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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May 05. 2023

15일은 이휘 15일은 조휘


 "조휘 이리 와 보거라~"


 명절이면 차례상 총 사령관 '커맨더 조(Commander CHO)'로 활약하는 외할아버지가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 첫 번째 윤리강령이 있었다. 이 집에 오는 사람들은 사위와 며느리들을 제외하고 모두 '조 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사촌동생들은 모두 깽이 때부터 세뇌당하듯 철저히 교육받았다. 그 첫 번째 타자가 나였다. 조휘는 누구 손주? 할아버지 손주요. 옳지. 그러니까 학교에서도 15일은 이휘 15일은 조휘로 살아라. 네. 나는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그 때마다 네, 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마치 사위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이휘 이윤환 정웅재 정지욱을 조휘 조윤환 조웅재 조지욱으로 성을 붙여 부르셨다. 우리들은 아무도 반문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참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 같았다. 우리는 할아버지 손주니까.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며칠 정도는 외할머니 성씨를 따라 안휘 안윤환 안웅재 안지욱으로도 좀 살아볼걸 그랬다.) 나중에 다 커서 방송작가가 되었을 때도 방송국에 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이름을 부르냐 하시면서, 스크롤에 이름이 흘러갈 때에도 반드시 '조휘'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때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만) 했다. 그럼 할아버지는 끄덕 끄덕 하고 넘어가주셨다.


 마치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처럼 어렸을 때 외갓집에서 자란 나는 할아버지와 꽤 친했다. 가장 케미가 좋았던 건 내가 6살때였던 것 같다. 등이 가렵다고 흰색 소데나시를 벌렁 뒤집어 까고 계시면 고사리손으로 야금야금 긁어드리고 어딘가 쿡쿡 쑤신다 하시면 맨소래담 향이 나는 어깨를 조물조물 안마해 드렸다. 특히 할아버지 등에는 꽤 큰 점이 있었는데 거길 피해서 긁는 재미가 쏠쏠했다. 외출하고 돌아오시면 꼭 양말은 내가 벗겨드려야 했는데, 그게 난이도가 가장 높았다. 아무리 잡아끌어도 양말이 벗겨지지 않고 엿가락처럼 죽죽 늘어나기만 해서, 요령 없는 줄다리기를 하다가 팽 하고 뒤로 나동그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힘조절이 생명이었다. 냄새가 난 적도 지저분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양말과의 팽팽한 기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칭찬과 뿌듯함에 우쭐해졌다. 돌아보면 재미는 나만 본 것 같다. 내가 긁어드리고 나면 꼭 효자손으로 마무리를 하고, 안마를 해 드려도 쑤신다고 말씀하셨던 걸 보면.


 할아버지의 방은 신기한 것들이 많았는데 수지침 책도 있고 목탁, 부처님 불상, 강아지 장식품,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돌도 있었다. 바둑판 위에 놓인 금색 테두리의 안경을 쓰고 목탁을 치면 고요한 집이 똑똑 울리는 게 재미있었다. 왠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걸 만져보는 것 같아서 그게 참 행복했다. 장롱 옆에는 행거가 있었는데, 걸려 있는 점퍼들 사이에 숨어서 혼자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스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들보다 '커맨더 조'의 한결같은 레퍼토리들이 참 좋았다. 할아버지가 죽으면 어디에다가 전화해야 되는지 알아? 번호 알려줄까? 1000-8095. 천국에 8095번으로 전화하면 돼. (전화번호의 '국번'을 활용한 유머다. 8095는 할아버지 집 전화번호의 뒷자리다.) 아유유, 휘야. 등이 너무 쑤시는데 벌레 들어있는가 좀 봐라. 나중에 할아버지 죽으면 무덤을 뒤져서 할아버지 등을 꼭 파 봐. 나쁜 벌레들이 나오면 이놈으 벌레시키들! 하고 콱 밟아 죽여라. 할아버지 죽으면 어디에 묻히는지 알지? 국립현충원으로 간다. 네. 네. 나는 안마를 할 때마다 이 명령들을 빠짐없이 하달받아야 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표현은 커멘더 조의 신념 같았다. 통신보안! 수신양호! 긴장이 빡 들어간 나의 심심한 대답들도 변주가 생겨 나중에는 '할아버지, 그러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죠'라고 여유도 부리게 됐다.


 그렇게 당신의 죽음에 대한 갖가지 대비책들을 나에게 늘어놓으시던 때부터 30년이 흘렀다. 그동안에 나는 자라고 자라서 서른일곱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올해로 아흔이 되셨다. 그 사이에 할아버지의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명절 총 사령관이라는 관직도 내려놓고 차례를 안 지내기 시작하셨고, 부처님 말씀을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교회를 다니며 성경 필사를 하시기도 했다. 매해 연초가 되면 가족들의 신년운세를 손수 점쳐서 긴 화선지에 밤새 적어주셨었는데, 건강이 나빠지신 후부터는 받아볼 수 없게 됐다. 스무살이 지나야 그 운세를 받을 수가 있어서 손주들이 다들 성년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우리 식구들만의 전통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뵐 때마다 점점 작고 야위어가시더니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계신지 오래되었다. 엄살과 어리광도 전보다 더 심해지셨다고 들었다. 이것 또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일 거다. 요즘은 그 농담이 아주 많이 그립다. 매번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씀하시던 그 귀여운 당부들이. 다시 만나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할아버지 손주 조휘는 커맨더 조의 명령들을 하나도 안 까먹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보라색 츄리닝을 입은 뾰루퉁 꼬마와 단정한 셔츠 차림의 커맨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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