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기억하지 못했네

눈이 내렸다고 한다.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했다.

by 또마스

나는 그날 눈이 내렸다는 것을 차마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한 무리는 좁은 입구에서 나오고, 다른 무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혼잡 속에서 그는 멈칫거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아마, 그의 기억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 무엇을 했다고 말할 때, 그것이 아니라고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려면 그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오래 된 기억은 냇가의 바위 같아서 어릴 적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보이던 것이 이제는 나 혼자 올라가서 서기도 어렵도록 작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나 모르는 사이에 다 쪼그라들고 사라진 시간의 부피, 기억의 체적.


잔잔하게 흘러가는 개울 위, 다리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던 것을 놀이 삼아서 하던 때가 있다. 나는 가만히 있고, 물이 흐르는 것인데 나는 자꾸 내가 흐르는 것 같아서 아무도 대꾸해주지 않는 다리 위에서 아직 저물기에는 좀 남았던 여름의 윤슬에 얼굴을 그을리며 중얼웅얼 노래하던 때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다리 위에도 멈추지 않고, 어떤 물결도 주목하지 않으며 산다. 종종 퍼렇게 깊은 바다나 모래 위 포말을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 나는 멀리에 있다. 그러니까, 무언가와 겹쳐진 내 삶을 잃고 산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가 싶다.

잠잠히, 아무 목적도 없이 세상에 습자지처럼 내 몸을 잠깐 겹쳐보는 날 언제일까.


눈이 내렸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마 눈이 내렸을 것이다. 내 머리에 쌓이기 전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눈이었을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듯, 먼 시간 이쪽에 있지만, 그때 잡지 못한 손을 꼭 잡아주리. 세상에 반짝이는 물비늘을 바라보리.


02/mayo/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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