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구축은 언제쯤
아침 출근길, 김차장은 인터넷 기사를 클릭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일명 우환 폐렴의 확산 방지에 공항 검역관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되고 있다. 가까이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검역관들은 초국가적 비상사태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강도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 강조와 더불어 검역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고려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검역관들이 제대로 업무를 하려면 현실적인 인력 확충이 되어야 한다. 그들도 바이러스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초과근무로 육체적 피로는 물론, 최전방에서 위험에 노출된 채 많은 업무량을 감당해야 하는 그들은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초유의 비상상태 극복을 위한 필요한 인력 확충에 대한 강조보다,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하는 기사들을 읽으며, 김차장은 쓴웃음이 지어진다.
역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길 바라는 건 환상인 가?
당장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고려가 늘 우선이 되길 바라는 김차장은 이상주의자인가?
김차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열심히 노력해도 계속 문제가 쌓인다. 정상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상사태인 것 같다. 미해결에 대한 “불안감”, 많은 업무량에 대한 “압박감”에 김차장의 숨이 자주 멎는다.
복직한 첫날부터 김차장 잠을 못 잔다.
근무시간 정신없이 일하다 업무용 PC가 강제 Shutdown 된다는 알림이 뜬다. 김차장의 손이 더 빨리 움직인다. 결국 다 처리하지도 못했는데 컴퓨터가 꺼졌다.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다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배의 통증이 몰려온다. 김차장 또, 숨 쉬는 것, 화장실 가는 것을 잊었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서려 했다. 마침 새로운 서류철들이 김차장 책상 위로 배달된다. 매일 새로운 서류철을 인수하며 사인한다. 점점 더 쌓이는 서류철들, 찜찜한 기분으로 퇴근 전철에 오른다.
집에 돌아왔다. 김차장 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간단한 안부조차 물어볼 정신이 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김차장의 정신이 조금 돌아오면 김차장을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업무량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아이들은 끼어들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김차장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주말이다. 밤새 잠을 못 잤다. 침대에 누웠지만, 회사 일 생각이 가득하다. ‘자고 싶다’ 생각할수록, 정신이 말똥 해진다. 하루하루 해결되야만 하는 일들을 해결하려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한다.
업무시간에는 한 건이라도 빨리 해결하려고 눈과 손, 발을 움직인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이 없다. 그저 움직인다. 일할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서와 상관없이, 본인들 것만 먼저 처리해달라고 김차장을 독촉한다. 다른 사람들 것은 안중에 없다. 물론 그들의 안중에 “김차장”도 없다. 1000여 건의 서류철과 관련된 수천 명의 사람들 독촉으로 김차장 전화가 쉴 틈이 없다. 전화를 다 수신하지 못하면 그들은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다. 1000여 건의 신규 처리 외에, 3만여 건의 관리 업무를 해야 하는 김차장, 홈페이지 문의 글에 답변을 단다. 하나같이 “내 것만 빨리 해결해주세요”이다. 그들에게 김차장은 천하의 몹쓸 인간이다. 순차적으로 “다른 사람 것”을 하고 있는 김차장은 “내 것 해결”이 될 때까지 일 안 하는 “업무태만자”이다. 절대적인 소요시간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들에게 김차장은 바로바로 본인들 것을 해결해줘야 할 뿐이다. 김차장의 기본적인 생리적 문제 해결,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 김차장은 숨 쉬고 화장실 가고, 밥 먹고, 퇴근하면 안 된다. 아이들과 보내야 할 가정이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매일 숨을 참지만, 아직은 숨이 완전히 멎지 않았다. 설령 멎는다 해도 그들은 오직 “내 것 해결”이 됐는지 궁금할 뿐이다.
퇴근 시간, 주말이 되면 멈췄던 생각들이 몰려온다.
왜 해결이 안 되는 거지?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 까?
완벽한 서류를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처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30분.
화장실 가지 않고 근무시간 내내 처리한다면 가능한 하루 처리 건수, 8시간 x 2건 = 16건.
초과 근무가 필요하다.
법정 근로시간과 예산의 문제로 초과 근무, 시간외 근무 시간을 회사는 관리한다. 김차장, 부여된 시간외 근무를 2/4분기 것까지 당겨 배정받아 다 소진했다. 3/4분기와 4/4분기 배정된 시간외 근무를 당겨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부서에 요청했다. 불가하단다.
신규로 매일 접수되는 숫자 통제를 관련부서에 제안했다.
김차장이 소속된 부서에는김차장외 담당자가 한 명 더 있다. 담당자 숫자 2명은 숫자일 뿐, 복직 후 매일 평균 100여 건이 신규로 들어온다. 6만여 건의 기존 건들에 대한 관리는 차치하고, 매일 들어오는 신규건으로 줄지 않는 1000여 건.
처리 기준이 바뀌어서 다음 주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건들 400여 건, 둘이서 할 수 있을까?
전화 안 받고 처리하면 할 수 있을까?
월요일, 기준 담당부서에 변경된 기준이 적용되지 않도록 요청해 봐야겠다.
주말, 김차장은 여전히 회사 업무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 본다.
인력이 늘거나, 업무량이 해결 가능한 수준으로 다른 부서간 조정이 일어나거나. 현실은 둘 다 기대할 수 없다.
회사는 필요한 절대적 요소를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요소에 관심이 없다.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애초부터 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그저 해결되길 바란다. 오직 내 것만 해결되면 된다.
빈익빈 부익부.
자본주의 현상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일 많은 부서, 일 많은 사람은 언제나 많다.
초유의 비상사태도 개인이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시스템 개선, 인프라 구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결은 김 차장 개인의 문제다.
잠이 안 온다.
불안감과 압박감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