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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J Sep 08. 2022

철없던 효녀에서 철든 불효녀로

고3 딸과 마카롱


고등학교 때, 유난 떨 것 없는 성적이지만 공부를 곧잘 했다. 남들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하긴 민망하고, 그냥 고3 때는 누구나 그렇듯 남들만큼 스트레스받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고3 시절이 막 힘들지만은 않게 느껴졌던 건 그 한 해가 부모님의 묵묵한 사랑과 서포트를 가장 많이 받은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기도 하고 중압감과 부담감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고3 시절에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야자를 못했다. 소음 없이 조용한 교실 안에서는 더 긴장이 되어서 배에서 꾸루룩- 꾸우욱- 하는 요상한 소리가 울려댔고, 친구들이 웃으면 함께 웃어넘기긴 했지만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교 후 집에서 엄마 밥을 먹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당시엔 야자 안 하고 집 가서 하겠다고 하면 안 믿어주던 분위기였는데, 다행히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 나에게 맞는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공부는 잠깐 쉬고 한의원에 다녔다. 침과 뱃가죽에 직접 맞는 유황 주사를 함께 맞았다. 그래야 효과가 빠르다나. 아침마다 한약을 먹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보니 돈 덩어리 그 자체...


아무튼 다행히 컨디션 조절을 병행해서 공부를 한 탓인지 성적은 정점을 찍어 상위권 전용 독서실 입성 및 교장선생님과의 식사라는 특권(?)까지 얻게 되었다. 성적을 보니 더 욕심이 생겼다. 야자를 못하니 쉬는 시간 친구들이랑 말을 섞는 것도, 점심시간이나 청소 시간에 매점을 가는 것도 다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내 할 일 끝나면 남은 시간은 무조건 공부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그래선지 유난히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랄 게 없다. 지금도 중학교, 대학교 친구들은 있어도 고등학교 친구들은 거의 없다. 하루는 선생님이 날 불러다가, "00아, 청소 시간만이라도 제발 놀아"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러다 수능 날이 점점 다가오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꼬박꼬박 독서실 가서 공부를 하긴 하지만, 야자를 하는 친구들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침 상위권 전용 독서실은 좌석 간 간격이 넓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배에서 나는 소리도 덜 신경 쓰일 것 같았다. 나 자신을 옥죄어야만 수능을 망쳐도 야자 탓을 안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간헐적으로 억지로 남아서 야자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집에서 학교까지 30분 정도 거리라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매일 야자를 하면 저녁 스쿨버스까지 신청하겠지만, 매일은 컨디션상 할 수가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하는 나로서는 스쿨버스 신청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아서 야자를 하는 날은, 아빠가 꼬박꼬박 학교로 데리러 오셨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 오라고 할 수 있음에도 아빠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꼭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10시가 넘은 저녁 시간대에는 빨리 달리면 집까지 20분 만에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우리 동네에 있던 전국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꼭 통과해서 천천히 지나가며 "00아, 여행 온 느낌으로 구경해 봐. 야경 예쁘지? 스트레스 풀리지?"라며 보여주곤 하셨다. 공부 힘든 거야 물어봐 봤자일 테고, 학생 때가 좋다는 말은 고3에겐 위로가 안 될 걸 알기에, 그저 학교에서 책만 보고 온 딸에게 바깥세상(?) 구경이나 많이 시켜주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엄마와 아빠는 "냉동실에 뭐 있게?"라는 말로 내 반응을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그렇다. 고3 시절 내내 우리 집 냉동실에는 마카롱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마카롱이 디저트로 유명해지기 전 파는 곳이 많지 않아 난 마카롱 파는 카페를 찾아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동네에 마카롱 전문점이 새로 생겨 부모님 찬스로 처음으로 마카롱 20개입 박스를 사게 되었다. 그날 열아홉이나 먹은 딸이 유례없이 신나 보였는지, 엄마 아빠는 수능이 끝나는 그날까지 내가 독서실에 가져갈 마카롱이 떨어지지 않도록 항시 채워 두셨다.


- 여보, 마카롱 2개밖에 안 남았어

- 응, 내일 오는 길에 1박스 사 올게


이게 부모님의 주된 대화였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저녁 먹고 독서실 가기 전 마카롱 무슨 맛을 가져갈까 고르는 게 내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수능이 끝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 지금은 마카롱을 먹지 않는다. 오히려 안 좋아하는 편이 됐다. 분명 고3 때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는데. 당시 마카롱은 얇은 꼬끄에 얇은 버터크림 한 줄이 끝이었지만 지금은 뚱카롱이니 뭐니 하는 크고 화려한 예쁜 마카롱들이 많이 나왔는데 먹어보면 맛은 예전만 못하다.


그때 아빠 차 뒤에서 '난 언제쯤 다 커서 공부도 안 하고 내 힘으로 돈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멋있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공부도 안 하고 내 힘으로 돈도 벌어 부모님 모시고 오마카세도, 5성급 호텔 호캉스도, 여행도 갔지만 그럼에도 효도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아직도 '마카롱 사갈까? 너 마카롱 좋아했잖아'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추석을 맞아 연차 쓰고 하루 일찍 내려간다는 소리에는 펄쩍 뛰며 좋아하셨다.


본가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문득 든 생각은, 어쩌면 멀리 살며 돈 벌어서 용돈 보내드리고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보다, 고3 때 힘드니 데리러 오라고, 마카롱 사달라고 칭얼거리던 그때의 내가 더 효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엔 철없는 효녀였는데, 지금은 철든 불효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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