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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J Aug 18. 2022

출근길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세요?


당시 살던 동네는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내가 출근하는 아침 시간에는 더더욱. 당시 회사는 9시 출근이었지만 쫓기듯 출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여유 있게 나서는 편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찍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와 지하철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 엄마야, 깜짝이야!


주차된 관광버스 아래 할아버지 한 분이 누워계셨다. 초가을 계절에 알맞은 깔끔한 차림새로 보아 노숙자는 아닌 것 같았다. 아침 8시의 취객이구나. 동네가 오래되어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술집이 많은 편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꼭 봐 오던 장면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직 새벽 기운이 찬데 경찰이라도 불러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보통 취객이면 붉은 기 가득한 얼굴에 눈을 감고 뒤척거리는 게 보통인데, 할아버지는 반듯한 자세로 누워 나랑 정확히 눈을 맞추고 계셨다. 그 상태로 할아버지 앞을 천천히 지나가자, 할아버지의 시선도 나를 따라 움직였다. 표정도 너무나 멀쩡하고 온화하셨다.


- 괜찮으세요?

- 예예, 괜찮습니다.


괜찮으신 분이 길에 누워 계실 리 없으니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길을 가는 내가 바빠 보여 괜찮다고 하신 것이다.


- 일으켜 드릴까요?

- 예예, 그럼 좀 부탁합니다.


팔을 잡고 일으켜 드리려는데, 상체를 못 일으키시는 게 허리 힘이 전혀 없으신 듯했다. 결국 등 밑으로 내 왼쪽 무릎을 밀어 넣어 등받이를 만들어 드리고 나서야 상체를 기댄 채 앉아계실 수 있게 되었다.


- 할아버지, 자제분들 전화해 드릴게요. 휴대폰 주세요.

- 자식들은 못 와요. 다 멀리 살아요.

- 그러면 지금 모시고 갈 사람이 있나요?

- 목사님이 병원을 데리고 가줘요. 그래서 지금 교회 가는 길이었지. 병원 가러.

- 오늘 통화하신 000 목사님 이 분 맞으세요?

- 예예, 맞아요.


목사님에게 전화하니  그래도   오시길래 이상했다며 지금 바로 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다리를 빼면 혼자 앉아계실 수가 기에 목사님이  때까지 함께 있어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연신 미안해하셨다.


- 아이고, 고마워요. 바쁜데...

- 아니에요. 그런데 어쩌다가 넘어지신 거예요?

- 발에 힘이 없으니 팍 고꾸라져 버렸지. 늙어서 허리 힘도 없으니 혼자 일어나질 못 해요. 아침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그냥 기다려야겠다 생각했지. 상체가 굳어서 휴대폰도 못 꺼내고...

- 그러셨구나. 그럼 아까 저한테 바로 도와달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 젊은 사람들은 바쁘니까... 날 밝으면 사람이 더 많아질 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바삐 길을 가는 젊은이를 붙잡기가 미안해 찬 바닥에 그대로 누워 계시는 걸 택한 것이었다. 그 심정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혹시 어딘가에서 이렇게 곤경에 처하셨을 때 미안한 맘에 도움 요청도 못하신 채 쩔쩔 매고 계신 건 아닐지.


어릴 적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은 젊고 날랜 든든한 모습이셨는데, 일흔과 여든을 넘기시며 부쩍 아픈 곳이 많아지셨다. 부모님이 바쁠 때 종종 나를 돌봐주러 오셨었는데 이제는 내가 돌봐드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다 큰 손주한테 당연히 받아야 할 명절 용돈과 건강식품 선물에도 뭘 이런 걸 매 번 주냐며 '아이고, 참 고맙다.' 하신다.


문득 키오스크와 카카오 택시 상용화로 어르신들이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는 내용이 떠오른다. 키오스크 대기줄 앞에서 도움 요청조차 하지 못하거나 매몰차게 거절당한 이야기, 젊은이들은 어플로 택시를 잡아 하나둘씩 떠나갈  속절없이 도로에서 손만 저으신다는 이야기...


그런 분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도와드려야 다른 누군가가 같은 상황에 처하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드릴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솔직한 말로 미래의 그 사람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느낌이다. '저도 이렇게 도와드렸으니 제발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주세요.'라고.


바쁘고 각박한 세상이라 도움의 손길 청하는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생활 속 작은 도움이라도 드려본다면 어르신들 얼굴이 '늙으면 세상을 따라갈 수가 없구나'하는 절망에서 '오래 사니 이런 신기한 것도 보는구나'하는 환희로 바뀌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모두가 마음 놓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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