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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Jun 26. 2023

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지켜야 할 것!

솔직함으로 착각하는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올해로 12년 차인 우리 부부는 일상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꽤 많은 편이다. 함께 산책도 하고, 술도 한 잔씩 하면서 공유하는 취미가 늘어난 만큼 일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서로에 대해 이젠 제법 많이 아는 친구 같은 사이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예민해질 일도, 마음 상하는 일도 많이 줄어든 요즘이다.

하지만 종종 평온도 잠시 자취를 감추게 만드는 트리거가 되는 것들이 있다. 별거 아닌 일이 결국 별일을 만들어버리는  바로 그런 것들이다.

남편과 함께 헬스장에 갔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기구 운동을 먼저 했고, 나는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먼저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남편이었다. 내가 운동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멀리서 그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느낌은 현실이 되었고 남편의 본격적인 운동 참견이 시작되었다. 내 속도에 맞게 나름의 운동 코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남편은 마음대로 내 러닝머신의 버튼을 눌러대며 조작하고 있었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경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부터 기분이 별로였는데 남편은 쉴 새 없이 운동 코칭을 명목으로 나의 방식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기분이 언짢은 것을 넘어서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위해 돕고 싶어 그러겠거니 하며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켜 장난처럼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며 그의 행동을 멈춰달라 경고를 주고 상황을 넘겼다.

남편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내가 기구운동으로 자리를 옮겨 운동을 하기 시작하니 또다시 옆으로 왔다. 내 근력에 맞게 조정해 놓은 무게를 멋대로 올려버리는 남편이었다. 열심히 운동하고 가려던 내 사기는 점점 떨어졌고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참견질을 하는 남편에게 나는 결국 화가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운동 코칭. 나에 대한 존중도, 배려도 빠진 친절하지도, 도움 되지도 않았던 기분만 상하게 만든 남편의 오지랖.

이미 기분은 상했고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기가 싫어져 그만하겠다고 말하고 결국 나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남편에게 화가 난 이유는 단지 나의 운동에 참견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헬스장에서의 일은 일부였고, 그게 트리거가 되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12년 동안 살면서 나를 예민하게 했던 포인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남편의 실수나 서툰 부분에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었다. 지적이나 참견도 잘 안 하는 타입이라 생활하다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그냥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누구나 실수는 하고, 나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렇게 넘겨주며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생활 속에서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나에게 보일 때마다 나를 지적했고, 그의 따가운 지적에 수긍하며 고치면서도 나는 늘 뭔가 억울하고 속상했었다.

경제관념이 없다며 만 원짜리 티 하나를 사도 말도 없이 샀다고 한소리를 들어야 했고, 말랐던 시절과 달리 살이 찌기 시작했을 때는 나의 살은 남편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남편은 장난이라지만 매번 나의 외모적인 콤플렉스를 장난으로 들어야 하는 것은 나에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속에서  '지는~?' 하는 반발심이 올라왔던 적도 많았었다. 하지만 입으로 뱉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뱉어버리면 내 마음 또한 불편해질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인정해 주고 싶던 남편의 장점이 오히려 나를 지적하는 기준이 되어 뾰족하게 찔러대는 꼴이라니.

사람은 누구나 잘하고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매번 나만 부족하다 지적받는 그 불공정한 상황에서 나는 나의 좋은 점을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더 서글펐던 것 같다. 가뜩이나 가정주부로 사회생활도 안 하고 경제능력도 없는데 그런 상황을 반복해서 마주하니 내 자존감 또한 점점 바닥을 쳤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장점을 더 보려고 노력했던 마음이 점점 처참히 무너져 갔다. 더 이상 배려도 이해도 하고 싶어지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남편의 무례함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이해는 끝이 났고, 그 후론 우린 자주 투닥거렸다. 지금의 이 평온한 시간은 어쩌면 그 투닥거린 시간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남편의 잘못과 실수들을 여전히 지금까지도 묵인해 줬다면  아마 지금, 나만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부당함에 내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관계는 결국 파국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서서히 지쳐갔을 거고 남편은 이유도 모르게 나의 원망을 들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남편의 행동은 무례했었다. 나에 대한 존중이 없었고, 나의 잘하는 부분을 인정해 주기보다 나의 부족함을 늘 상기시켰었다.

하지만 도움이 되라고 하는 마음과 달리 그런 무례함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를 주고 말 못 할 불쾌함을 안겨주거나 자신감을 떨어뜨렸을 뿐.

헬스장 사건은 그랬던 남편에 대한 나의 씁쓸한 감정을 다시 끄집어 내,  나를 그렇게까지도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착각해서 남에게 상처 주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나라도 알려줘야겠다는 몹쓸 정의감으로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고자 했던 충동적인 내 욕심이었던 것이지 상대를 위함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누군가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성급하게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전하지 말자 결심하게 되었던 것 같다.

섣부른 지적과 조언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무례함으로 전달될 수 있어 아주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라도 성급한 타이밍은 오히려 마음에  벽만 더 두텁게 만들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중요시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도 그것이 건드려지면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원치 않은 도움과 지적은 가끔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개인의 예민함을 부추기는 트리거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것에는 상식적인 평균값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 사람이 기분이 나빴다면 나쁜 거다. 그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사이일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싶다. 내 방식이 아닌 상대의 방식에 대한 존중 말이다.

만약 스스로 누군가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표현해야 한다. 나를 더 이상 그렇게 무례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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