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8년차 마케터의 미세팁 - 3화
언젠가 학생들과 마케팅 세션을 진행하던 중, 누군가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소비재 마케팅을 '마케팅의 꽃'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 건가요?'
그렇다. 소비재(FMCG) 마케팅이야 말로 '마케팅의 꽃'이라며 추켜세우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보통 다른 산업보다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꼽는다. 쉽게 말해서, 매출이나 이익 등의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얘기다.
고관여 vs. 저관여
조금이라도 마케팅에 관심이 있다면, '4P MIX'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크게 4가지 범주로 분류해놓은 것’이라 보면 되겠다.
- Product 상품
- Price 가격
- Place 유통
- Promotion 판매 촉진
마케팅 강의를 수강했거나 관련 공모전을 준비해봤다면 알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4P'라는 골격에 맞추어서 마케팅 플랜을 짠다. 그런데, 하다 보면 뭔가 균형이 맞지 않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동/서/남/북 처럼 네 가지 요소를 밸런스 있게 구성하고 싶으나 잘 되지 않는다. 네 가지 중 한두 가지는 너무 뻔해서 그냥 구색으로 내용을 채워놓는 경우도 많다. '럭셔리 마케팅' 강의를 듣는 학교 후배가 문의를 한 적이 있다. '4P 전략을 짜야하는데, 명품이라 가격(Price)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을 것 같고, 명품관이나 면세점 말고 다른 곳(Place)에서 판다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뭘 하면 좋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다. 산업군이나 제품군마다, 심지어 해당 브랜드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유의미한 4P 요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전 글들과 일맥상통한다.) 아무래도 럭셔리 마케팅은 오랫동안 쌓아온 브랜드 자산을 활용하는 분야이고, 소비자의 관여도가 높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비교적 좁다. 반면, 소비재는 어떠한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쯤 되면 느낌이 올 것이다. '아! 관여도가 높은 명품과는 달리, 저관여의 소비재 마케팅에서는 4P를 골고루 활용하여 전략을 짤 수 있다는 거! 그래서 마케팅의 꽃이라는 거!'
저관여 소비재 마케터는 다양한 전략을 짤 수 있다?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지만, 혹시 위와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면 꼭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소비재는 저관여라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없는 대신, 다양한 전략을 짜고 실행할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그리하여, 명품 시장처럼 판세가 굳어진 시장과 달리, 마케팅 전략을 통해 경쟁 구도를 뒤흔들고 판을 바꾸는 전략가(!)로서 활약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를 들어, 저관여 소비재 제품군 중 하나인 '락스'를 생각해보자. 혹시 다음에 마트 갈 일이 있으면 재미로 락스 코너에 들러보자. 여러 회사에서 나온 제품들을 비교해보면 다 비슷비슷할 것이다. 제품 후면을 보면 성분 표기가 보이는데, (놀랍게도!) 성분까지 거의 동일하다. 이 정도 되면 그냥 가격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것에 슬금슬금 눈이 가기 시작한다.
자, 이제 본인이 소비재 회사에 입사해서 '락스' 담당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난 락스 안 할 거라고? 미안하지만 그건 회사가 정한다. 그리고 락스가 뭐 어때서!) 성분이나 제품 기능상에 차별점이 없는 상황에서, 100원이라도 싼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4P 전략을 세울 것인가? 차별화를 위해 패키지를 더 고급스럽게 만들고, 독특한 컨셉의 프로모션을 집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경쟁 제품보다 200원 비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디자인을 더 단순하게 변경하여 라벨 인쇄 단가라도 몇 푼 낮춰서, 경쟁 제품보다 몇 십원이라도 싸게 파는 것이 판매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케팅이라는 꽃에 매료되기 전에
물론, 위의 사례가 다소 지엽적인 경우이라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할 마케팅은 이런 것과는 다를것이라며 ’에이~’ 하고 고개를 가로젓고 있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실의 문제이다. 많은 학생들이 막연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케터로 입사하여 현실 앞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제발 쉽게 예단하지 않기를. 마케터의 일은 산업마다,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그냥 마케팅'은 없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개론 이후에는 각 사례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막연하게 마케팅을 하고 싶은 상태라면, 거기서 절대 멈추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산업군이나 브랜드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자. 어느정도 범위가 좁혀졌다면, 알음알음으로 부탁하든 예전 동아리 주소록을 뒤지든, 해당 산업의 현업 마케터와 실제 하는 업무에 대해 직접 얘기해봐야 한다.
피할수 없다면 활용하자!
'지원할 산업군이나 회사의 범위를 처음부터 좁혀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가능한 좁히고, 깊게 알아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회사마다 차이가 큰 만큼 회사 입장에서도 자기 회사 마케팅에 대해 잘 알고 지원한 것인지 아닌지 티가 확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기퇴사로 인해 인력 관리에 애를 먹는 회사가 생각보다 많아서, ‘잘 알고(각오하고!) 지원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잣대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하게 '그냥 마케팅' 하고 싶다고 들이대는 다수의 지원자들 사이에서, 회사의 니즈를 확실히 파악하고 공략하는 ‘맞춤형 인재’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그것 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을 것이다. 머릿속 정리는 그만하면 충분하다. 스스로가 내렸던 마케팅에 대한 정의는 잠시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 팩트체크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 다음 글부터는 '마케터가 기를 수 있는 역량과 직면하는 어려움, 보람과 스트레스'에 관해 다룰 예정입니다 -
※ 본 글은 마케팅 관련 3번째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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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난하게 마케팅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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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케팅을 하려면 소비재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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