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회고록 2
복학을 해서 장학금을 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마케팅 원론 수업을 들으며 마케팅에 매료되었고 마케팅을 커리어로 삼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는 제일기획이었다. 서류에 붙고 인적성을 보면 대부분 합격이었는데 유독 SAT는 매번 떨어졌다. 인턴과 공채 포함해서 두 번 정도 SAT를 본 것 같은데 결과는 두 번 다 탈락이었다.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어떤 인더스트리에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마케팅 팀에서 일하고 싶다는 수준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회사에서 면접관 역할을 많이 했었다. 면접에서 구체적인 커리어와 관심사에 대해 질문했지만 돌이켜보면 취준생 때의 나 또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주변에서 모두 그러는 것처럼 연봉이 적당한 대기업 마케팅 팀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이 내 목표의 전부였다.
대기업, 마케팅이 포함된 공고에는 모두 서류를 제출했다. 승률은 반반정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취업 시장은 어려웠다. 한 번만 겪는 것들에선 언제나 내 상황이 제일 힘들기 때문에 매년 취업 시장이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군대도 한 번만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부대냐와 상관없이 내가 근무했던 군대가 제일 힘든 것처럼.
L 모 기업 합숙 면접에 가서 저녁 식사 때 술을 마시고 밤새 피티 준비를 했었다. 나름 발표를 잘했던 것 같은데 탈락했다. C 모 기업은 최종 임원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했다. 슬슬 취준에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학교 취업지원팀에서 작은 마케팅 회사의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일단 마케팅을 하는 회사라는 점에서 눈이 갔고, 대기업 수준의 연봉에 또 한 번 눈이 갔다.
원하던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보험 삼아 일단 서류나 넣어볼까 하고 지원을 했는데 덜컥 합격이 되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은 1, 2차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실무진인 팀장님 면접을 보고 바로 사장님 면접을 봤다. 실무진 면접은 잘 본 것 같은데 사장님 면접에서 학점이 낮다고 지적을 많이 받았다. 면접을 마무리할 때쯤 궁금한 것은 없는지 질문하셨다. 내가 목표로 했던 대기업이 아니어서였는지, 아니면 학점이 낮다고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아주 당돌한 질문을 했다.
"저는 제 인생에서 첫 회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첫 회사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저는 100%의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근데 사장님은 전체 직원이 50명이시니 50명 중의 1명을 뽑는 결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확률로 보면 2% 정도의 결정이네요. 제가 이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사장님은 내 질문을 들으시더니 껄껄 웃으시더니 좋은 질문이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다.
"우리 회사는 아직 규모가 작지만 그만큼 기회가 많습니다. 신입 사원이라도 빠르게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선임자들보다 앞에서 달릴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성과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합니다."
사장님의 답변을 듣고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최종 합격을 하였고 그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아직 회사에 대한 확신은 없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며 첫 출근을 했다. 아직 남아있는 대기업 공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출근을 하면서 취준을 병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근하기 시작한 회사에서 나는 12년 간 근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