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면 연락하고 한 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쌓아뒀던 많은 말들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한동안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나서야 서로의 근황을 알게 된다.
그러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면 '그냥 지금은 생각이 많거나, 바쁘구나.'하고 그렇게 나의 일상에 다시 집중하며 살아간다. 신기하게도 이 친구와는 인생의 흐름과 타이밍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 가끔 하는 전화 통화에서도 참 많은 교감을 하게 되는 듯하다.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비슷한 경험치에서 오는 공감대랄까. 아무튼 우리는 꽤 미지근하고 느슨한 관계임에도 그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첫째를 아기 띠하고 다니던 시절, 젖 냄새 풍기고 다닐 때 알게 된 우리는 동갑이라는 이유로 금방 친해졌었다. 서로가 감정에 솔직한 편이었고, 관심사가 비슷하고, 생각이 많아 대화할 주제도 많았다. 그게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각자 그 당시 남편에게 채워지지 않았던 헛헛함을 채워가며 의지했던 사이이기도 해서 우리는 그때 서로에게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다. 군대를 가보진 않았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넘쳐나던 그 시기에 우린 아무래도 전우애만큼의 깊은 무언가가 생겼던 것 같다.
남편 하나 보고 이사했던 그 동네에서 가족도 지인도, 친정도 없이 그 고독한 외로움 속에서 치열한 육아를 감당한다는 건 지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건 바로 친구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 사이가 이렇게 편안했던 건 아니다. 서로를 많이 의지했던 만큼 기대하는 것도, 그만큼 실망하게 되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위기의 순간이 왔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평온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서로를 이해하려고 수많은 대화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대화들 속에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일 수 있는,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와 감정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린 적당히 감추며 비밀로 하지 않았다. 다 까발려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일방적인 솔직함으로는 이어올 수 없는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우린 서로에게 몰랐던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 후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과 어려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서로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편안한 관계가 되기까지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우린 서로에게 억지로 애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솔직하게 서로를 대했을 뿐.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정도가 비슷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애써서 노력하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 조급했을 때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그 관계가 늘 불안하고 허탈했다. 그 이유를 늘 나에게서 찾기 시작하는 순간 관계에서 나는 항상 '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건 어쩌면 서로가 맞지 않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노력해도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애쓰지 않아도 내 곁에 남아주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진정한 친구를 얻고 싶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자. 그리고 가만히 나에게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