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솔 Nov 16. 2024

해방

바꿀 수 없는 과거로 괴로울 때


  나는 이제 과거의 일들로 나를 상처 속에 가두지 않을 것이며,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겠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無로 돌리는 데에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자신의 손목을 눌러 연약하고 푸르스름한 정맥 속을 흐르는 피의 맥박을 잠시 살펴보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약간의 충격, 약간의 타격에도 터질 수 있는 혈관… 자연 그대로의 상황에서는 무방비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고, 운명의 여신이 내리는 온갖 모욕에 고스란히 노출된, 허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발가벗은 육체.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어머니인 마르키아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그만 실성하고 말았다. 그녀는 모든 사회 활동을 접고 비탄에 빠져 지냈다. 그녀의 친구들은 동정 어린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면서 평정을 되찾을 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평정을 찾지 못했다.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여전히 마르키아는 비탄을 극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아들의 장례식 날과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했다. 그런 그녀에게 세네카가 편지를 보냈다. 세네카는 깊은 동정을 표한 뒤에 상대가 마음 상하지 않게 덧붙였다. “우리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질문은 바로 비탄이라는 것이 그토록 깊어야 하고, 또한 끝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점이오”라고.
마르키아는 무시무시하면서도 무척 드물기까지 한 사건—그것은 드문 사건이어서 더 무시무시하다—에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주변의 다른 어머니들은 여전히 자식을 잃지 않았고, 그리고 청년들은 군에서 복무를 하거나 정계에 입문함으로써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마르키아의 아들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했단 말인가?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두려운 것이기는 해도—세네카가 과감하게 말했듯이—결코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마르키아가 제한된 틀을 벗어나서 넓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면, 그녀는 운명의 여신이 앗아간 아들들의 이름이 적힌 긴 명단을 보았을 것이다. 옥타비아도 아들을 잃었고, 리비아도 아들을 잃었다. 코르넬리아도 그랬고, 크세노폰, 파울루스, 루키우스 비불루스, 루키우스 술라, 아우구스투스, 스키피오도 아들을 잃었다. 다른 자식들의 요절에 눈길을 주지 않음으로써 마르키아는 자신이 정상이라고 인식하는 범주에 아들의 요절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는데, 그런 심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그대에게 오늘밤에—아니, 유예 기간을 너무 길게 잡았소—대한 약속은 있을 수 없소. 바로 이 순간에 대한 약속도 결코 주어 지지 않았소.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들이닥치는 자연의 그러함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를 댈 수 있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을 뿐.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세상과 사람에게 낙천적인 “고정”된 “관념”을 내 안에 품어왔고, 이로 인해 좌절하고 분노하고 슬퍼했으며, 상처와 괴로움 속에 나를 가뒀다.

  나는 이제 과거의 일들로 나를 상처 속에 가두지 않을 것이며,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