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휘 Feb 01. 2024

방에 수류탄이 있습니다

한밤중에 폭발한 ‘그것’은 무엇일까

 소식좌에게 1인분의 정량이란 가혹하고도 억울하다. 위장이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찮고 알량한 위 용량을 가졌음에도 꼴에 또 ‘맛의 조화’라는 건 중요시해서 쩝쩝박사처럼 메인 메뉴 두 개에 사이드, 음료까지 야무지게 주문하지만, 남들이 한창 음식을 즐길 때 가장 먼저 패배감을 느끼며 스윽 숟가락을 내려놓는, 배달음식 한 번 시키면 은근 두 끼 정도는 해결이 가능한 저용량 인간들이다. 소식좌가 존재하는 테이블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아니, 뭐 먹었다고 배불러?” “이거 내가 다 먹었잖아.” “그러지 말고 한 입만 더 먹어봐.” “아냐. 난 이미 끝났어.” YOU LOSE.


 웬만한 음료를 끝까지 마시지 못하고 남기고 마는 나는 커피를 시킬 때 유독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사무실에서 한 잔씩 때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유혹이란 거부하기엔 너무나 고소하고 상쾌해서 언제나 홀린 듯이 주문하지만, 결국 다 못 먹고 콸콸 버리게 되는 게 영 아깝고 속상한 것이다. 그럴 때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기후를 보도하는 뉴스 기사에 달린 ‘지구가 슬슬 끝내려고 하나 봐요’라는 댓글이 말풍선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게 한다. 고작 몇 모금을 위해 버려지는 음료, 빨대, 플라스틱 컵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 반면에 억울한 마음도 존재한다. 나는 분명 커피 한 잔에서 1,700원 어치 정도만 마시는 것 같은데 세상은 나에게서 4,500원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격에 카페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컵, 빨대, 음료, 서비스, 공간, 시간의 가치가 모두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제 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작은 캔으로 나오는 음료가 좋고,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선호한다. 집에 있을 땐 뭐든 컵에 조금씩 따라 마시는 습관이 있고, 남은 건 냉장고에 다시 보관한다. 그 와중에도 가장 본연의 상태 그대로 보관을 원하기 때문에 뚜껑을 잠글 때에는 정말 시계방향으로 온 우주의 힘을 쏟아 붓는다. 정작 뚜껑을 열 때는 힘이 없어서 늘 도구를 사용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부탁해서 여는데, 닫을 때만큼은 마치 닉네임 곽두팔인 것이다. 


 그래서 뭐든 잘 남기고 잘 보관하는 곽두팔의 가방에는 언제나 다 못 먹고 남은 초콜릿, 탄산수 같은 것들이 과제처럼 남아 있곤 한다. 선택을 할 수 있을 땐 최소한의 양만 골라 먹는다. 김밥을 주문할 땐 ‘밥을 적게 넣어주세요’라고 하든지, 적은 용량을 주문한다든지, 죽을 시킬 땐 3개로 소분하기를 선택한다. (물론 아파도 입맛이 좋을 땐 3소분 따위를 선택해도 다 먹어치우기도 한다.) 냉동식품과 냉장식품은 구매할 때 유통기한을 꼭 확인하는데, 소비기한까지 고려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저장해두었다가 양심상 나에게 먹이기가 눈치 보일 지경까지 날짜가 지나면 미련 없이 버리곤 한다. 


 남기는 것이 일상이 되면 뭘 먹을 때마다 굳이 ‘억지로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Free 사이즈의 티셔츠가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듯 나는 그저 공장에서 찍어낸 1인분의 몫을 다 먹어내지 못하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정신 승리다. 음식을 버린다는 죄책감보다 어떻게 잘 남기고 관리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했을 때, 그래서 딱히 별 탈 없이 살아간다고 느꼈을 때, 그래서 방심했을 때, 그 때 변수는 찾아왔다. 정말 느닷없이. 


 그냥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어느 날이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내 방 어딘가에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뻥!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익!!


 간밤에 도대체 이렇게 위협적인 소리가 어디서 날 수 있단 말인가. 소리는 꽤 길게 났고, 나는 제대로 된 상황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 왠지 흉악할 것만 같은 현실. 대단한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은 후 불을 켜고 둘러본 방안은 가관이었다. 


 그야말로 장엄한 광경. 


 서초구 미술관에서 ‘현대 예술의 굉음’이라는 제목을 달아 전시해야 마땅한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성분이 불분명한 노란 액체가 천장을 수놓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내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때. 정전됐다가 전력이 복구되었을 때의 가전제품들처럼 나의 모든 기억 뉴런이 동시에 활성화되었다. 몇 주 전,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 신나게 술을 마시고 편의점에 따라갔다가 술 좀 깨라고 건네받은 숙취해소제, 배부른 소식좌가 겨우 입에 갖다 댔던 ‘레디큐’,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잠근 뚜껑, 그냥 잠근 것도 아니고 내 안의 ‘곽두팔’이 아주 단단하게 잠근 뚜껑, 가방에 넣은 채 잊어버린 지난 세월, 그러니까 꽤 많이 지난 세월, 화장대 뒤쪽에 팽개쳐놓은 문제의 핸드백, 따뜻한 방, 내 방 한 켠을 차지한 행거, 행거에 걸린 수많은 옷가지들, 좋아하는 니트 스웨터, 그리고 거기에 뚝뚝 묻은 부패한 숙취해소제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 나. 이 모든 장면들이 ‘저기요 이게 바로 주마등이라는 건데요’ 하면서 지나갔다. 


 그러니까 한 차례 개봉된, 그리고 한 입 마셔버린 후에 단단히 잠긴 부패한 숙취해소제의 위력이 마치 폭탄처럼 터지고 만 것이다.


 ‘아, 레디큐가 터진 거야? 어이가 없네.’ 


 하필 내가 방에 혼자 있을 때, 캄캄한 밤에, 그렇게 아름답게 터질 건 또 무슨 일인가. 그것은 분분한 낙화, 동막골의 팝콘 다음으로 찬란한 추락이었을 것이다. 나는 실험에 실패한 미친 과학자처럼 태연하게 굴다가 이내 ‘천장은 절대 닦이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잠시 절망했다. 성의 없이 묵념해 온 학창시절처럼 레디큐를 사준 친구를 잠시 원망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니까 어차피 다 마시지도 못하고, 내가 마신다고도 안 했던 숙취해소제를 왜 사 줘서, 그걸 또 왜 하필 내 안의 곽두팔이 제대로 꽉 밀봉을 해서 이 사고가 났냐는 말이다. 


 레디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것들은 천장, 니트 뿐 아니라 화장대 곳곳, 화장대에 올려둔 모든 물건의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었다. 루미놀 반응 같은 게 가능했다면 내 방은 온통 반짝반짝 야광별처럼 빛났을 것이다. 나는 모든 물건을 꺼내 소독 수준으로 집요하게 닦고 또 닦았다. 법의학자가 된 기분으로. 


 폭발 사건 이후로 오랜 시간을 투자해 수습과 복구는 마쳤지만 끝끝내 천장의 노란 자국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대신 음식을 제 때 버리지 않으면 제한시간이 흐르고 결국 수류탄처럼 터지고 말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레디큐가 레디밤(Bomb)이 되어 터지기 직전까지 얼마나 그 안에서 부글부글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이제 음식에 입을 갖다 대는 순간, 소식좌는 <가족오락관>에서 폭탄을 주고받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게 된다. 머릿속에 유통기한 스톱워치가 나를 쫄래쫄래 따라다닌다. 



 식품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특히 개봉 후에는 균의 유입이나 변질이 훨씬 쉬우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알면서도 레디밤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물론, 의도하지 않고 바란 적도 없는 ‘봉변’이었다. 



  유통기한을 아예 초인적인 힘으로 없애버리는 방법이 하나 있다. 음식에 허경영의 이름을 쓰거나 사진을 붙이는 것이다. 허경영의 하늘궁에서는 일반 우유에 허경영의 이름을 쓰거나 허경영 사진을 붙여 놓으면 우유가 절대 상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걸 ‘불로유’라고 하는데, 누구라도 마시면 늙지 않는 세포로 바뀌며 각종 질병이 낫고 암도 완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종자들이 불로유를 잘못 먹고 사망한 사례가 이미 방송에 많이 소개되었고, 심지어 신도들이 몇 백, 몇 천 병, 몇 억 원어치씩 사서 부패한 우유들의 규모가 상당해서 이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오염도 무지막지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로유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나온 수많은 ‘상한 우유’들이 걱정돼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지경이다. 불로유도 결국 불로밤(Bomb)이 되면 어떡하나 싶다. 

(*Wavve 오리지널 <악인 취재기 : 사기공화국> 2화 참고)



 오늘도 소식좌는 냉장고를 열고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우유를 보며 여전히 '먹어도 될까'를 고민한다. 정부는 2023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과 혼동하고, 그래서 먹어도 되는 음식들까지 쉽게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작년 한 해 동안 계도기간을 거치고 올해부터는 본격 시행된다. 그래서 2024년 1월 1일 이후에 제조되거나 수입된 제품에는 반드시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낙농업계는 소비자의 보관 환경에 따라 제품이 변질될 가능이 커서 반발이 있었고, 준비기간을 충분히 거쳐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소식좌의 소비기한이, 수류탄의 폭발 유예가 조금씩 더 길어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별한 음식들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각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음식을 조금씩 잘 남기고 잘 즐기는 법을 터득해 가야겠다. 소식좌의 카운트다운은 계속된다. 




이전 02화 39년생 명례 씨의 챔피언 벨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