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장은 복직했다.
복직하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가 주관적인 말투, 일반화하는 오류에 넘어가지 말고, 멘탈을 지키고 김차장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복직하는 날을 기다려준 서류철들 덕분에 점심시간이 됐는 지, 퇴근시간이 됐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만 3주가 다 돼간다. 팀장들이 밥 먹으러 나가고 나면, ‘점심시간인가?’하고 생각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퇴근시간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만 3주가 돼가니, 서류철만 보던 김차장 눈에 직원들이 들어온다.
김차장이 휴직 전 근무하던 모습과 많이 다르다.
김차장은 항상 출근하면서 직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점심시간이 됐는 줄 알게 되면 직원들 하나하나 부르며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고생했어요”라며 퇴근 인사를 한다. 김차장, 야근을 하더라도 직원들에게는 “얼른 퇴근하세요”라며 퇴근을 독려하고, 퇴근 인사를 보낸다.
김차장이 출근할 때 인사 나눈 시간 이후에 들어온 직원들은 언제 왔는지 모르게 앉아있다. 점심시간인 줄 뒤늦게 깨닫고 고개를 들면 직원들이 자리에 없다. 김차장이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무실에 사람들이 없다. 퇴근했나 보다.
저녁 8시 30분, 김차장 저녁을 놓치고 사무실에 혼자 남아 야근하고 있다. 고요했던 복도에 요란한 발소리가 난다.
‘누구지?’
놀란 김차장은 고개를 들었다. 김차장과 20살가량 차이 나는 후배 직원이다. 후배 직원은 바닥만 보며 본인 자리로 걸어간다. 바닥만 보는 후배 모습이 ‘저 모르는 척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발소리가 들리는데, 김차장 혼자 있는데, 들어오는 후배를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김차장, 잠시 망설였다. 점심시간에도 고개 들면 늘 먼저 사라지는 직원이다. 복직 후 한 번도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이 없기에 사무실에 둘 뿐이니, 지금이라도 인사 나눌까 하는 마음에 말을 걸었다.
“주임님, 어디... 갔다... 와요?”
“...”
답이 없다. 김차장 목소리가 작았나 보다.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물었다.
“주임님, 어디... 다녀와요?”
“아? 친구들 만나고...”
더 이상 말을 거는 건 방해하는 것 같아 김차장 입을 다물었다.
저녁 9시, 갑자기 한 명이 사무실에 더 보인다.
‘어디서 나타났지?’ 이 직원도 점심시간에 찾으면 언제나 자리에 없다. 말을 나눠 본 적도 없다. 김차장이 업무적으로 말을 걸어본 적은 있지만,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점심시간 늘 자리에 없던 직원이 점심은 먹는지 궁금했지만, 많은 업무량에 근무시간에는 김차장 책상 밖을 볼 겨를도 없고, 그 직원도 딱히 김차장 자리에 와서 말을 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다른 직원들과도 별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다른 직원들도 의례 점심시간이 되면 그 직원은 빼고 먹는다. 점심시간, 고개를 드니 김차장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밥 먹으러 사무실을 나서던 김차장, 비상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그 직원과 마주쳤다.
“엇, 주임님, 점심 안 드세요?”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상관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김차장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윗 계단에는 어린이 무용학원이 있다. 점심시간 순식간에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했던 김차장은 의문이 풀렸다.
“김차장님, 이거 서류 찾아주세요.”
오후 시간, 20대 직원이 김차장 앞으로 쪽지를 내민다.
“이 서류가 무슨 서륜데요?”
“아직 처리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기관에서 보냈다고 전화 왔어요.”
“우편으로 온 거면, 우편물 대장 확인해 보세요.”
“없어요. 잃어버린 것 같아요.”
“우편물 대장에 없어요? 그럼 등기번호 확인해 보고 누가 수취했는지 찾아서 수취한 사람한테 확인해 봐야죠, 제가 수취 서명했나요? “
김차장은 서류철들 하나하나 찾아봤다. 쪽지에 적힌 서류철은 없다.
“서류 담당자가 혹시 저예요?”
“아니요?”
“그럼, 왜 제게 찾아달라고 하는 거예요.”
“잃어버린 것 같아서, 차장님께 찾아달라는 거예요.”
김차장은 다시 차근 차근 찾아볼 방법을 설명해줬다. 성명이 끝난 후에도 직원은 계속 김차장 옆에 서 있다. 직원의 눈을 봤다.
김차장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엄마에게 달려와 “엄마, 해주세요”하고 말하는 듯, “그냥 김차장님이 해주세요”하고 의지하는 눈빛이었다.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직원들.
서류를 찾아 달라는 직원, 안 해본 일은 안 하는 직원, 설명이 끝나도 행동하지 않는 직원....
다른 직원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김차장,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런데, 3주 차 김차장은 직원들이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격세지감이겠지? 시대가 다르니까.
혹시 “나때 말이야”라고 꼰대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매일, 순간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