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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Jan 18. 2024

대머리는 수영모를 쓰지 않아도 된다

 탈모 때문에 머리를 벅벅 밀고 다니는 친구와 걸을 때면 왠지 신이 난다. 내가 더 어려보일 것만 같고, 자신 있게 민머리를 드러내는 용감한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특별히 하는 것 없이 걸어만 다녀도 너무나 독특하고 멋진 투샷이 완성되는 것 같아서 이거야말로 진정한 힙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주책맞게 설레는 것이다.


 나에겐 오래된 탈모인 친구 K가 있다. K는 20대 때부터 차츰 머리카락을 잃기 시작해서, 해가 갈수록 점점 황량하고 어딘가 허전한 모습을 보이다가, 몇 년 전 열렬히 좋아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부터는 아예 민머리 스타일을 택했다. 스스로 차단한 모발의 생장. 나는 보자마자 잘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슬픈 일은 언제나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다. 두 달 전 쯤, 동네에 놀러온 K와 맛있는 고기집이나 가자고 골목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방어를 사 줄까, 삼겹살이나 먹을까, 그런 얘기를 하면서 양꼬치집 앞을 지날 때였다. 가게 문 앞에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남자 분과 딸로 보이는 어린 여자 꼬마 아이가 서 있었다. 평소에 꼬마들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이라 ‘안녕’이라고 인사하려는데 그 작은 친구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뭔가 부끄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말을 걸고 싶은 표정이었다. 나는 수줍은 인싸인가 싶어 “안녕!”이라고 크게 인사하고 지나쳤다. 사건은 우리가 열 걸음 정도 더 걸어갔을 때 발생했다. 통통한 꼬마가 우리의, 정확히는 K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대머리 빡빡이~ 대머리 빡빡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 받았다. 저렇게 당돌하고 큰 소리로 어른에게 대머리라고 놀릴 수 있는 대담함과 짓궂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며,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후로 들어본 적도 없는 ‘대머리 빡빡이~’의 저 반갑고도 정확한 음정과 박자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그 와중에 목청은 커서 골목이 쩌렁쩌렁 울린 것이 참 잔혹했다. 점잖고 위트 있는 성격의 K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저 꼬맹이랑 맞짱 떠야 될 것 같아.” “야 야 너가 참아.” 우리는 그렇게 멋지게 그 친구를 용서(?)했다. 꼬마가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놀리지 못한 건 아마 아빠가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성인 남성으로서 다른 것도 아니고 탈모로 상처 주는 건 선 넘는 일이라는 걸 그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날 집으로 가는 내내 K 앞에서 ‘대머리 빡빡이’를 불러 제꼈다. K는 그저 팡팡 웃었다.


 남자들에게 ‘탈모’란 나쁜 농담일까. 아니다. 사실 애초에 농담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탈모는 상속받기 싫은 두려운 유산이고, 언제 불쑥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이며, 불길하지만 은근 확률이 높은 경우의 수다. 가끔 이마가 넓은 남자친구들의 앞머리를 들춰서는 “좀 넓어진 거 아니야?”라고 놀려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정색했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자기야, 선 넘지 마.” “응, 미안.” “근데 좀 넓어진 것 같지 않아? 볼펜으로 표시해 놓을까?” 나는 언제나 꼭 한 술 더 떠야 직성이 풀린다.


 누군가에게는 콤플렉스고 자존감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정력이 좋다거나, 원시 시대 때부터 적에게 머리카락을 쥐어뜯기지 않고 생존하도록 진화한 것이라거나, 남성호르몬이 많아서 그런 거라는 포털 사이트 지식인들의 분석들에 기대어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다. 나는 대머리는 불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대머리가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즐거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대머리는 수영모를 쓰지 않아도 된다.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으니 화장실 하수구가 막힐 일도 없다. 드라이기도 고데기도 필요 없다. K가 대머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두고두고 회상할 에피소드도 없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멋진 멜로디를 다시 꺼내 흥얼거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대머리가 좋다. 길 가다가도 그들을 만나면 언제부터 빠졌을지, 어떤 형태로 빠졌을지, 머리는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빗는지가 궁금하다. 그렇게 대머리들은 나의 관심과 웃음을 가져간다.


 나는 인생도 그런 방식으로 살기로 했다. 예고가 없어 대비가 불가능한 위기와 고난이 닥쳐 올 때도, 그걸 건강하게 겪어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가며, 모든 걸 물리치고 난 뒤의 무용담을 얼마나 화려하게 꾸며 말할지를 기대하며 시트콤의 주인공처럼 살아내고 싶다.


 K에게도 과거에 탈모는 스트레스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혹시나 누군가 K에게 또 다른 희롱으로 상처를 준다면 나는 K 앞에서 더 큰 목소리로 ‘대머리 빡빡이~’를 불러 줄 것이다. 그리고 삼겹살에 소주를 사 줄 것이다.


 다음에 K를 만나면 꼭 그 양꼬치집을 찾아가서 기어코 서비스를 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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