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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브 MAROB Sep 24. 2020

타로 카드보다 정확한 연애의 '에너지 이론'

우린 닮아서 결혼했다.


결혼을 앞두고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결혼 사실을 알릴 때마다 십중팔구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떤 점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됐냐는 질문. 들을 때마다 딱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질문 중 한 개인데 상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면 그에 걸맞게 근사하고 낭만적인 답을 내줘야 할 것 같지만 막상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별 것 아닌 이유들이었다.


"글쎄. 그냥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는 것 같아."

"음...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서로가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잘 통하는 점이 많아."

"나랑 에너지 수준이 비슷한 것 같아."


에너지 수준이라 함은 나의 '에너지 이론'에 근거한 말로, 연애를 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나에게는 내 고유 에너지 레벨이 있는데, 100프로가 최고점을 의미할 때 나의 에너지는 약 65프로 정도다. 중간보다는 살짝 많지만 100점에서는 한참 부족한 수준이랄까. 내 에너지 이론은 '끌리고 자연스레 추구하는 일들이 외부 지향적인지, 내부(self) 지향적인지'와 같은 방향성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성장 지향력을 함께 의미하기 때문에 연애를 함에 있어 나와 맞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이 되어 주곤 했다. 저걸 어떻게 알아, 할 수 있지만 실제 사례에 대입해 보면 간단하다. 나보다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은 주로 '다수의 모르는 사람과 네트 워킹하는 것을 즐긴다.', '친구가 많아 일주일에 4~5번은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 '쉬는 날이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액티브 한 활동을 즐겨야 한다.'로 정리된다. 반대로 나보다 에너지가 적은 사람들이라 하면 '주말에는 무조건 집콕, 방콕을 실천한다.', '외식은 싫다. 배달시키자.', '새로 배우는 것도 귀찮고, 머리 쓰는 일도 싫다.' 정도.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에너지의 높낮이가 아니었다. 이 안에 '내'가 기준이 되어 '나보다' 넘치지도, '나보다' 못 미치지도 않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할 때면 나와 에너지가 맞는 사람인지를 꼭 체크했다. 에너지가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내가 고작 1/n을 차지하는 느낌이라 싫었고, 에너지가 낮은 사람은 함께 있을 때면 축- 쳐진 상대방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녹녹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온 나에게도 적지 않은 곤욕이었고, 그와 함께 있는 나조차도 의욕상실에 만성피로가 될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나와 맞는 에너지 수준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했다. 따라서 당시 나의 대답을 듣는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랑 에너지 수준이 비슷한 것 같아."는 내가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칭찬의 말인 셈이었다.


나와 에너지가 비슷했던 당시 내 남자 친구는 나와 선호도 비슷했는데 예를 들어 우리 둘 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처음 남자 친구를 만난 날, 다시 말해 소개팅 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맥주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어쩌다 첫 만남에 결혼을 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세계 맥주 전용 냉장고'를 만드는 것이 공통의 로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냉장고를 열었을 때 일렬로 쫙- 진열되어 있는 맥주 캔들을 무심히 보며 "오늘은 어느 나라 맥주를 마셔볼까? 체코 어때?" "아냐, 오늘은 뭔가 아이리쉬 맥주가 당겨"라고 말하는 삶. 서로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느낌 순간이었다.



'먹고 마시는 것' 외에도 수많은 공통점들을 발견했다. 도시보다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스타일, 친구들을 만났을 때 하게 되는 소심한 생각들,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프로 기념러 성향, 등등. 마치 연애를 시작할 무렵 다들 한번쯤 '이 사람... 내 운명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나, 둘, 여러 공통점들은 쌓이고 쌓여, 서로가 서로에게 '내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거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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