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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Sep 12. 2023

관점을 바꾸는 관점

인생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 elenapopova, 출처 Unsplash



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을 되짚어 보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보는 것을 '복기'라고 한다. 승패에 상관없이 바둑의 내용을 연구 검토하는 것으로,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아무리 패배한 게임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복기하다 보면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패배에 대한 아쉬움은 이내 다음을 준비하는 에너지가 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복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만 볼 수 있어서 각자의 눈에는 경험한 만큼의 세상이 보이는 거라고 한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온 시간들이 나의 관점과 그릇을 만들기도 하지만 현재의 내 관점이 과거를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의미 없다 여겼던 것들도 다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내 삶의 또 다른 의미로 다시 정의되어 남는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애쓰던 시간들이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떠올라 나를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더 이상 내 안에 두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었다. 그냥 마음 어느 귀퉁이에 품어주며 토닥여줬어도 됐을 기억들인데 나는 왜 그리도 모질게 마음에서 몰아내려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100% 좋은 기억으로만 꽉 차있는 상태가 행복한 거라 생각했던 내 경솔한 착각이 그리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백곰 효과를 아시나요?

;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


1987년 하버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로 있던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가 특정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심리학 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게 되었다.


실험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실험군을 A와 B로 나누어 A 그룹에는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B 그룹에는 북극곰을 생각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5분 동안 북극곰이 생각날 때마다 종을 치도록 한 것이다.


결과는,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한 A 그룹에서 더 많은 종을 쳤다고 한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더 많이 북극곰을 떠올린 것이다. 이 실험은 이후 '백곰 효과'로 알려져 유명해졌고,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백곰 효과'처럼 부정할수록 더 생각나 괴롭게 하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괴로운 시간을 조금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좋았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감사한 시간들이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해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힘든 기억을 부정했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부정할수록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사람은 기분에 잘 속는 것 같다. 현재의 내 감정 상태, 삶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게 되니 말이다. 현재의 감정과 삶의 만족도가 좋지 않으면 지난 과거도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과거의 힘든 기억을 떠올렸던 건 현재의 내 모습과 삶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내 모습과 삶의 이유들을 과거로부터 찾아 비겁하게 책임회피를 하고 있던 것 같다.



© jwwhitt, 출처 Unsplash




엄마가 되고 나서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려 참 많이 노력했다. 더 이상 나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회피하려 과거의 경험을, 그 누군가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시간들에서 배우는 것만이 내 삶을 만족스럽게 바꾸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반복했던 방법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면 방법도 바꾸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요즘엔 조금만 노력하면 훌륭한 스승님들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니 얼마나 좋은 시대인지 모른다. 관계도 생각도 배우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과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참 자세히 알려주는 세상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진다면 곧 좋은 일들이 생길 징조라고 한다. 내 귀를 열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들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귀를 열고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그로부터 시작되고 나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면 다른 관계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내가 그동안 가장 노력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나와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


어쩌면 나의 부모님, 그의 부모님, 또 그 위의 부모님들도 어쩌면 자신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셨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 줘야 하는 것을 그 누구도 배우지 못했을지도. 그게 나에게까지 대물림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내 아이에게는 내가 먼저 깨닫고 배워 최대한 일찍 가르쳐 줘야겠다 다짐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애쓰고 잘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갈 수 있게 내 품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이 가르쳐 줘야겠다는 것을 말이다.


내 품을 떠나서도 스스로 자신에게 힘들 때마다 해줄 수 있는 위로와 응원의 말,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는 사랑의 말을 함께 있는 동안 많이 듣고 자라게 해 줘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인생의 복기는 내 현재의 좋지 않은 감정의 탓을 하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걸어가는 이들 중에도 스승이 있다는 말처럼 내가 걸어온 삶에도 분명 아팠더라도 스승이 되어줄 의미 있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들에서 배워 더 멋진 삶을 살면 그걸로 모든 아픔은 치유되는 것 같다.


좋은 기억들만 떠올리려 하지 말고, 마음에 힘든 순간들이 떠오르면 그냥 가만히 안아주자. 어쩌면 그것을 바라고 자꾸 내 마음에 찾아들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의 모든 시간들을 품어주고, 토닥여주고, 알아봐 줘야 그 시간도 그제야 평온해져 잠잠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이 속상하다 말할 때 안아주고 감정에 공감해 주면 금세 또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처럼.


지난 시간들이 너무 괴롭고 힘들게 다가온다면 조심스럽지만 조금은 귀를 열어 새로운 관점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더 사랑해 주기 위함이라 여기며 내 마음이 이제는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거운 감정을 조금 덜어주기 위한 마음으로 말이다.


나 또한 그렇게 나를 위해 남은 시간들을 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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