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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또 다른 나

그림자 이야기

by 마론도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화가 났다. 그런데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 후로도 친구가 종종 늦었지만, 나는 늘 쿨한 척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소한 일로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나도 놀랄 만큼 화가 난 것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사실 나는 그동안 내 감정을 계속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에게 화내면 나쁜 사람 같잖아', '좋은 친구는 이해해 줘야 해' 같은 생각 때문에 내 진짜 감정을 외면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 불편한 감정이 쌓이고 있었고, 결국 더 큰 감정으로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가 인정하지 않거나 억눌러온 감정, 성격의 일부를 심리학에서는 ‘그림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감추고 싶은 모습일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하면 안 된다고 배워서 무의식적으로 억눌러온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자를 무조건 숨긴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쌓이고 쌓여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가 늦었을 때, ‘괜찮아’라고 하기 전에 내가 정말 괜찮은지 생각해 보는 거다. 화가 난다면 그 감정을 인정하고, “나도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오는 거야. 너도 다음부터는 늦지 않게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라고 솔직하게 표현해 보는 거다. 이렇게 하면 그림자가 나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림자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그중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나의 일부다.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마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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