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문 100답 ™
고등학교 때 한창 100문 100답이 유행했다. 정확히는 버디버디에서 싸이월드, 네이트온으로 넘어가던 그 과도기의 시절. 학교 동아리마다 다음 카페가 있었고 언제나 백문백답 전용 게시판이 따로 있었다. 누군가 질문들을 긁어 올리면 각자 질문에 대한 대답을 채워 올리곤 했다. 그게 '나'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였고 일종의 셀프 인터뷰였다. 좋아하는 애가 올린 백문백답을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얘 이상형은 이렇구나. 잠버릇은 이렇구나. 킬킬. 우리는 서로 오글거리는 댓글도 달아주고 게시글 조회수도 올려줘가며 그렇게 놀았다. 그 구구절절한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금은 줄임말처럼 농축되어 해시태그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 #ENFJ #봄날의햇살.
직업상 인터뷰 질문지를 꽤 많이 써 왔는데 그 때마다 되도록이면 상대가 가장 편하게 대답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해서 준비하는 편이다. 처음 만나는 출연자와 미팅을 할 때에는 사전에 그 사람에 대해 최대한 많이 공부한다. 그래서 낯을 가리거나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돌아가는 방법도 쓰고, 스트레이트한 화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직진의 문장들을 꽂아준다. 오늘 촬영 때 있었던 사건이나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 솔직한 마음을 들어야 하면 그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여 공감해주어야 살아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질문은 쉽게, 어떤 질문은 무례하지 않게 건네야 한다. 출연자들 가운데 대부분의 예능 박사님들은 제작진이 원하는 이야기들을 즉각적으로 명쾌하게 해 주지만 일반인이나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결국, 모든 인터뷰는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만 끝이 끝난다. 방송에 나가는 그 짧은 몇 마디를 따 내기 위해 모두가 일심동체로 으샤으샤 하는 거다.
그러나 백문백답에는 그런 자비가 없다. 모두가 공통된 질문을 받고 서로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보는 게 관전포인트다. 그래서인지 뻔하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항목들이 참 많았다. 질문은 세상 간단한데 답을 하려고 하면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거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뭘 좋아하지?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뭐라고 적어야 있어보이지? 고민이 끝이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친구가 <아마겟돈>이라고 적었던 게 기억난다.) 100문 100답 자체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모티콘과 각종 기호를 정성스럽게 남발ㅎr는 人ㅏ람도 있었ㄷF。나는 무조건 맞춤법을 정확히 맞춰 썼고 즐겨 쓴 표정은 이게 유일했다. -_-
그래도 백문백답이 좋았던 이유는 내 마음대로 적어낼 수 있는 유일한 서술형 문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야 너 주관식 마지막 답 뭐라고 적었어? 라고 떨면서 묻지 않아도 되니까. 나름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쉽다 쉬워! 다음 질문은 뭐야! 일필휘지로 적어내려간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덜컥 속도제한이 걸리는 난제가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누가 문제 냈냐 이거. 꽤 오래 걸린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일까.
사실 하나 하나 나열해 보면 손으로 세기도 어렵다. 일적으로 성취감을 느낄 때. 회의 시간에 던진 농담에 누군가 눈물을 흘리도록 웃을 때. 오랜만에 본가에 갔는데 엄마가 만든 오징어제육볶음이 너무 맛있어서 냄새만 맡아도 침이 흐를 때. 그걸 밥에 비벼먹다가 목이 말라서 동생한테 물을 떠 오라고 시킬 때. 근데 고분고분 딱 맞는 온도로 물을 떠 올 때. 나도 오징어제육볶음을 한 번 만들어봤는데 엄마가 만든 그 맛이 얼추 날 때. 택시에 탔는데 쾌적하고 시원할 때. 출근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마침 1층에 있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줄 때. 그리고 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플라스틱 병을 분리수거 하기 위해 겉면 포장 비닐을 점선에 맞게 한 번에 깔 때. 아침에 이부자리를 정리하는에 이불이 한 방에 팡팡하게 펴질 때. (여기까지 적고 생각해 보니 돈과 관련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매년 5월 종소세 신고할 때에도 세무사에게 낼 수수료가 많이 나오면 그만큼 열심히 산 것 같아서 보람차서 좋다.)
이 쯤 되니 지금 이 순간 '행복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로 고정이다. 그러나 내가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면 난이도는 웬만한 논술시험 수준이 된다. 결국 나는 어떨 때 가장 행복할까. 그냥 이렇게 마냥 소소한 걸로 행복해하는 쿼카 한 마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까.
다행히 최근에 이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내렸다. 나는 모두가 안전할 때, 혹은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참 행복하다. 안심이 된다는 말의 소중함을 안다. 어느 누구도 아프거나 절망적이지 않고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은 상태. 그 평범함과 안정감이 얼마나 반가운 것인지를 안다. 그래서 그 순간이 참 감사하다. 오죽하면 매일 매일 이 소소한 행복을 액자에 걸어 전시하고 싶을 정도다. 동네 사람들! 여기 보세요! 오늘은 제가 이래서 행복했습니다! 나는 최대한 행복할 때 행복을 만끽해야 한다는 주의다. 행복전도사가 따로 없다. 행복유세를 다니라고 하면 전국구로 다니고 싶다. 시켜주실래요?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조만간 그 시절 백문백답을 한 번 해 봐야겠다. 매 번 질문은 같은데 할 때마다 다른 대답이 나왔던 그 묘한 문항들에 만 35세의 내가 어떤 답을 적어내려갈지 궁금하다.
[작가의 말]
오늘은 오랜만에 낮잠을 시원하게 자서 행복했습니다. (새벽 4시에 퇴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