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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러너 Dec 03. 2024

나는 머리가 나쁘다


나쁘다  


1.(머리가) 영리하지 못하거나 둔하다.
 예: 나는 머리가 나빠서 계산이 느리다.

2.이기적이거나 옳지 못하다.
예: 그는 이익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나쁜 사람이다.


나는 머리가 나쁘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지적 능력의 부족함, 둘째, 도덕적 결함이다. 지난 면접에서의 실패가 단순히 첫 번째 문제였다면, 오늘의 나는 두 가지 오류를 동시에 범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단지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 목적도 없고, 일을 핑계로 나온 것도 아니다. 커피 한 잔을 핑계 삼아 문을 열고 바깥으로 발을 내딛었다. 햇살은 나를 향해 쏟아졌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어색했다. 한때는 일상처럼 느껴졌을 공기가 낯설었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어딘가 이질적으로 들렸다.


그럼에도 커피가 좋아, 커피 한 잔을 위해 나는 나왔다. 카페 안에 앉아 따뜻한 잔을 손에 쥐고 있자니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 향이 코끝을 스치고,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내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넓어진 공간이 영원할 리 없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며 지도 앱을 켰다. 내게 익숙한 안락함과 한 발짝 벗어나려는 불안감 사이에서, 그렇게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오늘 다녀온 카페는 내가 걸어서 가는 거리 6분 그리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한 약간의 여유시간 2분을 남겨둔 시점에 나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지도 앱을 열었을 떄 이미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때,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별 관심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학생”


여기서 학생이 나를 뜻하는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옆을 돌아보니 버스 기사 아저씨는 나를 보고서 말을 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밖에 없으니. 나를 향한 말이었다.


“저기 아저씨한테 ~~역 알려드릴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왜 하필 나야. 귀찮은 마음이 올라왔다. 솔직히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세상은 여전히 낯설었고, 나는 집이 훨씬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 역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나 역시 앱을 켜서 확인해야 했기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도앱을 보니. 같은 이름의 정류장에서 해당 역으로 가는 두 버스노선이 있었다. 나는 대충 버스 번호를 말하고 올라 탔다. 하지만 내가 버스를 올라타려는 순간. 내가 말했던 버스가 건너편 정류장에서 이동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급히 돌아서 “저 건너편에서 타시면 되요!”라고 말한 뒤, 정작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분만 사용해서 그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무사히 버스에 타는 것을 확인한 뒤, 내가 다음 버스를 타도 괜찮지 않았을까? 집에 가봤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후회를 안고 다시 지도 앱을 켜 보았다. 알고보니 이동할 필요 없이 서있던 정류장에서 해당 역으로 가는 버스가 4대나 있었다. 6정류장 정도면 걸어가기에는 힘들지만 차로는 오래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나는 5분도 걸리지 않고, 두 가지의 나쁨을 실천했다.


첫 번째, 무관심에서 비롯된 둔함

나는 할아버지의 요청을 받았을 때, 도움을 요청한 이유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앱을 확인해 두 개의 버스 정보를 알게 되었지만,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대충 설명하고 떠나려 했다. 이는 내 상황을 우선시하다 보니 생긴 판단력 부족이었다.


두 번째, 이기심에서 비롯된 무책임함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버스를 탔다. 내가 알려준 정보가 제대로 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할아버지를 두고 떠난 건 분명한 이기적 행동이었다. 내가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도움을 드렸다면, 불필요한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히키코모리로 살면서 나쁜 머리로 많은 것을 놓쳐왔고, 나쁜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외면했다. 편의점 알바 하나 구하지 못하는 무능함,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10분도 투자하지 않는 이기심. 오늘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드러난 날이었다.


나는 참 처절하게 나쁜 놈이다. 세상 속에서 누군가를 돕기는커녕, 자신조차 변변히 챙기지 못하면서도 뻔뻔하게 내 시간만을 아낀다. 머리는 나쁘고 마음은 더 나쁘니, 이보다 더한 결말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자책만 하면서 돌아가지 않는다. 익숙한 어둠 속에서, 나쁜 놈은 여전히 나쁜 머리로 나쁜 마음을 반추하며 어딘가 무너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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