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옷의 디테일

브룩스 브라더스 Brooks Brothers

by 또마스

옷 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폼 나는 옷을 입을 일은 많이 없으니 옷을 사는 일은 흔하지 않다. 게다가 옷을 잘 고르는 심미안도 없다. 그리고, 어찌 보면 '옷'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보다는 뭐든 '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그러니, 제대로 폼나는 옷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여기에 나와서 살면서 더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으니 어느날에는 너무 후줄그레하지 않을 날도 있어야겠기에 자켓 하나를 사자고 생각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계절마다 편하게 입을 자켓 하나씩은 장만해서 나이 들어 너무 궁하지 말자고, 옷을 사느라 혹은 옷을 사지 못해 궁하게 살지는 말자고 맘 먹었다. 그렇게 옷을 사는 날은 조금 더 있어야하는 먼 날의 일이겠다고 생각했는데, 올 가을부터 하자고 맘을 바꿨다.


사기로 한 옷은 브룩스브라더스Brooks Brothers . 하루키를 통해 알게 된 브랜드. 그러고보면 난 하루키에게 배운 것이 참 많다. 재즈는 그렇게 관심없어 많이 몰랐지만, 하루키에게서 알게 되어 꼬리를 문 비틀즈의 노래가 그렇고, 헤링본도 그에게서 배웠다. 브룩스브라더스는 하루키가 군조 신인상을 받을 때 장만했던 첫 양복이라고 했다. 양복을 잘 입지 않는 하루키였을텐데, 처음 사는 양복으로 롯데백화점 할인매장에서 사지 않고, 브룩스브라더스 매장에서 샀다는 것이 맘을 끌었다. 그리고,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도 하루키에게서 배웠다. 그렇게 배운 개츠비는 딱 한 번 읽었나? 두번 읽자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수십년이 지났다. (상룡이가 군대에 있을 때 구해달라고 해서 두권을 샀던 것을 나중까지 전하지 못했던 것까지만 기억난다.)


여튼, 다행이고 행복하게도 브룩스브라더스 할인매장이 국경 앞에 있어서 다녀왔다. 사실, 나는 거기에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좋다. 단정한 양복이, 화려하지 않지만 저절로 도드라지는 그 양복들이 많이도 아니고 치수별로 몇장씩, 색깔별로 몇장씩 걸려 있는 것은 참 기분 좋다. 그게 내것이 아니어도 그렇다.


이번에는 Cleanance sale 하는 파트에서 적당한 옷을 하나 골랐다. 44-regular. 푸른 빛이 많은 자켓.

그리고, 다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오랫동안 걸려있던 예쁜 국방색 점퍼를 봤다. 지난 시즌에도 있었는데, 다 나가고 한 장 남은 모양이다. 이리저리 매무새를 살피다가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작은 주머니가 나온다. 그 주머니에는 여분의 단추가 들어있다. 속에 있던 감탄이 입으로 나왔다.

'제길'

이렇게 세심할 일인가? 대단하게 화려하지 않지만, '그냥 넣었어' 정도의 느낌으로 거기에 있던 작은 주머니. 아주 어릴 때였고, 내가 이 점퍼를 갖게 되었다면, 나는 이 주머니에 반지를 넣어두었을까? 점퍼는 생긴 것만큼 비쌌고, 나는 이것보다 싸지만 비슷하게 생긴 - 하지만, 질은 좀 낮은 점퍼를 하나 가지고 있다. (Denim & Flowers였던가?) 그래서, 이 폼나는 점퍼는 패스. 그래도 또 기분은 좋아. 이런 세심함.


내가 돈을 들여 사지 않으니, 이것이 비싸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고, 나는 누구에게 얼마나 세심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런 세심함. 좋은 옷, 좋은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디테일이 참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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