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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Jun 12. 2023

삶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여백의 미


가끔은 텅 빈 머리가 마음을 가득 채워줄 때가 있다. 무엇으로 가득가득 채워 놓은 곳보다 텅 빈 공간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휴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적은 것이 많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성격이 꼼꼼한 편이다. 그리고 답답하리만큼 신중한 편이고, 실수하기를 너무 싫어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있다. 내 관심 밖의 사람이나 일에는 무관심하나 내 관심 안에 들어온 무언가에 대해서는 미련할 정도로 책임감을 갖기도 한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노력해서 모든 것에 목숨 거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무언가에 집중하면 남들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쏟아붓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에는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거나 할 때도 무엇 하나 빠지지 않게 만족스러울 때까지  애썼던 것 같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옷도 되도록 화려하게 입는 것을 좋아했다. 귀걸이도 작은 것보다는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집을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비어있는 벽이 허전해 사진으로라도 꾸미고 집안을 무언가로 가득 채워놔야 마음에 들곤 했다.


인간관계에서도 일에 있어서도 나는 늘 열정이 가득이었다. 100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했고, 내가 맡은 일을 최대한 잘 해내려 일상생활도 포기할 정도로 일만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20대에 첫 취업을 해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다. 교육을 듣거나 주말에도 놀러 다니는 시간보다는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나는 상황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를 그렇게 만든 건 더 잘하려는 나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것에 더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다가 일주일 내내 편히 쉬는 시간 없이 보낸 적도 많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모든 건 과하면 탈이 난다. 내가 모든 걸 꽉꽉 채워 여유 없이 지내는 동안 과열된 나의 삶으로 인해 나는 자주 아팠던 것 같다.


가득 채우는 삶이 내 모든 걸 무너뜨리는 걸 경험하고 나서야 그때부터는 하나하나 비워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공간을 최소한의 물건으로 인테리어 하는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전에는 그런 비어있는 공간을 보면 허전하다고 느꼈는데 이젠 그런 곳이 오히려 숨통을 트여주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옷도 액세서리도, 집에 있는 필요 없는 물건들도 나는 수시로 정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나눠주고 팔고, 최대한 지금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비워내고 정리한다. 그렇게 비워진 공간들은 무언가로 채워져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단순함에서 오는 명료함, 비어진 여백에서 오는 여유로움이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을 즐긴다. 누군가와 왁자지껄 떠드는 것도 좋지만 딱 그만큼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이 주는 여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런 텅 빈 시간이 나의 지난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게도 해주고, 놓친 것들을 챙길 수 있게도 해주는 것 같다. 그렇게 내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해주는 시간이 바로 시간의 여백이고 생각의 여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니멀리즘은 공간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으려면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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