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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choi Feb 03. 2019

마케팅을 하려면 소비재로 가라?

마케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8년차 마케터의 미세팁 - 2화

대학교 학부 시절, 마케팅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본다.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려면 소비재(FMCG) 회사로 가라.'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란?

샴푸, 세제, 기저귀, 면도기 등의 생활용품이나 화장품, 식음료 등 소비의 속도가 빠른 재화를 의미하며, '일용소비재' 혹은 간단히 '소비재'라고 한다. 대표적인 회사로는 P&G, 유니레버 등의 다국적 기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엘지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이 있다.


내 기억으로 당시 교수님께서는 자동차 회사와 화장품 회사를 비교하셨다. '자동차 마케팅은 이미 다 설계된 자동차를 어떻게 잘 팔 것인가 고민한다. 하지만 화장품 마케팅은 제품 자체를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요지는, 화장품 같은 소비재 회사에 가야 여러 가지 다 경험해볼 수 있으니 더 좋다는 것. 은근히 설득력 있는 얘기였다. '자동차 회사가 당장은 돈도 더 많이 주고 있어 보이지만, 이것 저것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수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한 소비재 마케터가 나중에는 더 경쟁력이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래서 나는 우선 소비재 회사를 가서 마케팅 실력을 키운 다음, 필요시에 자동차 회사든 어디든 가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소비재 회사 중 한 군데에 입사하게 되었다.


(과연!)교수님의 말씀이 사실이었을까?

그렇다면, 소비재 마케팅 8년차인 지금의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차별화된 역량을 갖추게 되었는가? 10년, 20년, 더 경력이 쌓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현시점 기준으로 얘기하면 나는 교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조심스럽지만, 솔직한 나의 생각이다.)


물론, 소비재 마케터가 경쟁력이 무조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경쟁력이 있다'는 접근은 너무나도 단편적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만큼 반대급부가 되는 요소도 있으니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것. 자, 그럼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업무의 범위'를 단초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마케팅의 업무는 어디까지인가?

마케터 업무의 범위 대해 설명하려면, '밸류체인(value chain)'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겁먹지 말자. 간단하게 설명하면,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수행되는 다양한 활동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마이클 포터의 가치사슬(value chain) 모형_ LOVESCM님 네이버블로그

위의 모델에서 '마케팅'을 찾아보자. 제품 생산이 완료되어 출고가 되어 물류를 탄 이후에 시작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큰 오해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선 산업군이나 회사마다 밸류체인은 제각각이고, 특히 소비재 회사 마케터의 경우, 위 모델 기준 '주 활동'과 '보조활동' 모두를 포함한 대부분의 업무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가 어렵다고? 본인이 올여름에 출시할 음료 신제품을 마케팅한다고 생각해보자.


소비자 조사를 바탕으로 → 컨셉을 만들고 → 내용물을 개발하고 → 용기 디자인을 하고 → 원재료를 수급하여  → 제조 및 포장을 해서 → 편의점과 마트에 입점시켜 → 다양한 프로모션과 광고를 집행하고 → 판매 현황과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여 → 추후 생산량 조정과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상의 개선 방향을 설정하고 …


소비재 마케터는 다 한다?

그렇다. 한 마디로 '다 한다'는 얘기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밸류체인 전체에 '관여' 한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음료 내용물 개발은 연구원이 / 용기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 원재료 수급은 구매에서 / 생산은 공장에서 / 제품 판매는 영업사원이 직접적으로 수행하지만, 이 모든 곳에 마케터가 함께한다.


'디자이너님 파이팅!', '연구원님 너무 맛있어요 짝짝!' 하면서 마음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나 제품이 일관된 컨셉을 가지고, 정해진 일정에 출시되어,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영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중심을 잡고, 계획을 세우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소비재 회사의 마케터를 다양한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에 비유하기도 하고, 마치 여러 부서의 직원을 둔 사장과 같다 하여 '소(小)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장이면 권력을 주던가... 모순 형용인가요?)


소비재 산업에서는 마케터를 '지휘자'에 비유한다_pngtree

소비재 마케터는 다 안다?

교수님의 말씀이 맞았다. 범위가 넓다. 다양한 업무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나는 지휘자인데,  분명 리더인데, 바이올린도/피아노도/플룻도 그 어느 것 하나 각 연주자만큼 전문적으로 다루지는 못한다는 것. 각 분야에 대해 아예 모르진 않는다. 알긴 안다. 하지만 웬만큼 공부해도 연구원만큼 기술에 대해 잘 알 수 없고, 디자이너만큼 패키지 디자인에 대해 조예가 깊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업무 범위가 넓어질수록 전문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악 3중주만 지휘한다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되겠지만, 오케스트라가 거대해질수록 각 악기에 대해서는 신경 쓰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밸류체인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는 소비재 마케터는 크고 작은 수십 가지의 악기를 조화롭게 운영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잘개 쪼개어 아쉬운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는 무대 디자인은 물론이고 티켓 판매까지 신경 써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화려한 이력서, 하지만?

나는 커리어 전문가가 아니지만, 최근에 이직을 한 경험에 따르면 결국 (너무나 당연하게도) '전문성'이 가장 핵심인 것 같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둘째고, 그동안 길러온 차별화된 역량이 과연 무엇인지가 결국 당락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소비재 마케터들의 이력서는 화려하다. 다양한 브랜드를 총괄하여 이끌었으며,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다양한 채널에서 판매해보았으며, 이런저런 프로모션과 커뮤니케이션을 해 보았기에 쓸 말이 많다. 이것도, 저것도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기에, 내가 담당한 브랜드나 제품과 관련된 모든 내용들이 기재된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가슴에 꽂히면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다 하셨다고요? 그렇다면 각각의 프로젝트 내에서 본인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본인이 직접! 수행한 업무는 무엇인가요?'


화장품 마케터, 자동차 회사에 도전하다?

다시 교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화장품 회사에서 밸류체인 전체에 걸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동차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는 제품 개발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도, 만들어진 자동차를 잘 포장하여 판매할 수 있는 데에 집중된 역량을 갖춰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광고 등의 소비자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 분야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꿰차고 있는 전문가를 원할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 산업에 대해 쌓아 온 인사이트도 미미한 데다, 제품 출시 주기가 짧은 화장품 산업에서 신제품을 쏟아내느라 개발 위주로 업무를 진행해온 나를 채용해야 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채용 담당자의 입장에서 잠깐이나마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결국, 무조건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화장품 마케터가 자동차 마케터보다 별로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다만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듯이, 마케팅이라는 직무는 산업마다, 회사마다 하는 일에 차이가 크며, 따라서 소비재 마케팅의 넓은 업무 범위가 무조건 유리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특히 마케터로서 경력을 시작할 때는 본인에게 맞는 산업군이나 회사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힘주어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첫 번째 글을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혹, 소비재 마케터로서 꿈을 키우고 있다가 이 글을 읽고 고민이 시작되었다면? 냉철하게 고민은 하되, 낙담은 말리고 싶다. 내가 교수님 말씀을 떠올렸듯, 당신이 먼 훗날 이 글을 떠올리며 반박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소비재 마케팅 업무가 주는 재미와 보람, 이를 통해 기를 수 있는 차별화된 역량도 물론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소개할 소비재 마케터로서의 삶이 자신의 가치관과 부합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봐도 좋을 것이다.


학생들과 마케팅 세션을 진행하던 날이었다. Q&A 시간에 누군가 물었다.


'소비재 마케팅을 '마케팅의 꽃' 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건가요?'


꽃이라... 그래...


-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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