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론도 Apr 26. 2023

산책이 필요할 때

당신의 마음은 괜찮으십니까?


산책.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을 말한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불안해지거나 일상이 바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산책을 한다. 천천히 혼자 걷다 보면 발목부터 무릎, 허리, 어깨, 목, 내 몸에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관절이 움직이고 안 쓰던 근육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힘이 들어갔다 빠졌다를 반복한다. 내 몸에 긴장되고 굳어진 모든 부분에 움직임이 일어나다 보면 일정한 그 움직임의 리듬에 뭔가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서서히 긴장된 마음도 몸도 이완되는 느낌이라 산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코스는  하천을 따라 뻥 뚫린 신리천 산책로이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도 좋고, 가끔 먹이를 먹거나 놀러 나온 오리들과 새들이 물에서 헤엄치는 걸 보면 왠지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라 나까지 신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날씨 좋은 날은 파란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도 볼 수 있고 지금 같은 봄의 계절엔 갓 자라난 잎들이 수양버들 가지를 수놓아 바람에 흔들리는 그 건강한 연둣빛을 보는 게 좋다.



그러다 길가에 핀 노란 민들레나 이름 모를 예쁜 들꽃들을 보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어김없이 사진을 찍는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겨 내 핸드폰에 담아두면 난 쇼핑한 것처럼 기분이 좋고 묘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고는 그 모습을 수시로 일상에서 꺼내본다. 그때의 그 바람, 하늘, 물빛, 예쁨과 여유로움, 그 편안함을 다시 꺼내 보는 느낌이라 행복해진다.



그 길이 좋아 나는 신랑과, 아들과, 딸과 함께도 걸어보고 온 가족 모두 그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다 대화가 필요한 누군가와도 그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나눈 대화들이 가끔 떠오른다. 아들이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 물었더니 아들은 엄마와 전에 키우던 구피라고 말했다고 했다. 사실 나도 내 아들이지만 가끔 나와 코드가 제일 잘 맞는 친구라는 생각을 하는데 생각이 통한 걸까 괜히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들과 걷던 그 길에서 멀리 보이는 건물에 써진 코오롱 브랜드를 보며 아들이 왜 '코오롱'일까 '코로롱'이면 재밌겠다는 말에 귀여운 상상이라 그 얘기만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나를 올려다보며 웃던 그 얼굴과 내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손, 그 손으로 전해지던 아들의 따뜻한 체온, 그 작은 걸음으로 신나서 총총거리던 모습까지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는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다리 밑 물살에 빛이 비치면서 예뻐 보였는지 얼른 멈춰서 사진을 찍으라던 녀석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나는 그럼 또 금세 멈춰서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아들과 보고 또 본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가끔 친구와의 시간 같기도 애인과의 시간 같기도 하게 즐겁고 달달하고 유쾌하다. 산책하자면 곧잘 따라나서는 아들과는 그래도 꽤 많이  걸었던 것 같은데 영 움직이기 싫어하는 딸은 늘 따라나서질 않아 이런 산책 데이트를 많이 못 즐겨봤다. 아들과의 시간만큼 딸과의 시간도 많이 보내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신랑과의 산책길은 운동이 잘된다. 나의 코치님이자 선배님 같은 신랑은 이젠 나의 속도에 맞춰주기도 하고 내 말에 조금 반응도 해주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전에는 늘 앞서가고 쉬어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있는데 생뚱맞게 다른 말을 하기도 하며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다. 뒤처지는 나를 늘 재촉하며 산책이 아닌 목적지가 있는 사람처럼 경주마 다루듯 두리번거릴 사이도 없이 앞만 보고 가도록 늘 재촉을 했던 그다. 그렇게 서두를 때면 산책인지 뭔지 모르게 야속할 때도 많았는데 이젠 내가 사진 찍을 때 기다려주기도 하고 힘들어하면 내 속도에 맞춰주기도 하니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산책을 하면서 걷는 속도만 맞춰진 게 아니라 마음의 온도도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도 아니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추억을 만들지는 못했어도 우리는 함께 걸었던 시간 덕분에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시간을 내서 여행을 떠나고, 함께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해야 기분전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현관에서 운동화끈만 질끈 매고 문만 나서도 걷는 모든 곳이 여행이고 힐링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잘 알아차린다고 한다. 반대로 자연에 가까이 가서 계절을 느끼다 보면 건강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다 보면 사람은 건강해진다.


나는 요즘 하루 6 천보 걷기 챌린지를 하고 있는데 함께 하는 이들과 주 5회 인증숏을 올리며 지키지 못할 시에는 지키지 못한 횟수만큼 벌금을 낸다. 보통 6 천보를 걸으려면 30분 이상은 걸어야 한다. 이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에는 집에서 1천 보도 못 채우고 하루가 끝나는 적도 많았던 나였는데 요즘엔 덕분에 매일 30분 이상은 걷고 있는 것 같다. 매일 30분 이상을 걷다 보니 나에겐 신기한 변화들이 생겼다. 일단 생각정리가 되어 머릿속이 가벼워진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을 긴장시켜 기분까지 다운되게 만든다. 그 상태가 오래될수록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하지만 걷다 보면 생각이 긍정적으로 움직이고 그 영향인지 무거운 감정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고민을 이겨낼 생각을 할 수 있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느낌도 든다. 머리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할 에너지를 걷는 데 쓰니 입맛도 좋아지고 잠도 잘 온다. 돈 들이지 않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복비법이 아닌가 싶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땅에 발 딛고 걸을 수 있는데 그동안 그 시간을 내지 못했던 건 움직이지 않는 몸만큼 마음 또한 많이 굳어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뭘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를 끊임없이 의심해 왔던 것 같다. 근데 걷기 시작한 이후로는 참 많은 용기를 내보게 된다. 운동화를 신고 문 밖을 나서기만 했을 뿐인데 멈춰있던 머리와 마음까지 내 발걸음만큼 움직이게 된 느낌이다. 만일 일상에 행복한 일이 없어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면, 무언가를 하기에 자신이 없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면, 문을 열고 나가 걸어보길 바란다. 그 문은 어쩌면 세상과 연결되는 첫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가장 어루만져야 할 감정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