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존경하는 인물'을 써 오라고 하면 거창한 사람을 들이밀어야 할 것 같았다. 나라 하나 정도는 세워야 할 것 같고,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을 때 반대쪽 신발까지 두고 와야 할 것 같고, 혁명가로 이름을 떨치다가 총살을 당해야만 할 것 같았다. 가만보면 누가 누가 대단한 사람 찾아냈나 시합 같다. 사실 따져 보면 존경하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베낀 자료조사를 이리저리 조합해서 요약했을 뿐이었다. 정말로 그들의 삶에 대한 감상을 묻는다면 '아, 참 대단한 삶이네, 난 저렇게는 못 살아' 이 정도다. 존경심을 학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억지로 교육받아서 존경을 해요? 나는 북한에서 살았다면 총살감이다.
“작가님, 홍대.. 가깝죠?”
절친한 피디가 새벽 2시에 취해서 전화가 왔다. 나와 달라는 얘기다. 고민도 안하고 주소를 보내달라고 대답했다.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탔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밤이었다.
“20분 걸리니까 소주 딱 두 잔만 먹으면서 기다려요.”
“도착하면 다 취하겠네.”
비도 오고 캄캄했지만 홍대는 아직 숨이 죽지 않은 모습이었다. 창밖으로 아는 뒤통수가 보였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하고 있었는데, 일적으로 고민이 생겨 나를 불렀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무조건 달려가 주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좋았다. 그 시간에 나를 불러준 게 오히려 고마웠다. 보통은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고 싶어도, 그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도, 막상 연락을 하려면 몇 겹의 걱정 레이어가 쌓여서 전화를 주저하게 되기 마련인데 오늘의 이 연락 한 통으로 서로가 서로의 핫라인이 된 것만 같았다. 좋은 동료가 생겼다는 건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되니 좋은 친구까지도 된 것 같다. 그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작가님은, 내가 정말로 존경하는 작가님이고 내가 나중에 입봉할 때 많이 도와주실 분이야. 정말 훌륭하신 작가님이야.”
순간 꼼짝도 못했다. 존경한다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값진 건지 알기 때문이었다. 부담감보다 기쁨이 더 컸다. 이 기분 좋은 소개에 내가 근사한 답장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야말로 피디님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같이 좋은 프로그램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날 우리는 아침 8시까지 감자탕을 먹다가 헤어졌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비를 맞기도 하고 제작자로서 큰 꿈들을 얘기하기도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잘 맞고 착한 우리들이라면 정말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존경심에 깊이와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로 거저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점점 체감한다. 살면서 ‘존경한다’는 말은 딱 세 번 들어봤다. 처음은 20대 초반 남자친구로부터였다. ‘나는 너를 존경해.’ 그 말이 그렇게 좋고 벅찰 수가 없었다. 흔한 사랑고백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한 마디가 나를 꽤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끔 만들었다. 그 친구와는 적당한 시기에 헤어졌지만 그 후로도 언젠가 서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길 간절히 바라게 됐다.
그리고 몇 달 전, 같은 팀 후배 작가에게서 생일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잠깐을 못 참고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편지를 열었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후배는 ‘살면서 딱히 인생을 계획하고 산 적이 없는 성격인데, 처음으로 언니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면서 존경한다는 말을 두 장에 걸쳐 꾹꾹 눌러써주었다. ‘존경해요’ 그 네 글자가 참 뿌듯했다. 나 역시 능력 있고 성격 좋은 선배 언니들을 보고 꿈을 키운 적이 있었는데, 연차가 오르면서 후배 작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 보니 그만큼 어깨가 참 무겁게 느껴진다. 나도 누군가에겐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모습으로 보인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 날은 정말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리스펙~”
[리] [스] [펙] [트]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자막이나 리액션을 통해서 캐주얼하게 ‘존경’을 접할 수 있다. 누군가를 높이 평가하거나, 그의 삶에 존경을 표하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진 것 같다. 그렇다고 존경이 쉬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 같다. 나 역시 동료들과 후배들을 많이 존경한다. 그리고 아끼지 않고 칭찬해 준다. 그런 말들이 우리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기폭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신나게 지휘하듯 졸고 있는 피디의 정수리에 건배를 짠, 해 가며 그런 말을 했다. “피디님의 이런 기대와 응원이 저를 더 좋은 작가가 되고 싶게 해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위해, 더 재미있고 따뜻한 시선을 키우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노력해 볼 생각이다. 언젠가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만끽할 그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