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만히 앉아 거실에 있는 책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유독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에는 많은 인연들이 얽혀있고, 그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요즘 나에게 말을 걸어온 책은 황석영 님의 '개밥바라기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누군가 나에게 빌려주었던 걸 돌려주지 못한 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물리치료사 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작은 의원 물리치료실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그 남자는 왜소한 체격에 늘 물리치료실에 오면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에게 가서 핫팩이나 전기치료를 해줄라치면 그 적막함을 못견뎌 늘 내가 먼저 말을 걸곤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남자분에게 읽던 책에 대해 말을 건넸던 것 같다. 책을 그다지 많이 읽던 때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 손에 들린 책들은 읽어본 적도 없는 책이었다.
"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라고 나는 단전에서부터 질문을 끌어올려 어렵게 한 마디를 던졌었다. 결혼 전 나도 20대 중반 즈음 일 때라 아무리 환자여도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거는 건 나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나를 긴장시킬만큼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러면 그분도 " 네~" 하고 조용히 그에 대한 간단한 대답만 할 뿐, 우리의 대화는 늘 용기 내 어렵게 던진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는 짧은 대화로 끝나버렸다.
그 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가 경찰 공무원을 준비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라 체력단련을 하다가 발목을 다쳤다고 했다. 핫팩이 끝나고 전기치료도 끝나면 초음파를 하는 몇 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발목을 초음파로 천천히 문지르다 보면 자연스레 또 대화의 시간이 주어졌다.
안 그래도 경쟁률이 치열한 그 좁을 문을 들어가려면 마음도 조급할텐데 발목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얼마나 머릿속이 바쁠 그인가. 섣부른 위로의 말을 하는 건 사기만 떨어뜨릴 것 같아 나는 차라리 시답잖은 일상적인 대화나 응원의 말을 더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의 손에 들려있던 책에는 '개밥바라기 별'이라는 제목이 쓰여있었고, 책을 가까이하지 않던 나는 그저 그 제목이 재밌어 생각나는 대로 말을 건넸었다. "제목이 너무 재밌네요. 다 읽으시면 나중에 저도 한 번 빌려주세요."라고 말이다.
맞다. 그냥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막 던진 말이었다.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던 어느 날, 그 남자는 나에게 그 책을 빌려주었다. 내가 했던 말을 흘려듣지 않고 나에게 그 책을 건네는 것이었다. 얇지만은 않았던 그 책을 내가 읽을까가 의문이었지만 일단 나는 뱉어논 말이 있으니 덥석 받아들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나에게 그 책이 왔고, 그 후 그 남자분은 시험 준비로 바쁘셨는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더 큰 병원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 시기가 겹치면서 그분께 책은 돌려드리지 못한 채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게 되었다.
사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이 유명한 확석영님의 소설인 것도 몰랐다. 그만큼 책에 관심이 없던 나였다.
최근 남편과 저녁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봤던 초승달 옆에 있던 밝게 빛나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개밥바라기별이라고 했다. 나는 문득 전에 환자분이 빌려줬던 책이 떠올랐고, 순간 그 내용이 궁금해져 집에 돌아와 그때부터 책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작가님의 책을 10년이 넘도록 책장에 고이 모셔만 뒀던 나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책은 내 안에 들어오는 타이밍이 따로 있는 것이니 이 책과 나는 이제야 인연이 닿았구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책 << 개밥바라기별 >> 작가의 말 중에서.. 285p
이 책의 저자이신 황석영 작가님은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하셨다. 고교 재학 중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돌게 된다.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 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의 체험을 '개밥바라기별' 안에 고스란히 녹여낸 것이다.
그때 함께 떠돌던 삼십 대의 부랑 노동자가 그 별의 이름을 작가님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 별'이라 부른다고 말이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작가님은 그 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젊은 시절에 방랑을 하면서 저녁 무렵 해가 지자마자 서쪽 하늘에 초승달과 더불어 나타나던 정다운 나의 별을 기억하고 있다.
벌써 경험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땅거미 질 무렵은 세상이 가장 적막하고 고즈넉해지는 순간이다. 새들도 바삐 저녁 숲을 찾아 깃으로 숨어들고 나무들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직전 짧은 정적 속에 가지를 벌리고 조용히 서 있다.
동네 아이들도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밥상머리로 돌아가고 굴뚝에는 잔불 연기가 오르는데 창마다 노란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나는 낯선 마을의 고샅길 모퉁이에서 또는 들판의 두렁길 위에 서서 그맘때 나타난 그 별을 올려다보았다.
책 << 개밥바라기별 >> 작가의 말 중에서.. 286p
작가님은 책의 마지막에 세월은 변했지만 젊음의 특성이나 내면의 본질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개밥바라기별의 이미지가 이 소설을 읽는 이들의 가슴 위에 물기 어린 채로 달려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작가님이 올려다보며 '정다운 나의 별'이라 여겼던 그 별의 이미지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을까? 가만히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데 문득 쓸쓸함이 느껴졌다.
나도 그랬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별이 샛별이라 불리는 '금성'이라는 건 아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별의 다른 이름이 '개밥바라기별' 이라는 건 아직도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음, 청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활기차고, 희망찬 긍정의 의미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 작가님은 이 개밥바라기별을 통해 전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젊음이란 불확실성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이고 선택에 따라서는 무한한 자유와 엄청난 억압에 짓눌려 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리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
책 << 개밥바라기별 >> 작가의 말 중에서.. 284p
본인도 겪어봤던 찬란한 청춘이란 이름 뒤에 숨은 어려움과 쓸쓸함을 조용히 글을 통해 공감해 주고 토닥여주는 기분이었다.
아마 그때 이 책을 읽고 있던 그 젊은 남자분도 이런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불확실한 길을 위해 노력하는 '도전'이라는 멋진 프레임 뒤에서 얼마나 수도 없이 좌절하고 고뇌했을까. 발목까지 말썽이었으니 아마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젊고 잘생긴 얼굴 뒤에 숨겨진 그늘진 그림자가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서야 더 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