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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Nov 07. 2024

"산책 가자"

환자 맞춤 케어 vol.2


  장군이를 입양할 당시 실외 배변하는 개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사실, 그때의 나는 개를 입양하기 전에 실외 배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장군이와 누룽지, 다견가정의 엄마로서 8년의 경험이 쌓였으니 강아지와의 반려 생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그때는 고작 강아지가 지낼 공간, 밥, 밥그릇과 물그릇, 배변판을 미리 준비하면 잘한 줄 알았다.

  귀여운 노란색으로 준비해 두었던 배변판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며칠간 관찰해 보니 장군이가 밖에서만 배변한다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장군아! 넌 밖에서만 볼일을 보는구나! 음…………….”

새 식구 장군이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어 신기하고 기뻤다. 하지만 곧 하루 일정 계산이 시작되면서 복잡해졌다.


  맞벌이하는 남편과 나, 실외배변하는 장군이, 그리고 장군이 산책 후 약간 화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누룽지—우리 네 식구.

  남편과 나는 모든 가족 구성원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장군이가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몇 번 이사를 했다. 그래야만 우리도 일하면서 장군이와 누룽지를 제대로 돌볼 수 있었으니까.



  해가 갈수록 장군이를 더 이해하게 되는 만큼, 장군이와 함께 거쳐온 집들은 우리 가족에게 점점 더 잘 맞아갔다.

  장군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은 '산속 아파트'였다. 단지 바로 뒤에 있는 산자락이 끝나자마자 아파트 부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각 아파트 동 사이도 널찍해서 모든 길에 나무와 풀이 풍성했다. 아파트 주변으로는 다른 건물들이 없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큰 산속에 아파트 건물을 하나씩 쑥쑥 박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가장자리 산책로로 단지를 한 바퀴 걸으면 40분 정도 걸릴 만큼 컸는데, 단지 곳곳에 초목이 많아 장군이에게는 문만 열고 나가면 여러 산책로가 보란 듯이 펼쳐진 ‘산책 나라’ 같았을 것이다. 산책로는 널려 있어서 장군이는 매 산책마다 코를 벌렁거리며 마음에 드는 쪽으로 갔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장군이를 위해 다른 친구가 산책하는 걸 멀리서 보게 되면 재빨리 옆길로 돌아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했다. 비가 오면 같이 맞았고, 눈이 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봄이면 아침 이슬 맺힌 시원한 잔디를 걸었고, 여름엔 열기를 피해 장군이가 볼일만 끝나면 얼른 집으로 돌아오는 ‘치고 빠지기’ 산책을 했다. 가을엔 장군이의 갈색 몸으로 보호색을 뽐내며 낙엽 무성한 길을 거닐었고, 가장 좋아하는 겨울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 걷고 뛰어다녔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릴 때, 자고 일어나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얗게 쌓인 눈을 볼 때, 아무도 없는 새벽에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를 발견하면 나는 눈이 커졌고 ‘허어!’하고 큰 숨을 들이쉬는 만큼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장군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장군이를 이해하는 만큼 방법을 찾았고, 몸에 익혔고, 함께 놀면서, 산책은 우리에게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장군이가 종양 진단을 받은 후 산책은 완전히 달라졌다. 장군이의 기력이 점점 떨어져 걷기 힘들어지고, 소변볼 때 자세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예전처럼 즐거운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장군이가 여전히 산책을 즐기는지 불분명해졌고, 식욕과 활동량도 줄었기 때문에 산책 횟수를 하루 3번에서 2번으로 줄였다. 아마 장군이도 산책을 하루 2번 하는 것을 받아들였을 거다. 남편과 나는 매 산책이 마지막 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슬픔과 함께 기운 내기를 반복했다. 끝을 생각하는 것은 항상 현재를 소중하게 한다.


  남편은 어렵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장군이가 가장 좋아했던 산속 아파트에 가서 산책을 하자고. 당시 나는 장군이의 먹는 것, 수면, 배설에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 것을 돌봄의 우선으로 생각했고 차를 타는 것은 평소 장군이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타고 20분 가야 한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산속 아파트를 좋아한 것은 맞지만, 걷기도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가는 것이 여전히 장군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불편함이 없는 것, 크게 변화 없는 일상이 지금의 장군이가 더 좋아하는 것일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마치 작고 희미하지만 여전히 예쁘게 빛나는 작은 별들처럼 말이다. 남편은 다시 어렵게 말을 떼면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과 함께.


  “장군이의 불편함도 물론 중요해. 하지만, 생각해 봐. 장군이가 정말 행복해했던 순간들을.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불편함을 관리하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좋은 기억들로 채워주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 불편함을 무릅쓰더라도 장군이가 가장 좋아했던 곳에서 좋아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한 번만 가보면 어때?” (눈물…. 콧물….)


  남자의 눈물에 넘어가 우리는 그날 밤 곧장 산속 아파트로 향했다. 이젠 아파트 주민도 아닌데… 남의 아파트에 개 산책시키러 가는 것이 불편하고 괜히 혼자 남의 눈치를 봐서 행동이 삐그덕 댈까 걱정 됐다. “우리 개가 마지막 산책일 수도 있어요. 한 번만 이해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마 주민 누군가가 불편해하신다면, 실제로 부탁할 기세였다.


  남편이 운전을 맡고 나는 장군이를 안은 채 조수석에 앉았다. 장군이가 간간이 끙끙거리자, 마음속에 여러 생각이 떠올라 복잡해졌다. 지금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걸까? 역시 장군이를 집에서 편안하게 해주는 게 더 나았을까? 만약 장군이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어떡하지…. 제안을 한 남편도 복잡하겠지 싶었다.



  우리는 산속 아파트에 도착했고,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장군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오 마이 갓! 이게 웬일인가. 장군이는 호스피스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정정하고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마구마구 냄새를 맡아댔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이 음식을 보고 환장한 듯이, 장군이의 눈은 커졌고 짧고 빠른 비트로 "킁킁킁킁킁" 대면서 코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우리의 부름에 쳐다볼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그렇게 산책에 홀린 개처럼…. 급하게 가면서도 꼼꼼히 냄새 맡았다.

  남편과 나는 눈이 동그래져 서로 "뭐야, 뭐야"를 소리 없이 입으로만 뻐끔거리며 장군이를 보는 것을 반복하면서 장군이가 우리를 이끄는 대로 쫓아갈 뿐이었다. 황당무계란 말이 여기 어울리는 것 같았다. 좀 전까지 복잡했던 마음이 쑥 들어가 어느새 사라졌고, 마치 울다가 웃는 것처럼 기분이 서서히 기뻐지는 걸 느꼈다. 우리가 산속 아파트에 함께 있는 지금, 장군이가 아프지 않았던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밤중에 남의 아파트에서 개 하나가 사람 둘을 끌고 가는 것 같은 모양새로 걷고 또 달렸다. 장군이는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정신이 돌아왔는지 본격적으로 산책을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옛날에 같이 산책했던 속도로, 우리가 부르면 돌아보며 눈코입을 "헤—" 벌리면서…. 장군이와 함께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대를 느끼며 같은 기분을 느끼는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꿈속에서 산속 아파트는 금세 커다란 놀이공원이 되었고, 색색의 화려하게 깜빡이는 조명들이 행복한 우리를 비췄다. 화려하지만 장군이가 놀라지 않도록 고요한 폭죽도 머리 위로 터졌다. 장군이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도, 그에 대한 두려움도 화려한 폭죽과 함께 터져 없어져 버렸다.


  지금 이 순간이라면 장군이가 떠난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곳에서 아픈 줄도 모르고 산책하며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지금, 네가 이제 가겠다고 하면… 그래, 그럼 내가 널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아픈 장군이를 보호하기 위해 급급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장군이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들에 더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장군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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