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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브 MAROB Sep 21. 2020

맥주 먹다 말고 미래를 논하다

'1+1'가 아닌 '2'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연애는 각자 다른 두 사람이 무슨 이유에서든 서로에게 이끌려 구두 계약을 맺은 후 새로이 정립되는 관계인데, 첫 시작은 당연히 '1+1'이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상대가 이 관계를 어떻게 발견시키느냐에 따라, 혹은 각자가 관계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따라 '1+1'에서 시작한 이 관계는 몇 년이 지나도록 '1+1'로 남을 수도 있고 또는 '2'가 될 수 있다. '1+1'과 '2'가 옳고 그름,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당연히 아니다. 지극히 선호의 문제이자 관계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그 차이가 있 뿐이다.


관계가 행복하려면 당연히 내가 그리는 관계와 상대가 그리는 관계의 모습이 같아야 한다. 만약 나는 방점을 '1+1'에 찍고 있는데 상대는 '2'에 찍고 있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게 편할 수 없겠고 그 반대로 나는 우리의 관계가 이제 '2'가 되기를 원하는데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다면 그 관계 역시 불균형하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의 관계도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1+1'로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은 지켜주되, 둘이 함께 할 때는 (물론 그 사이 많은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지만 멀리서 본다면) 행복한, 그런 순탄하고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서른을 앞둔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 우리는 보통의 데이트를 하고 마무리로 집 근처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난 내 계획을 짜기 이전에 '우리의 계획'이 더 중요해졌어. 그냥 나 혼자라면 그냥 홀연히 대학원 가려고 준비를 하겠지. 근데 그럼 우리는? 난 '우리의 계획'이 있고 그 안에서 내 계획을 세우고 싶어."


'2'의 선포였다. 당시 서른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내가 곧 서른'이라는 사실에 적잖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서른'은 진짜 어른의 나이이자, 어디 가서 절대 '아, 아직 어리시네요!'라는 소리는 절대 못 들을 그런 나이였다. 삶에 있어서 '서른'이라는 나이가 큰 터닝 포인트같이 느껴지면서 이 '서른'을 지나면 새로운 시도도, 도전도 모두 무리일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달까. 그래서인지 그전에 '뭐라도 해야겠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외국 대학원, 이직, 시험 등등 모든 가능성을 오픈하고 마음 가는 대로 알아보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문득 '우리는 뭐가 달라지는 거지?', '내가 만약 해외에 가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연애는 다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기에 여러 가지 변수가 들어오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이, 회사에서의 직급, 적지 않은 연차, 시험 합격의 가능성, 2년(또는 그 이상)의 해외 체류, 뭐든 새로 준비하는데 투입될 시간과 돈 등 하나만 생각하자니 그 '하나'가 뭔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여러 개를 생각하니 모든 축들이 한 번에 실타래같이 돌돌 뒤엉키고 있었다.   


어차피 당장 답을 찾을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여러 가지 변수들 중 내가 가장 먼저 고려하고 싶은 변수는 바로 '우리의 미래'였다. 남자 친구가 그리는 '우리의 미래'가 궁금했다. 내가 그리는 '우리의 미래'와 같은 모습일까. 만약 남자 친구와 내가 그리는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나는 이 관계에 확신을 잃을 것이고 그럼 이 변수는 변수로써의 역할을 잃게 될 것이었다. 이 문제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냥 물 흐르듯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흘려보내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오랜 시간 맥주와 함께 그렇게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1+1'로 남을 것인지, '2'로 넘어갈 것인지, 서로의 생각과 계획을 얘기했고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인생의 지향점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원하는 관계의 모습에 점점 윤곽이 잡혀갔다. 이듬해 봄, 우리 인생의 새로운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던 동력이 그날 밤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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