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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Jun 06. 2023

바람꽃. 조금은 멀리 떨어져 보아야 보이는 것.

큰 바람을 피하는 법.



바람꽃. 큰바람이 불기 전에 먼저 먼 산에 구름같이 끼는 뽀얀 기운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바람꽃이 일면 이어서 큰바람이 불어온다 하여 뱃사람들은 바람꽃이 보이면 바다에 나가지 않았고, 농부들은 바람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농작물을 살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뽀얀 구름 같은 것이 큰바람을 대비할 수 있게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구름도 너무 가까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뿌연 안개처럼 앞을 가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바람꽃이 존재하는 것 같다. 조금만 멀찍이 떨어져 집중해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너무 가까워지면 알아차리기 어려워 큰 바람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니 말이다. 사소하게 주고받던 말, 무심코 하는 행동에서 조금만 예민하게 집중했다면 큰바람은 피할 수 있었을 일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너무 가까워지다 보면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와 성급히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가까워지기 전에는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 그 시간을 갖지 않고 쉽게 가까워지는 사이에서는 기대도 실망도, 별거 아닌 것에 서로 상처받게 되는 일도  많아지니 말이다. 관계에서 그런 불필요한 감정소모,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려면 급하게 친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전에는 그런 인내심이 부족했었다. 느낌이 좋으면 그 느낌만 믿고 급하게 가까워졌던 것 같다. 관계에서의 거리감을 못 견뎌 늘 애써서 그 거리감을 좁혀놓는 것도 나였다. 모든 건 천천히 자연스러워야 하는 건데 억지로 거리를 좁히면 그 관계는 꼭 탈이 났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진 후에는 그 어떤 모습을 보아도 관계라는 족쇄가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호감이 집착으로 변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만드는지 난 몇 번의 큰 바람을 맞고서야 알게 됐다. 그런 가까운 관계를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다면 서로가 상처받는 그런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맞지 않는 걸 억지로 맞춘다는 건 서로에게 못할 짓이다. 한 명의 일방적인 희생이 뒤따르거나 아니면 서로가 그런 말 못 할 괴로움으로 속앓이 하며 점점 곪아갈 뿐이다. 그게 터지는 건 시간문제이고 터진 이후에는 되돌리기 어렵다.


상처가 클수록 회복하는 데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  긴 시간을 지나 보니 이젠 알 것 같다. 일방적인 피해자는 없다. 모두가 피해자일 뿐.


지금은 그래서 내 바운더리 안으로 누군가를 들일 때는 일단 한동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한다. 서로가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있을지 예민하게 살피면서 말이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예민해 보이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고, 까칠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한 신중함이고 노력이다.




바람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디고 조금은 멀리 떨어져 보는 배워야하는 것 같다. 때로는 그렇게 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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