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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Apr 03. 2023

벚꽃이 필 때 우리는 소나무 숲으로 간다.

지치고 힘들때 필요한 것은?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조급한 마음은 늘 쉬지를 못하게 만들어 꼭 병이 나게 만든다. 마음만 급한 주인 탓에 탈이 나고 만 몸이 천근만근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데, 날씨가 좋아서 나가자는 남편의 말에 난 좀 쉬고 싶다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엄마가 안 가면 나서지 않는 아이들이 또 집에서 이 좋은 날을 못 누릴까 싶어 이내 몸을 일으켰다.


4월의 시작. 사방에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 이런 계절에 우리 가족이 소풍을 떠난 곳은 평소 산책하던 산책로 옆 솔잎이 푹신하게 깔린 조용한 소나무 아래였다.      


정신이 몽롱해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는데 남편이 나름 준비한 소풍 계획이 무산되는 건 또 싫어서 속으로 수만 가지 힘 나는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만의 소풍을 떠나게 되었다.   

  

역시나 주말임에도 한적한 그곳. 평소 남편과 손잡고 걷던 잔디 위 연둣빛 산책로 옆으로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나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푹신하게 자리를 깔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가 막혀 냄새가 나지는 않았지만 향긋한 솔잎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지나갔을 그 계절과 세월이 가득 쌓인 갈색 솔잎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생각한 복적하고 시끌시끌한 신나는 곳이 아니라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어찌 이곳에 흥미를 갖게 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빠졌다.


딸이 좋아하는 놀이로 기분을 풀어주자 싶어 솔잎 위에 나뭇가지를 주워와 모닥불 모양을 만들어 봤다. 놀이터에서도 풀 빻고 나뭇가지 모아 모닥불 모양을 만들어 노는 딸이라 이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전 성공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흥밋거리를 만들어 발동을 걸어주면 이내 아이들은 또 빠져들어 스스로 놀기 시작한다. 솔잎을 모아 둥글게 만들고 솔방울로 장식을 하더니 나뭇가지로 모닥불 미니어처를 만들어 나를 초대하는 아이들이다. 그렇게 불만 안 피웠지, 세상 행복한 우리만의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우리 눈에만 보이는 불꽃은 세상 어느 것보다 따스했다.     


놀다 보니 배꼽시계가 울려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준비한 도시락을 꺼냈다. 우리들의 소풍 도시락은 정성 어린 엄마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맛있는 마트가 싸준 도시락이었다. 남편의 감각이 돋보이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뜨끈한 국물이 빠질 수 없으니 컵라면도 챙겨봤는데 역시 아이들에게는 평소 금기시되는 라면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는 것 같다. 그 꿀맛 같은 유혹의 국물을 맛보더니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은 싫다던 아이들도 어느새 우리만의 소풍을 즐기기 시작했다. 점심 먹고 뭐 하고 놀지도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배부르니 정신이 더 몽롱해지고 피곤이 몰려와 나는 그대로 돗자리에 누웠다. 하늘을 지붕 삼아 돗자리 위에 눕는 게 늘 하고 싶은 로망 중 하나였는데 누워보니 세상은 이미 다른 곳이 되어있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눈을 간지럽히고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누워서 고개를 돌려보니 흙 속에서 빼꼼히 내민 어린 쑥들과 작은 민들레, 이름 모를 들꽃까지 왜 이제야 왔냐는 듯 방긋 웃어주는 느낌이었다.     


“나오니까 좋지? 집에서 혼자 누워있었으면 아마 쉴 수는 있었겠지만, 힐링은 되지 않았을 거야.”    

 

아이들처럼 작고 소중한 그 생명이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봄기운 가득 몸속까지 들어와 나를 치유해 주는 느낌이었다. 잠깐 일어나 커피 한잔하라며 남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남편이 직접 집에서 내려온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다. 커피랑 같이 먹으라며 옆에서는 딸이 건빵에 별사탕까지 올려 나에게 주었다. 참 닮아있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 덕분에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도시락을 먹고 성큼 다가온 오후. 이젠 나의 도움 따윈 필요하지 않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솔잎들을 모아 둥그렇게 새 둥지를 만드는 아들. 작은 둥지를 만들어 들어가 있는 동생이 부러워 보였는지 비좁은 둥지 안으로 기어이 끼어 앉아 자기는 뻐꾸기라며 너스레를 떠는 딸이다.  

   

뻐꾸기에게 둥지를 뺏겨 심통이 날 법도 한데 밀어내지 않고 더 큰 둥지를 만들어 함께 들어가 있는 둥지 주인은 꽤 인심이 좋아 보인다. 뾰족한 솔잎에 찔리기도 하지만 그 따끔거림도 즐거운 듯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집에 갈 생각 따윈 안 하는 듯 노는 아이들. 금세 체력을 다한 나는 다시 돗자리에 몸을 뉘었다.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땅과 등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리웠던 하늘, 살랑이는 바람, 아이들 웃으며 노는 소리, 그 모습을 지켜봐 주는 남편까지 모든 게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 좋은 날씨에 가족들이 나간 사이 조용한 집에서 쉬었다면 편하긴 했겠지만, 그뿐이었을 하루였다. 나를 이끌어 데리고 나와준 남편과 아이들 덕분에 그냥 답답한 집안에서 무기력하게 있었을 시간이 생명력 넘치는 봄의 기운으로 가득 찰 수 있었던 것 같다.     


삶에서 쉼이 되어 주는 존재들. 힘들어서 혼자 굴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질 때면 늘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또다시 힘을 내보게 된다.    

  

우리들의 소풍은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솔잎 돗자리 위에서 우리만의 봄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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