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로?
"요즘 마케터는 다 할줄 알아야 하나봐요."
같은 업계 종사자 지인이 최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직을 준비 중인데 마케팅의 기본 자질이 상향 평준화된 것 같다고 말이다.
실제로 요즘 콘텐츠 마케터, 온라인 마케터 채용 공고를 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항목이 '어도비 포토샵, 일러스트 가능자 우대(혹은 필수)'이다. 심지어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어도비 프리미어나 파이널컷프로 등을 요구하는 곳도 있어 정말 점점 마케터로 이/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마케터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새로 온 팀원이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를 다루는 나를 보고 '마자이너'라는 표현을 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는데-
뭐랄까, 처음 듣는 워딩에 대한 신선함과 원인 모를 현타가 함께 왔다.
나는 우연히 첫 회사에서 디자인 툴을 모두 배운,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지금은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디자이너가 퇴사한 후 나 몰라라 하던 회사가 디자이너를 채용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밤새 유튜브를 뒤져가며 독학했던 눈물겨운 기억이 있다. 짤리면 안 되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케터가 포토샵 등의 디자인 툴을 다뤄야 한다는 의견에는 조심스레 찬성하는 입장이다.
물론 항상 이야기하듯 디자이너의 R&R을 침범하라는 이야기도, 디자이너의 일을 모두 도맡아 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할 때 그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화가 오간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게 되는 것처럼, 매일같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디자이너와 서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본적인 것만 다룰 수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게임의 튜토리얼처럼 말이다.
나의 인턴 시절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업무 일정 데드라인'을 정하는 일이었는데. 콘텐츠나 광고 소재 디자인에 대한 수정사항 때문이었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다룰 줄 모르니 내가 요청한 수정이 어느 정도의 공수가 드는 일인지 몰랐고, 이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했다. (물론, 디자이너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면 별도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그 이후, 기본적으로 디자인 툴을 다룰 수 있으니 간단한 수정이나 혹은 시안이 추가되어도 '공수'를 대략 짐작할 수 있게 되어 보다 수월한 업무 진행이 가능했다는 행복한 이야기.
디자인은 결국 디자이너의 일이다. 마케터는 그들과 협업하는 존재이지 그 일을 뺏는 사람도, 더 잘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당신을 '마자이너'로 만들려는 회사에서는 도망치는 걸 추천하겠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마케터가 디자인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말하듯 레퍼런스를 통한 디자인, 기획 감각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분야던 기획이 신선하거나, 디자인이 신선한 레퍼런스는 항상 저장해두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나의 양분으로 삼길 바란다. 이는 언제 어느 때나 나에게 도움을 주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그럼 오늘도 세상의 모든 마케터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