 준비를 다 하니 20분 흘렀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어두운 방문 앞에 둘째가 오도카니 서 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언니가 없어. 언니 어디 있어?”

“언니, 안방에 누워 있는데, 너도 안방에 누워있어.”

둘째는 안방으로 가 언니가 있는지 확인한 후, 부엌이 보이는 거실에 눕는다.

아이들 점심 쌀을 씻고, 전기밥솥 예약을 해 둔 후, 반찬을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뒀다. 아침을 차려 뚜껑을 덮어 두고, 김차장도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이 추운데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덜덜 떨고 있을까 걱정돼 ‘추우면 보일러 켜세요’라고 쪽지를 붙여 놓았다. 코코아 먹고 싶은데 물 끓이는 것이 두려워 못 먹을까 봐 아이들이 전에 해봤던 커피머신에 물을 채워 놓고, 뚜껑을 열다가 가루가 다 떨어져 위축될까 봐 깡통 뚜껑을 여는 방법을 적어 붙여 뒀다.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적어뒀다. 아이들의 습성상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판단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나친 기대인 것 같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 내는 것은 여러 경험이 쌓이고 응용력이 생긴 어른들조차 어려운 일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김차장이 볼 수 있도록 주말 내내 네이버 가족 캘린더에 적어놓은 아이들이기에 스스로 알아서 할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 외의 것들, 그동안 엄마가 시켜서 한 보일러 켜기, 엄마와 함께 했던 물 끓이기,  상 차리기 등, 혼자 스스로 판단해서 해보지 않을 것들을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몇 가지 쪽지를 붙여뒀다. 김 차장 첫 출근에 아이들도 신경이 쓰이는지 새벽에 일어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터벅터벅 지하철 플랫폼으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 가는 사무실인데, 익숙한 출근길 인양 뛰어서 들어오는 지하철을 탔다. 휴직기간 동안 고민하고 걱정했던 마음들 덕분인지, 아직까진 너무 자연스럽다.


내려야 할 전철역이다. 무사히 내렸다.

갑자기 숨이 차 온다. 숨이 멎을 것 같다.

발까지 후들거린다. 사무실 계단을 오르며 잠시 뒤뚱, 넘어질 뻔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김차장은 큰 소리로 인사했다.


엇, 김차장이 아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마음이 좀 놓인다. 입사 후배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 배치됐다. 책상에는 서류 철들이 한 가득 쌓여있다. 오전 내 회사 업무 시스템 들어가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했다. 전화가 계속 온다. 답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김차장은 신입직원에게 물어보고, 팀장에게 물어보고,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동기에게 물어봤다. 오전 내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답답하다. 전혀 별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이 업무를 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접속하지 못하는 시스템들이 있지만, 용기 내 서류철 하나를 펼쳐 들었다.

김차장 앞에 앉은 신입직원이 묻는다.

“차장님, 할만하세요?”

“아니요. 전혀 기억이 안 나서 항목 하나하나 규정 찾아보고 있어요.”

“제가 하나하나 보면서 좀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래 줄래요?”

신입직원은 김차장 자리로 왔다.

신입직원이 묻는다.

“차장님, 이 업무 해보긴 하셨어요?”

“네, 5년 전에.”

신입직원이 웃는다. 신입직원보다 나을 게 없을 것 같다고 김차장을 맞아주는 두 팀장에게 말했다.

김차장은 진심이었다.

‘제발 신입직원이라 여겨주세요’

신입직원이 알려주는 내용 하나하나 놓칠세라 이면지에 적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신입직원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김차장은 미안한 마음에 규정을 찾아봤다. 바뀐 시스템의 어디를 뒤져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희미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이지만, 여기저기 쑤셔봤다. 찾은 것도 있지만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 업무 노하우와 관련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물어봤다. 가능한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으나 자주 물어봤다. 연필을 못 깎아 연필깎이 위치 조차 물어봤다. 하루 100건 이상의 서류가 들어온다는데, 김차장은 두 건의 서류를 처리하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서류를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또 숨을 멈췄다. 화장실로 안 갔다. 뻔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첫 출근 날부터 휴직 전처럼 일에 좇기고 싶지 않았다. 두 건의 서류 결재를 올리며, 팀장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시스템 접속을 위해 관련 부서에 전화를 했다. 누가 담당자 인지도 모르겠다. 통화가 된 직원도 모르겠단다. 이 시스템 접속은 당분간 포기하자.

규정을 봤다. 뭐가 뭔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업무 분장이 천천히 될 줄 알았는데, 일이 김차장을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조급함이 생긴다. 새로운 두려움이 몰려온다.

빨리 업무를 혼자 알아서 처리하고 싶다.


책임감이 강한 김차장, 오늘 두 번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이상을 하고 싶어 한다.


조급해하지 말자.

출근 첫날부터 두 건이나 처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지레 욕심부려 쉽게 지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김차장, 인생은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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