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상담, 치료해 온 전홍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온 이들 대부분은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와도 '나는 우울증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때 말을 바꿔 '당신은 매우 예민한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맞다, 나는 예민한 편이다.'라며 수긍한다고 한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다수의 사람들 또한 진료실에서 '나는 매우 예민한 편'이라고 인정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우울하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자신의 예민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며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일까?
예민하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건 바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완벽주의자'였다.
나는 학창 시절 무엇 하나를 해도 내 마음에 들 때까지 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며 그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편지 하나를 쓰더라도 마음에 들 때까지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고, 선물 포장을 하더라도 포장지의 색깔, 질감, 어울리는 리본 끈까지도 깐깐하게 골라 만족스러울 때까지 포장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코에 생긴 피지가 눈에 거슬려 하나하나 짜다가 완벽하게 없애려다 피딱지가 생겨 술주정뱅이 코처럼 된 적도 있었다. 중요한 것에 목숨 거는 것은 그나마 생산적이지만 사소한 것까지 대충 하지 못하는 내 성격은 나를 상당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교복을 줄여 입는 것이 유행일 때가 있었다. 다들 세탁소에 맡겨 교복을 줄이곤 했는데, 나는 세탁소에서 줄여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줄여 입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라도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못 견뎠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맞추려 애쓰며, 모두와 잘 지내려 했다. 갈등 상황을 너무 싫어하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도 컸다. 나의 말과 행동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일체 만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더 조심하고 신중해지게 됐던 것 같다.
어쩌면 나를 피곤하게 했던 이런 성격이 강한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은 여름엔 농사일로 새벽부터 밤까지 바쁘셨고, 겨울이면 두 분이 동네분들과 어울리기 바쁘셨다. 늘 나는 그 시선 밖이었고, 혼자 뭐든 잘 해내는 딸이라 생각해서 믿으셨는지 점점 나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일들이 많아졌었다.
나에겐 어느새 의지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가르쳐 줄 사람도, 응원해 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책임감이 커졌고,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겨났다. 그래서 늘 긴장하며 지내게 되었던 것 같다.
실수해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마음의 부담이 덜어졌을까? 사람은 누구나 모든 걸 잘 해낼 수는 없다.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자꾸 쓰다 보면 고갈되고, 지치고,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다.
내가 자주 지친다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것에 에너지를 너무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나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쉽게 지치지 않으려면 내가 집중할 것과 너그러워질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나에게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예전에 나를 돌아보면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 했던 욕심쟁이였다. 그 기준은 항상 높았고, 그래서 나는 만족하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때로는 서툴러도 괜찮고, 포기해도 괜찮은 것들도 있는데 말이다. 나에게 너무 가혹했던 나를 반성한다.
이젠 내가 정말 중요시하는 것들 외에는 조금 느슨해지려고 한다. 나에게 너무 많은 책임감과 역할을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예민하다는 건 굳어진 성격이 아니다.
예민해져 있다는 건 그렇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 이유를 찾아 나를 편안하게 해 줄 방법을 찾는다면 예민함은 조절될 수 있는 감기 같은 것이다.
나는 한때 나의 예민함을 성격이라 여겨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성격을 원망하고 자책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작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나의 문제였고, 휴식할 줄 몰라 쌓인 오래된 피로감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난 후 이 부분을 조금씩 조절하려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전보다 많은 것들에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면 일단 멈추고 잠시라도 쉬려고 한다. 누군가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젠 그런 감정은 그 사람의 것으로 두려고 노력한다. 내가 애써서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까지 내 편으로 만드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해야 할 일에 있어서 중요도를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으면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나를 알기에 선택과 집중은 나에게 아직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먼저 살핀다. 괜찮다 위로해 주고, 잘했다 토닥여주고, 잘할 거다 응원해 준다. 더 이상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에 기대는 어린아이가 아닌 내 스스로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에 감사한다.
나는 여전히 예민할 때가 많지만, 전처럼 나의 예민함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요즘엔 이 예민함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쓸지 잘 조절하며, 고민 중이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스스로의 예민함을 조절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이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이 시를 전하고 싶다.
흔글 님의 '무너지지만 말아' 책 중에서
'시들지만 말아라'라는 시이다.
쓰러져도 괜찮아.
무너지지만 말아.
넘어지면 어때?
일어날 일만 남았는데.
눈부시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시들지만 말아라.
너는 너 그대로가 아름다워
빛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으니.
빛나려고 하지 말고
시들려고 하지 마라.
너는 흐린 날에도
여전히 내게는 예쁜 사람이니까.
주저앉지만 마라.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이며,
또한 나에게 해주고픈 말이기도 하다.
'예민함은 능력이다. 단, 통제할 수만 있다면!'
만약 지금 당신의 예민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예민함 뒤에 숨은 진짜 정체를 알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