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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브 MAROB May 29. 2021

결혼할 때 우리가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

핑크빛 연애의 터널을 지나 서로를 새로 발견한 순간


연애 기간 4년은 사실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흔히 사계절은 겪어 보고 나서 결혼을 해야 해야 실패가 없다고 하니 한 사람을 알기에 최소 1년은 필요하다는 뜻인데 나의 연애는 4년간 지속되어 왔으니 '이 사람 알만큼 다 아네.'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사람을 다 안다는 것,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한편 꼭 그 사람을 속속들이 다 알아야지만 결혼을 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연애 동안 우리는 서로 공통점이 참 많았다. 어느 연인인들이 안 그렇겠느냐마는 우리 역시 연애 시간 동안 발견된 뜬금없고 의미 없는 공통점에도 '우리는 운명'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양쪽 아버지들의 고향이 같았다. (사실 같았다기보다는 그 근방의 비슷한 지역이었다.) 핸드폰 번호 가운데 자리가 둘 다 같은 숫자의 연속으로 시작했다. 태어나서 아주 어린 시절까지 자란 지역이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우스운 것들이지만 연애 당시에만 해도 아무도 모르도록 숨겨놓은 운명의 단서를 발견한 것같이 신기하고 기뻤달까. 내 친구 커플 중에는 친구의 여동생과 남자 친구의 여동생이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두고 역시 '우리는 운명'이라 생각하며 알콩달콩 연애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뜬금없이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실제로 우리는 비슷했다. 그러니 만나면 편했고 편하니 '내가 이 얘기를 해도 저 사람이 나를 판단하지 않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나에게는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는데 당시 남자 친구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주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도하지 않고, 살며시 그렇게 심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회사, 가족, 일상뿐만 아니라 나의 취향, 아무도 모르는 나의 생각, 또는 누군가의 비밀 이야기 같이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는 남들은 쉽게 허물수 없는 둘만의 이해가 쌓여갔고, 신뢰가 쌓여갔고, 스토리가 쌓여갔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공고한 믿음을 쌓아가던 우리였다. 그리고 여기에 4년이라는 세월이 더해졌으니 서로에 대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 우리였는데 첫 번째 고비는 결혼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예고치 않게 찾아왔다. 우선 나에게 있어 결혼을 준비하는 시간은 행복해야 마땅한 시간이어야 했다. 결혼을 앞둔 신부라니 말만 들어도 설레지 않은가. 여자에게 있어 특히 최고의 날이 되어야 할 결혼식, 그리고 그런 결혼식을 준비하는 일이라니 나는 행복해야 했고 남자 친구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상 결혼식 날짜가 잡히게 되니 나의 조급증이 어디 갈까. 결혼 준비는 나에게 커다란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되어갔다. 회사에서 벌어진 프로젝트만 아니었지 과정은 모두 같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뭐 하나 빼먹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A3 용지에나 들어갈만한 To-do 리스트를 정리하고, 혼수용품 리스트를 만들어 매일매일 체크했다. 리스트는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갔지만 뭐하나 결정은 속 시원하게 내려지는 게 없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나의 욕심과 편안하게 내려놓을 줄 모르는 나의 깐깐한 성격이 더해져 뭐 하나 결정하는데 몇 날 아니 몇 주가 걸렸다. 인터넷 카페에는 정보가 넘쳐났고 수십, 수백 개의 비슷한 업체가 있었고 후기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찾아보고 고민하고 비교하기를 거듭하다 보니 나의 예민함과 초조함은 배가 되어갔다. 당시 예비 신랑이었던 지금의 남편은 이제와 서야 말이지만 '그 당시 너의 새로운(?) 모습에 사실 많이 놀랐다'라고 고백했을 정도였으니 내가 얼마나 심하게 안달했을지 가늠이 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남자 친구가 야속했다. 며칠, 몇 주간을 끙끙 고민하다가 남자 친구랑 상의라도 할까 하면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 '비슷하니깐 그냥 아무거나 하자.'로 속전속결 종결되니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이 아니라 '이 남자는 뭐가 이렇게 다 쉬워? 그냥 대충 하자는 거야 뭐야?'라는 반항심이 밀려왔다. 나는 그동안 퇴근 후 시간 쪼개어 가며 머리 터지게 고민했는데 '그냥 이거 하지 뭐.'라는 말 한마디에 내 노력과 시간이 무색해지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쉽게 결정할 거면 내가 고민하겠냐!'라며 나는 나대로 혼자 마음속으로 고민을 계속 이어갔고 반면 남자 친구는 '문제를 해결했군.'이라며 홀가분해했다. 나는 이를 두고 '남녀 차이'라 했고 남자 친구는 '성격 차이'라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결혼을 같이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 아니라 나 혼자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혼자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간추린 옵션을 남자 친구한테 가져가면 남자 친구가 쿨하게 결재해주는 형국 같았달까. 그러나 결정할 것이 뭐 한두 개 여야 말이지, 수백 가지는 되었다. 낮에는 둘 다 일하니 일하는 틈틈 찾아서 남자 친구한테 카톡으로 의견을 구하는데 가짓수가 많다 보니 각 메시지 앞에 번호를 매겨서 보냈고 남자 친구는 늘 나의 마지막 질문에만 답을 하고 홀연히 다시 사라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이 남자라면 내가 온전히 믿을 수 있어서", "함께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이유일 수 있겠지만 이런 어찌보면 별 것 아닌 마음을 몇 명에게나 느껴보았는지 솔직하게 반문해본다면 어떨까.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이런 감정을 낄 수 있었던 나는 어찌보면 복받은 것은 아닐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상사과 부하 직원과 같은 요상한 관계였을지 몰라도,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오르락 내리락 해보였을지 몰라도, 나에게 보여주었던 남자친구의 온전한 신뢰, 그리고 서로를 향한 안정된 마음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토대 위에서 하나하나 부딪히며 서로를 계속 겪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다듬어갔다.      


결혼 준비 역시 어느 샌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술을 된통 먹여봐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던데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며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비슷한 줄만 알았던 우리 었는데 우리에게도 서로가 알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좀 더 상대를 한 뼘 뒤에서 바라보며 겸손해질 수 있었다. 극한(?) 상황을 같이 겪으며 이전의 핑크빛 같은 앳된 관계가 아닌 한층 여물어진 관계가 되어갔다. 매번 좋은 옷 입고 만나 맛있는 음식 먹으며 즐거운 데이트만 했을 때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니 때론 부끄러웠지만 그 고비를 넘자 한층 더 친밀해졌고, 더욱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완전한 '나의 일부'로 거듭나는 느낌이었다. 항상 아름답고 보기 예쁜 것만이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 서로를 알게 되었고 품어주며 부부로써의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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