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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ya Kang Sep 20. 2023

'뭘 믿고 거길 가?' '그 회사 돈은 벌어?'

사회 초년생. 작은 스타트업의 열두 번째 멤버가 되다.


2019년 2월, 차가운 공기에 풀내음이 살짝 실려올 때쯤 '취준생'이 되었다.

사회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던 그때, 걱정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 바로 전 해 10월엔 대대로 학교 선배들이 많이 입상하여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던 공모전에서 입상을 놓쳐 취업의 기회를 놓쳤다. 덕분에 뭔가 될 것 같다는 '근자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대학 생활의 막학기에 다다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안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명과학 학사로 졸업해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많이 고민했다. 주변 생명과학 전공의 선후배들은 으레 의전원(의학전문대학원)이나 석사/박사 학위의 길을 걸어가곤 했다. 사회적으로 매우 좋은 길인 것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그게 내 길은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그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4.5점 만점에 3.5점의 성적으로 졸업했으니, 말 다했지. 두 번을 듣고도 B+를 받았던 분자생물학 수업이 왜 이렇게 어렵던지.


2014년 잠시 몸 담았던 암연구소 인턴 실험실 생활은 흥미로웠으나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 연구는 내 길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스스로 상당히 차분하고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경험해 보니 확실히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세포를 만나는 시간보다 재미있었다. 또 생각해 보면 나는 생명과학 분야에 대단한 열정은 없었던 것 같다. 흥미는 분명히 있었지만.


덕분에 복수전공으로 택했던 상담심리학 수업을 통해 세포 대신 사람의 심리를 열심히 뜯어보았다. 나를 탐구하면서 남에 대해 알게 되는 흥미로운 경험. 아쉽게도 심리 상담 역시 나의 당장의 진로에 맞는 것 같지 않았다. 남의 마음을 보듬어줄 만큼의 사명감이 없었다. 돈을 어서 벌고 싶기도 했고.


어쨌든, 그 누구도 졸업해서 취업해 일을 당장 시작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공부하고 싶은 게 없어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명과학 학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제약사나 화장품 회사의 QA/QC 직무를 주로 살펴보았고 화학 분야도 들여다봤던 것 같다. 심지어는 스마트폰 액세서리 회사의 글로벌 세일즈에도 지원했었고,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아직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면접 당시에 영어도 곧잘 했고 IT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관심도 드러냈었던 것 같은데. 너무해. 아무래도 지금 회사에 들어올 운명이었나 보다.


사회에 내디딘 첫 발, 내 사번은 12번이었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취업 정보 플랫폼을 통해 누군가 연락이 왔다.

자신을 바이오 스타트업의 COO(Chief Operation Officer)라고 소개한 그분은 내가 찾고 있던 동료로서의 조건에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다며, 스타트업 중에는 투자를 잘 받은 회사이며 미래가 유망한 업종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는 회사임을 어필했다.

  

알다시피, 스타트업은 확실히 매우 잘 된 사례들과 심히 망한 사례들이 유명하다. 면접을 통해 초창기 회사의 대표진들과 구성원들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회사의 비전과 그 비전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 역시 뚜렷한 근거 없는 믿음이긴 했지만, 스타트업은 원래 꿈과 믿음으로 돌아가니까.

갓 대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난 터라 부모님과도 상의를 했다. 나는 회사의 비전과 사람을 믿어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믿어주셨다.


사번은 12번. 나는 지금 직원이 80명이 좀 안 되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대표 고인 물 사원으로서 4년 하고도 5개월가량 일하고 있다.

'마케터' 영어로는 'Marketing Manager '라는 직무로 '호야'라는 닉네임을 달고. 첫 시작은 '세일즈 매니저'였는데, 면접에서 흥미롭게 보았다고 한 책이 '그로스해킹'이라, 자연스럽게 여러 업무를 맡으며 마케팅 직무로 전환하게 되었다. 전환하고 보니 "아 이게 내 옷이구나" 싶었다.


워낙 '마케팅'이라는 단어에 대한 시각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전히 마케팅을 잘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회사의 성장 발걸음에 맞춰 진행한 업무들에서 분명하게 배운 게 있고, 스스로도 많이 성장했다고 자부한다. 워낙 바이오 업계에서도 특수한 분야, 특수한 고객군이라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온 것도 분명하다.


대한민국에서 글로벌 시장의 의료진과 환자를 고객 삼아 유전자 진단 사업을 펼쳐나가는 작은 회사의 마케팅 성장기를 지금부터 풀어나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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