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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Jun 06. 2023

티끌 하나 없는 마음


 그 영상을 참 좋아한다. 


 <물이 가득찬 투명한 물컵을 마음이라고 했을 때, 더러운 흙이 푹 들어갔다고 해 보자. 이것들은 나쁜 기억이야. 나쁜 기억들을 없애려고 계속 집착하고 꺼내려고 노력해도 물컵에 담긴 물은 좀처럼 깨끗해지지 않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을 팍팍 부으며) 더 좋은 기억들을 부어주는 거야. 그럼 물컵 안의 물이 막 흘러 넘쳐. 그러면서 안에 들어있던 흙도 함께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오게 돼. 물은 점점 자연스럽게 깨끗해져.>


작년, 덕수궁 배롱나무


 덕수궁에 있는 배롱나무를 정말 좋아해서 꽃이 피면 꼭 보러 간다. 꽃은 빛깔이 곱고 어딘가 부끄러운 색인데 나무 줄기는 생각보다 튼튼하고 과묵하다. 구불구불 비틀거리며 자라난 것 같아도 가까이에서 보면 우직하고 단단한 모습이 커다랗고 웅장한 기지개 같아서 좋다. 오죽헌의 배롱나무, 덕수궁의 배롱나무가 나의 최애 나무들이다. 



 사무치는 일이 생기면 조계사를 간다. 향을 피울 때의 경건함도 좋고, 이따만한 부처님이랑 눈싸움을 하고 돌아오면 내가 조금 더 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마다 찾아가면 조금 적막이 되어 돌아온다. 


 작년 봄, 결혼생활로 너무나 괴로웠을 때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서 조계사를 갔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날씨가 좋아 들렀는데 그 날과 꼭 같은 풍경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같은 플라스틱 의자를 두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날과 전혀 다른 마음의 내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평온하게 앉아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안도감이 차올랐다. 눈을 감고 합장을 하는데 마음이 아주 깨끗한 물처럼 맑고 평화로웠다. 티끌 하나 없는 평안함. 하얀 대접에 정갈히 담긴 물 한그릇 같은 마음. 몇 년 동안 불확실한 감정들 사이에서 스스로 책임을 짊어지고 다짐하는 기도들을 해 왔는데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고 놀라웠다. 여튼 푹 안심이 된다. 하반기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탑을 세 번 돌고 집에 돌아왔다.   



 좋은 걸 더 많이 담아. 그 의미가 참 좋다. 왜 이런 이물질이 내 마음에 들어왔을까, 하고 한탄하는 데에 시간을 뺏기는 것보다 그 시간을 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행복으로 채우는 일. 그걸 참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푹 놓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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